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 이상혁이 다시 한 번 T1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했다. 18일 서울 종로 치지직 롤파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상혁은 T1과의 4년 재계약 배경과 향후 목표, 그리고 프로게이머로서의 철학을 차분히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그는 오는 2029년까지 T1 유니폼을 입고 활동하게 된다.
이상혁은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은 ‘원클럽맨’으로, T1의 아이콘을 넘어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 전체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월드 챔피언십 우승까지 더하며 개인 통산 6회 월즈 우승(V6)과 쓰리핏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룰 것은 다 이뤘다”는 평가에 선을 그었다.
이상혁은 “4년 재계약을 하게 된 이유는 T1이 좋은 조건을 제시해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팬들에게 더 좋은 영감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아직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T1이 제시한 의미는 단순히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선수로서 존중받고 최상의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9년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프로 생활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였고, 은퇴 이후의 삶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며 장기적인 인생관을 드러냈다. T1에서 은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T1에서 마감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향후 2026년부터 2029년까지의 목표에 대해 이상혁은 “최대한 많이 발전하는 것”을 반복해 강조했다. 기량, 리더십, 팀 내 역할 등 모든 측면에서 더 나아지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십도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며 “게임 안팎에서 팀원들과 함께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나이에 대한 질문에도 솔직한 답을 내놨다. 30대 프로게이머로서 군 복무를 마친 선수들과 고령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그는 “e스포츠가 40대까지 경쟁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내가 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순간까지는 최대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AI와의 대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체스는 이미 AI에게 정복당했지만, LoL은 내년까지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인간 선수로서의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아시안게임 출전에 대해서도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 다시 도전하고 싶다”며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데뷔 초 17살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해 이상혁은 “특별한 조언은 없다”며 “정답을 알고 시작한 게 아니었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 목표였다. 그냥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열정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서는 “그냥 항상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며 담담하게 답했다.
라이벌로는 최근 ‘쵸비’를 언급했다. 그는 “상대할 때 정말 재미있고, 워낙 뛰어난 선수라 나 역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평가했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드문 e스포츠 구조에 대해서는 “한 팀에 오래 있는 것도 큰 의미가 있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며 장기 동행의 가치를 강조했다.
패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그의 성숙함이 드러났다. 2017년 월즈 결승 패배 후 눈물과 비교하며 그는 “지금의 패배는 분하고 억울함보다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계기”라고 말했다. “패배에 대한 재정의가 이뤄졌다”는 그의 말은 오랜 커리어에서 비롯된 철학을 보여준다.
이상혁은 끝으로 “우승도 중요하지만, 더 큰 목표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끊임없이 성장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전설의 기록 위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선택은, 왜 ‘페이커’가 여전히 e스포츠의 상징인지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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