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돌연 강력한 대 중국 반도체 규제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과 첨단기술 패권을 놓고 경쟁중인 미국은 중국이 AI와 AI반도체 분야에서 맹추격에 나서자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속셈이다.
AI반도체의 핵심은 GPU(AI가속기)와 이를 보조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가 핵심인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글로벌 HBM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적 강압 행위로 단호히 반대한다”며 즉시 반발하고 나섰지만, 미국은 단호한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밝혔지만 미-중간의 갈등 고조에 샌드위치 상태에 놓은 K반도체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삼성 레거시제품 일부 수출 차질 불가피할듯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 시간) 대 중 수출 통제 품목에 HBM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AI시스템에 특화된 고성능 메모리다. 현재로선 거대 AI모델 구현에 필수 부품이다.
미 정부의 이번 수출 통제조치는 메모리 대역폭이 초당 2기가바이트(GB) 이상인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는 현재 생산되는 모든 HBM스택을 포함한다. 이 조치가 효력을 발생하는 오는 31일부터 중국으로 가는 모든 HBM수출길이 막히는 것이다.
미국의 HBM 수출통제의 근거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 즉 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s)이다. 이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더라도 미국 특허나 소프트웨어,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HBM 등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에는 미국 특허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 대거 적용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국내 HBM업체들이 이 규정을 피해갈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일단 미국의 대 중국 HBM 수출통제로 인한 피해는 삼성전자가 HBM업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이 50%를 크게 웃도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역시 중국수출 물량이 거의없다.
반면 삼성전자는 일정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은 2~3세대 레거시 HBM을 중심으로 중국수출 물량이 전체 HBM수출의 20% 가량 차지한다는게 업계의 추산이다.
삼성은 최근 5세대(HBM3E) 중심으로 믹스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최대 바이어인 엔비디아 납품승인이 늦어지며, 일부 레거시제품을 중국으로 내보내고 있다. 삼성 측은 이와관련 “수출 제한 조치를 면밀히 검토 중이며 관련 기관과 잘 협의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번 미국의 규제로 인한 삼성의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메모리사업부가 HBM생산을 5세대 중심으로 빠르게 중심이동하고 있는데다, 엔비디아에 5세대 12단 HBM공급이 조만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재집권 후가 더 문제..."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격"
당장 내년 1월부터 중국 수출이 막히는 만큼 이로 인한 일부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레거시 HBM가격에 2배가 훌쩍 넘는 5세대 수출이 본격화한다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변수는 삼성이 엔비디아 납품승인이 조만간 마무리된다는 가정하에 초기 공급량이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느냐다.
전망은 엇갈린다. 납품승인과 함께 빠르게 공급량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과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부정론이 상존한다.
우선 긍정론자들은 엔비디아가 삼성 제품에 대해 납품 승인을 내주는대로 대량 구매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구조적 근거를 내세운다. 차세대 AI가속기 B시리즈(블랙웰)의 양산에 돌입한 엔비디아가 보다 안정적인 HBM공급망 확충을 위해 하이닉스 의존도를 낮추고 삼성에 유의미한 오더를 낼 것이란 의미다.
반면 부정론자들은 HBM이 AI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비중을 감안할 때 엔비디아의 납품승인이 실제대량 공급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엔비디아-TSMC(파운드리)-하이닉스 3각동맹의 관계를 고려할때 엔비디아가 굳이 전략적 파트어인 하이닉스 물량을 대거 줄이면서 삼성을 밀어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 중국 HBM수출 통제가 K반도체업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지는 미국 AI반도체기업에 달려있는 셈이다. 특히 삼성이 만역 엔비디아와 기존 전략적 파트어인 AMD를 중심으로 5세대 HBM 비중이 가파르개 상승한다면 미국의 이번 규제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2기정부가 현 바이든 정부에 비해 대 중국 첨단산업 규제 강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이미 집권과 동시에 중국산 및 우회통로로 활용되는 나라에서 만든 제품까지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관세폭탄을 예고하는 등 1기 집권 당시보다 더 강력한 패권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저래 미-중간의 첨단산업 패권전쟁에 K반도체업체들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될 전망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