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총 6관왕에 오르며 올해 오스카의 최대 승자로 기록됐다. 이 작품은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편집상, 캐스팅상까지 휩쓸며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앤더슨은 이날 각색상과 감독상, 작품상으로 개인적으로도 오랜 무관의 시간을 끝내는 상징적 순간을 맞았다.
시상식의 중심에는 단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있었다.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를 각색한 이 영화는 권위주의와 시민 저항을 정면으로 다룬 정치적 색채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영화는 숀 펜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겼고, 편집상과 올해 처음 신설된 캐스팅상까지 더해 총 6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수상 소감에서 앤더슨은 “정말 대단한 밤”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시상식이 한 작품의 완전한 독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시너스(Sinners)’도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트라우마를 다룬 시대극적 호러 판타지인 이 작품은 총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마이클 B. 조던은 이 영화에서 ‘스모크’와 ‘스택’이라는 쌍둥이 역할을 소화하며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라이언 쿠글러는 각본상, 루드비히 예란손은 음악상, 오텀 듀럴드 아카포는 촬영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특히 아카포는 아카데미 역사상 촬영상을 받은 첫 여성으로 기록됐다.
여우주연상은 ‘햄넷(Hamnet)’에서 상실감에 무너지는 어머니를 연기한 제시 버클리에게 돌아갔다. 그는 골든글로브, BAFTA 등 시상식 시즌 주요 상을 휩쓴 데 이어 아카데미까지 석권하며 올해 가장 강력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여우조연상은 ‘웨폰스(Weapons)’의 에이미 매디건이 수상했다. 75세의 매디건은 오랜 배우 경력 끝에 이룬 늦깎이 영예로 큰 박수를 받았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이번 오스카는 의미가 컸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와 ‘시너스’가 모두 워너브러더스 작품이라는 점에서, 속편과 리메이크 중심으로 흘러가던 할리우드 안에서 대형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투자 전략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A24의 ‘마티 슈프림(Marty Supreme)’은 9개 부문 후보에 올랐음에도 단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했고, 브라질 영화 ‘더 시크릿 에이전트’, ‘부고니아(Bugonia)’ 역시 무관에 그치며 독립영화 진영에는 아쉬운 밤이 됐다. 넷플릭스는 ‘프랑켄슈타인’, ‘K팝 데몬 헌터스’ 등을 앞세워 역대 최다인 7개의 오스카를 가져갔다.
기술 부문에서는 넷플릭스의 ‘프랑켄슈타인’이 강세를 보였다. 이 작품은 의상상, 분장상·헤어스타일상, 미술상을 받아 총 3관왕에 올랐다.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는 ‘K팝 데몬 헌터스’가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감독 매기 강은 수상 소감에서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들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속 여론 통제를 다룬 ‘미스터 노바디 어게인스트 푸틴(Mr. Nobody Against Putin)’이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았고, 학교 총격으로 숨진 아이들이 남긴 빈 방을 조명한 ‘올 더 엠프티 룸스(All the Empty Rooms)’가 단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또 실사단편영화상에서는 ‘투 피플 익스체인징 살리바’와 ‘더 싱어스’가 공동 수상하는 드문 장면도 연출됐다.
올해 시상식 진행은 코난 오브라이언이 맡았다. 그는 영화 ‘웨폰스’를 패러디한 오프닝으로 분위기를 띄웠고, 3시간 30분이 넘는 긴 행사 동안 날카로운 할리우드 풍자와 유머를 섞어 비교적 가볍고 유연한 흐름을 이끌었다. 정치적 언급은 예년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수상작과 다큐멘터리, 추모 무대 곳곳에서 여전히 동시대의 불안과 저항, 기억의 문제가 스며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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