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효율이 최우선시되는 서울의 중심부 광화문 광장이 오늘 하루만큼은 '느림과 멈춤'의 미학으로 채워졌다. 14일 오후, 서울시가 주최한 '2026 광화문 멍때리기 대회'가 열려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번 대회는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지친 뇌에 휴식을 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행위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대회장인 광화문 광장 북측 광장에는 사전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수십 명의 참가자가 모여들었다. 직장인, 학생, 주부, 외국인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이들은 정해진 구역에 앉아 90분 동안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오로지 '멍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참가자들은 잠을 자거나 졸아서도 안 되며,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말을 거는 행위, 웃거나 춤추는 등 동적인 움직임이 철저히 제한된 상태에서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대회의 승패는 단순히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 수집을 통해 결정된다. 주최 측은 15분마다 참가자들의 심박수를 측정하여 가장 안정적이고 일정한 수치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려내며, 여기에 현장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투표 점수를 합산하여 최종 우승자를 선발한다. 이는 육체적인 고요함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평온함까지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현장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정장을 입은 채 서류 가방을 옆에 둔 직장인부터, 환자복을 입고 온 참가자, 화려한 코스튬을 착용한 대학생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차림새로 멍때리기에 임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참가자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살폈으며, 주최 측은 참가자들이 갈증이나 더위를 느낄 때마다 부채질을 해주거나 물을 제공하는 '선수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대회의 흥미를 돋웠다.
이번 대회를 관람한 한 시민은 "광화문 광장은 항상 시위나 행사로 시끄러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수십 명의 사람이 단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며 "나 역시 일상에서 잠시라도 뇌를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멍때리기'가 실제로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뇌가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휴식을 취할 때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는 창의력을 높이고 정보를 정리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멍때리기 대회'는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환기하는 사회적 퍼포먼스이자 심리 방역의 일환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이 역사와 정치의 상징을 넘어 시민들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리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기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다음 대회 참가 자격 등이 주어졌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참가자들은 서울의 한복판에서 공식적으로 '합법적인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던 90분간의 시간이 최고의 보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노란 햇살이 내리쬐는 광화문 광장에서 펼쳐진 이 고요한 경연은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고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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