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의 '아픈손가락'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이 갈수록 코너에 몰리고 있다. 삼성이 파운드리 세계정복을 선언하며 극복대상으로 꼽았던 세계 최강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무려 55%포인트(p)까지 벌어진 데다, 후발업체들의 추격이 매우 거세기 때문이다.
삼성은 현재 TSMC를 따라잡는 것은 고사하고,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더 걱정해야할 판이다.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던 인텔이 실적부진에 파운드리 분사를 선언하며 떨어져 나갔지만, 중국 SMIC와 일본 라피더스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굴기의 상징 중 하나인 SMIC는 최근 미국의 반도체규제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급성장하며 삼성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3분기 기준 두 회사의 점유율 차이는 3.3%p에 불과하다. 여기에 반도체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파운드리 전문기업 라피더스가 최근 미국 빅테크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으며 존재감을 키우기 시작했다.
◆SMIC 맹추경에 일본 파운드리의 미래 라피더스 꿈틀
메모리, 비메모리, 파운드리를 아우루는 완성형 반도체왕국을 꿈꾸던 삼성의 파운드리사업은 최근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시장 점유율은 3분기를 기점으로 한 자릿수로 추락했고, 적자누적이 이어지며 삼성 반도체 전체 실적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난공불락의 TSMC는 이제 점유율을 65%대까지 끌어올리며 범접하기 어려운 상대가 됐다. 더이상 삼성이 TSMC의 라이벌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지경이다. 설상가상 3위까지 올라선 중국 SMIC가 삼성을 3%대 포인트대로 빠르게 쫓아온데다, 일본 파운드리의 미래 라피더스가 꿈틀대고 있다.
라피더스는 2022년 설립, 업력 3년차의 신생 파운드리기업이다. 그러나 그 배경을 보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라피더스는 설립부터 일본 정부가 주도했다. 반도체부활을 위해서다. 출자기업도 화려하다. 도요타, 소니, NTT, 소프트뱅크, 미쓰비시, NEC 등 내로라하는 일본기업이 동참했다.
일본은 사실 원조 반도체 세계 최강국이다. 아직도 반도체 관련 원천 기술력이 막강하다. 소재, 부품, 장비 등 후방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같은 강력한 인프라에 일본 정부가 반도체산업의 부활을 위해 대대적인 정책 지원까지 등에업은 라피더스의 부상은 삼성에 큰 위협요인이다.
특히 라피더스는 설립 배경 자체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수요국인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동맹 구축의 부산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미국 바이든 정권과 일본 기시다 정권이 첨단 반도체산업을 경제안보의 핵심자산으로 판단, 중국과 대치중인 TSMC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목적 아래 라피더스가 탄생했다.
◆엔비디아·텐스토렌토 등 빅테크 라피더스에 러브콜
라피더스의 설립 자체가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패권을 둘러싼 미-일의 공조체제와 두 나라의 첨단 반도체 기술의 결합이란 배경을 깔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만큼 라피더스는 신생기업임에도 TSMC, 삼성 수준의 최첨단 선단 공정에 생산과 영업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최근 글로벌 AI기업들이 라피더스와 협력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반도체의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가 이끄는 텐스토렌토가 최근 라피더스와 칩 생산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래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캐나다 AI반도체설계업체 텐스토렌트는 최근 설계 수탁을 받은 반도체생산 주문을 라피더스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켈러 CEO는 "속도를 중시하는 라피더스와 협업해 일본에서 우위에 선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텐스토렌트는 이에 따라 연내 일본 도쿄에 거점을 마련하고, 100명의 반도체 설계 기술자를 모집해 현지에서 개발 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파운드리 시장의 최대 바이어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도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엔비디아 AI서밋' 행사 후 GPU 파운드리 물량 일부를 라피더스에 맡길 의향이 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그는 "라피더스에 신뢰를 갖고 있다"며 "그때가 온다면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 케이던스도 라피더스의 2나노 공정을 지원하고 다량의 설계자산(IP) 포트폴리오를 함께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IP는 반도체 기능을 구현한 설계 블록으로 반도체 제조 공정을 2~3년 단축할 수 있는 파운드리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엎친데덮친격 삼성, 재도약 돌파구 찾아낼까
이처럼 미국의 AI기업을 중심으로 빅테크들이 라피더스와의 협업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라피더스가 갖고 있는 잠재력에 반도체 보조금 및 규제완화 등 일본 정부의 파격적인 정책 지원을 고려한 때문이라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라피더스의 본격적인 파운드리 시장참여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라피더스는 첨단 파운드리공장을 내년 4월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선발업체들의 물밑 기술 선점경쟁이 치열한 2나노급 선단 공정도 2027년부터 본격 양산체제에 돌입한다는 목표다. 이에 맞춰 일본정부도 내년에만 라피더스에 2000억엔(1조79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K파운드리의 간판 삼성의 고민은 늘고 있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파운드리 기술과 생산설비를 갖췄으나, 이에 걸맞은 오더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SMIC, 라피더스 등 후발기업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삼성 파운드리는 지금 선두 TSMC와 격차를 어떻게든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의 추격까지 신경써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몰려있다. 메모리 부문이 HBM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뺏기며 위기에 몰린 가운데, 파운드리마저 입지가 좁아져 엎친데덮친격이 됐다.
미래 성장동력에서 이젠 계륵으로 전락한 삼성 파운드리는 과연 현재의 위기를 딛고 재기할 수 있을까. 최근 반도체부문의 총체적인 근원경쟁력 회복을 모토로 내건 삼성이 과연 파운드리사업 재도약의 돌파구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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