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의 연구자들은 어떤 직업이 AI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지, 또 누가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새로운 분석을 내놨다. 워싱턴포스트가 16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기술정책 연구기관 고브AI(GovAI)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진은 단순히 “AI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가”를 넘어, 노동자가 다른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적응 역량까지 함께 따져 직업별 취약성을 분석했다.
연구의 핵심 결론은 다소 역설적이다. AI로 인해 업무가 크게 바뀌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큰 직종 가운데 상당수는, 동시에 다른 일자리로 이동할 가능성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350개가 넘는 직업을 대상으로, AI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를 뜻하는 ‘AI 노출도’를 먼저 측정한 뒤, 학력, 다양한 경력 경험, 자산 수준, 연령, 대도시 거주 여부 등 직업 전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반영해 ‘적응 역량’을 추정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 분석에서 고노출 직종 3,710만 명 가운데 약 70%인 2,650만 명이 비교적 높은 적응 역량을 가진 집단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마케팅, 재무분석, 고객서비스처럼 AI와 업무 중첩이 큰 직종은 이론적으로 기계에 의해 대체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같은 고노출 직종이라도 미래는 같지 않다. 예를 들어 웹디자이너와 비서는 모두 AI 노출도가 높지만, 웹디자이너는 학력과 기술 전환 가능성, 도시 일자리 접근성 등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 적응 가능성이 높게 평가됐다. 반면 비서는 대체 위험은 큰데도 다른 양질의 일자리로 이동할 여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직종으로 분류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저적응·고노출 집단에 속한 사무·행정 노동자가 약 610만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분석은 AI 충격이 사회 전체에 균등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에 따르면 가장 취약한 직종군에서 여성 비중은 약 86%에 달했다. 통역·번역, 비서 등 여성 비중이 높은 사무·관리 보조 직무가 자동화에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크 무로는 이런 노동자들이 정책 논의에서 “시야 밖,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전망을 ‘정답’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제드 콜코는 AI와 노동시장에 관한 중요한 질문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브루킹스도 현재의 연구는 아직 “초기 국면”에 있다고 평가했다. 앤스로픽 역시 3월 초 연구에서 AI의 실제 노동시장 영향은 여전히 잠재력의 일부만 관측되고 있다며 신중한 해석을 주문했다. 다시 말해, AI가 당장 대규모 실업을 일으키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화이트칼라 직종이 가장 먼저 재편 압력을 받을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공통된 인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까지 AI가 미국 전체 노동시장에서 측정 가능한 수준의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자동화가 주로 공장과 생산직, 기능직에 충격을 줬다면, 이번에는 사무직과 전문직 같은 화이트칼라 영역이 더 먼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스탠퍼드대, 경제혁신그룹,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등의 상반된 연구 결과를 함께 소개하며, AI 일자리 논쟁이 여전히 불확실성과 모순 속에 있다고 짚었다.
역사도 이런 복합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전화교환원, 엘리베이터 운영원, 은행 창구 직원 등은 기술 변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된 대표 직업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기술은 예상하지 못한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스마트폰이 소셜미디어 마케팅과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을 낳은 것처럼, AI 역시 일부 일자리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 전환의 속도와 비용, 그리고 누가 더 큰 충격을 떠안게 되느냐에 있다.
결국 이번 분석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가 아니라, “누가 더 잘 버틸 수 있고, 누가 전환 과정에서 뒤처질 수 있느냐”는 데 있다. 많은 고학력·고숙련 노동자는 새로운 일로 이동할 수 있겠지만, 여성 중심의 사무·행정 직종처럼 전환 여력이 낮은 집단은 더 큰 정책적 보호와 재교육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AI의 미래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 충격이 결코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