디지털 방송과 영상처리 분야에서 30년간 연구개발해 오면서 동영상 압축 관련 핵심기술들을 발명하여 각국에 등록해, 이중 55건이 국제표준에 채택됨으로써 국내 산업체에 매년 수백억원 이상의 로열티 수입을 가져오고 가전산업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초석을 다진 정제창 교수(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2011년 5월 19일 제46회 발명의 날 유공자 시상식에서 녹조근정훈장이 그의 가슴에 수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 교수로부터 그동안 있었던 연구개발 스토리와 우리나라 기술경쟁력 향상을 위한 고견을 들어봤다.
정제창 교수가 동영상압축 표준과 관련된 원천기술을 발명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미국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이 삼성과 LG 각각 2%에 불과할 정도로 기술력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었던 시기다. 선진 제품을 모방하여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제품 개발의 목표로 하고 있던 국내기업에서 원천 특허기술은 찾아보기 힘들어, 매년 선진 기업들에게 많은 로열티를 주고 있었다. 국제표준도 선진 기업들의 전유물이었고 국내 기업들은 거의 회의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1991년은 디지털TV와 DVD를 목표로 하여 MPEG-2 국제표준화가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HDTV 국책과제를 시작한 국내기업들은 이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고 자사 기술을 넣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정 교수는 주 업무였던 HDTV 개발을 수행하면서, 당시에는 SDTV(표준화질TV)를 목표로 하고 있던 MPEG-2 표준이 궁극적으로 전세계 HDTV 방식과 연결될 것이라는 확신 하에 어떻게 하면 이 국제표준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넣을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당시 회사의 조직, 장비, 담당업무 등의 측면에서 MPEG-2에 전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선택한 접근 방식은 MPEG-2에서 채택될 것을 목표로 하여 가능성 있는 핵심 원천 기술을 그물처럼 촘촘히 개발하여 특허로 등록해 두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그 결과 약 40개의 국제특허기술을 발명했고 이 중 여러 개가 결과적으로 MPEG-2, 그리고 그 후의 국제표준인 MPEG-4, H.264/AVC, VC-1 등에 채택되어 현재 매년 수백억원의 로열티 수입(현재까지 누적액 약 2천억 원)을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을 내다보고 남보다 빨리 원천 특허기술 개발
“많은 특허기술을 발명해 출원한 상태에서, MPEG-2 표준화회의에서 내가 발명한 기술과 완전히 같거나 비슷한 기술들이 논의되어 표준에 채택될 때마다 크게 기뻤다. 내가 고안했던 기술들을 해외 선진 기업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여 구체적으로 실험까지 한 끝에 MPEG-2에 제안하여 채택시킨 것이다.” 정 교수의 이 말은 앞을 내다보고 남보다 빨리 원천 특허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언급이다. 또한 정 교수의 전략적인 접근 방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 교수의 특허중 하나(DCT 계수를 여러 방법으로 스캔하여 그중 데이터 발생량이 가장 적은 방법을 사용하여 부호화하고 이 스캔방법을 전송하여 복호시에도 이 스캔방법을 사용하는 기술)가 MPEG-2에 채택된 것이 처음 알려진 직후 경쟁사에서 정 교수의 특허를 복사하여 연구원들에게 배포하면서 왜 이런 표준 특허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는지 크게 질책을 했다고 한다.
“내가 개발한 특허기술들이 MPEG-2에 채택된 후에야 비로소 국내기업들은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번 해볼만 하다는 판단을 하여, 이후의 표준인 MPEG-4부터는 국내기업들과 ETRI등 연구소가 전담팀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국제표준화에 참여하였고 결과적으로 MPEG-4 및 그 이후의 표준에 많은 국내 기술들이 채택된 것”이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동영상 압축 관련 국제표준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이와같은 정 교수의 선구적인 역할은 MPEG-2에 특허기술을 다수 채택시켰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이후 한국이 MPEG 표준화회의를 주도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매일 아이디어가 샘솟아 정신없이 특허를 써 내려가...
MPEG-2 표준에 채택될 것을 목표로 하여 특허기술들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MPEG-2 표준회의와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고 논문도 발표하면서 학자들과 교류해야 한다. 선진제품을 모방하면서 제품을 개발하던 당시의 기업 풍토에서, 원천기술 개발을 지향하는 정 교수의 활동은 “여기는 기업이지 대학이 아니다”라는 등의 곱지 않은 시선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MPEG-2 표준화회의에 참여하던 선진기업들은 JPEG, H.261, MPEG-1 등을 거치면서 전담인력을 구성하여 국제표준화에 전념했기 때문에 이들과의 경쟁은 정말 어려웠다고 정 교수는 회상했다.
하지만 정 교수에게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당시 디지털방송/TV 분야에서 이미 10년 이상 석사 및 박사과정의 수련기간과 방송사 기술연구소에서의 연구개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잘 준비되었던 그에게 당시 막 시작된 MPEG-2 표준화는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었다. “매일 아이디어가 샘솟아 정신없이 특허를 썼고 시간이 부족하여 연구원들에게 특허의 내용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 대신 작성시키기도 했다. 물론 연구원은 이때 공동발명자로 들어갔다. 일생동안 1000여개의 발명을 한 에디슨도 한창 발명할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었다”고 말한 정 교수는 “회사 내부의 우호적이지 않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연구노트를 통해 연구원들을 교육시켜가면서 특허 기술 개발을 계속했다”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부정적으로 평가받더라도 언젠가 정 교수의 특허들이 표준에 채택되어 회사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로열티 수입을 많이 가져올 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국내 기술개발 사상 드물게 많은 로열티 수입 올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일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평생 많은 논문을 썼고 또한 많은 특허기술을 발명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저명한 학술논문지인 IEEE에 한꺼번에 여러편의 논문을 게재했을 때도 기뻤고, 대학에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연구와 교육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을 때도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정 교수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탐구로 역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특허기술을 개발하여 국제표준에 많이 채택시켜 국내 기술개발 역사상 드물게 많은 로열티 수입을 올린 발명들을 뽑았다.
교육도 기술개발에 관심을 갖도록 방향 설정
대학에서는 지금까지는 특허기술보다는 논문의 가치가 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학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특허기술과 기술이전의 가치를 점점 더 높게 평가하는 추세가 바로 그것이다. 정 교수는 앞으로도 연구실의 박사 및 석사과정 연구원들과 영상분야의 신기술 개발에 힘써 많은 발명을 계속해 이어 나갈 계획이다. 그는 강의에서도 딱딱한 수식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물리적인 의미와 실제 전자공학에서의 응용들의 예를 많이 든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발명과 관련된 많은 예를 들면서 대학생들이 발명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소 발명에 관심을 갖도록 교육시키고 있다.
발명으로 인한 국가공헌에 맞는 보상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발명이 국가 경쟁력 제고에 얼마나 중요한지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다고 정 교수는 밝혔다.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의 배경에는 사회적으로 이공계 인력의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인색한 평가와 보상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정 교수는 “정부는 발명에 따른 이익의 50%를 발명자에게 보상하도록 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아직 보상에 매우 인색하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피력했다. 사회적으로 어느 분야나 최고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이공계 인력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발명에 따른 로열티 수입이나 크로스라이선스나 제품 경쟁력 제고 등의 경우 이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공계에 우수인력이 모이고 이들은 밤새워 기술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그러면 회사와 직원간에 상호 윈-윈하는 순방향 사이클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 교수는 이공계에 롤모델이 만들어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이공계 인력임을 잊지 말고 어떻게 해야 이공계에 우수한 인력이 지원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야야 할 때라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