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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名唱 정순임 선생

어머니 장월중선에게 주신 훈장

名唱 정순임 선생

名唱 정순임 선생, '옥관문화훈장' 수훈


어머니 장월중선에게 주신 훈장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인 정순임 명창이 문화 분야의 최고의 훈장(5등급)인 '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대통령 훈장이다.

정 명창은 "이 상은 내게 내린 상이 아니라 소리 불모지였던 대구·경북에서 국악을 진흥시킨 어머니 장월중선에게 내린 상"이라 했다. 여성스럽고 간결한 사설이 특징이며, 점잖은 소리로 유명한 정순임 명창은 1942년 전남 목포시 죽동에서 태어났으며, 1966년부터 경주지역에서 국악 후학양성과 예술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정 명창은 장석중(거문고 명인, 외증조부), 장판개(판소리 국창, 외조부), 장월중선(가야금 병창, 모), 정경호(아쟁산조, 오빠), 정경옥(가야금병창, 동생) 등 132년의 4代에 걸쳐 국악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국악 名家의 자손이다.

소리에 북, 해금, 거문고, 피리에도 능통했던 장판개 명창

지난 2007년 문화관광부는 정 명창 가문을 '전통예술 보존과 계승에 앞장선 국악 명가 1호'에 선정했다. 정 명창의 국악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조선 후기 판소리, 거문고 명인이었던 외증조부 장석중(張石中)에까지 닿는다. 가문을 국창(國唱)의 반열까지 끌어올린 명인은 외조부인 장판개(張判盖)였다. 15세부터 김채만의 수행 고수로 활동하다가 송만갑을 스승으로 모시고 3년간 춘향가 등 판소리 네 바탕을 연마한 장파개 명창의 소리는 청미함과 우람함을 겸비한 음성으로 저음에서 고음까지를 자유롭게 갖고 놀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리성(후천적으로 닦은 목소리)보다는 천구성(타고난 목소리)이 남달랐으며, 소리에 북, 해금, 거문고, 피리에도 능통해 20세 전후 그 명성이 삼남 일대에 자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전 명창이었던 장판개는 고종으로부터 혜릉참봉 교지를 받을 정도로 황실의 총애를 받았다. 송만갑의 주선으로 어전에 초대되어 ‘적벽가’를 부른 후 3정승 6판서를 매료시켰다는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런 창맥을 이은 정 명창의 어머니 장월중선이 국악계에 남긴 자취는 보통 예인의 경지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장월중선 같은 가·무·악(歌舞樂)에 능한 예인은 다시 나오기 어려워

정 명창은 “어머니는 할머니(장도순)의 ‘8잡기꾼’ 피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이 말은 국악의 전 분야를 통틀어 그 재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13세 때 광주에서 서편제 명창 박동실로부터 심청가 전 바탕, 고모 장수향에게 가야금풍류와 가야금산조를 배웠습니다. 이어 오태석에게 가야금병창, 정자선으로부터 살풀이와 승무, 이동안에게 진쇠춤, 승전무, 심불로, 한량무, 태평무, 신칼대신무, 박송암 스님에게 범패 홋소리, 짓소리, 나비춤, 천수바라, 법고 등을 이어받으셨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어머니는 당대 악기 명인들을 사사하며 거문고, 아쟁, 가야금, 해금에 피리까지 모든 악기에도 통달했습니다. 어머니의 예술 세계를 잘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장월중선처럼 가무악(歌舞樂)에 능한 사람은 전무했고 앞으로도 이런 예인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정 명창은 어머니인 장월중서 명창에 대해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걸 경주에 알려주고 간 만능 국악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연주 능력 못지않게 작창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비취거울, 청사초롱, 이차돈, 이순신장군, 국립창극단에서 ‘명창 임방울’을 작창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범패로 대통령상을 받은 어머니는 이후 판소리, 아쟁, 가야금, 거문고, 춤 등에 능통해 한국국악협회가 시상하는 국악대상 등을 받았습니다. 특히 무용의 주제가인 서라벌의 향가와 가야금 병창으로 '경주고도가'도 만들어 경주의 국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93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고, 그해 어머니는 가야금병창으로 경북도 무형문화재 19호 명인으로 지정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동편제, 서편제 구분 의미 없어... 소리는 본래 하나의 그릇

판소리에는 다양한 유파(소릿제)가 존재한다. 통상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그 동쪽은 소리가 우람찬 동편제, 서쪽의 아리고 가냘픈 서편제로 나뉘는데 동편제의 종장은 남원을 중심으로 한 송흥록, 순창을 중심으로 한 박유전은 서편제의 종자이다.

서편제의 고향인 호남에서 정통 국악을 배웠던 정 명창은 20대에 동편제의 한복판인 경주에 뛰어들면서 영남의 소리에도 일가견을 갖게 되었다. 애써 동편제의 가락을 배우지 않았지만 영남의 흥과 가락은 어느덧 정 명창의 소리와 삶 속에 녹아들었던 것이다. 서편제와 동편제의 차이점에 관해 묻자 ‘소리에 무슨 경계와 구분이 있느냐?’며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소리는 본래 하나의 그릇입니다. 둥글디 둥근 우주의 세계죠. 이쪽 지방과 저쪽 고을이 따로 없고 네 편 내 편이 없는 것입니다. 각자 있는 자리서 소리를 하면 두 성조와 억양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저는 영호남을 넘나들며 소리를 해왔지만 동서악(樂)을 구분하거나 우열을 매긴 적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동서를 아우르는 정 명창의 소리 세계

정 명창은 기악, 무용부터 창까지 다재(多才)한 끼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다. 그중 대표적 장기는 판소리 ‘흥보가’를 꼽는다. 200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정 명창의 ‘흥보가’는 송흥록-송광록-송만갑-박록주-박송희로 이어지는 정통 창맥의 계보를 이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주에 50년째 머무르고 있는 정 명창의 소리 특징은 우선 계면조(슬프고 애절한 가락)에 정통하다는 것이다. 25세에 경주시립국악단 강사로 오기 전까지 광주, 보성 등지에서 명창들을 사사하며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서편제 선율이 동편제의 본고장 대구·경북에서 동서를 아우르는 선율로 녹아든 것이다.

전통국악 발전 위해 후진양성과 전승 보전에 노력

정순임 명창은 1942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해 6세에 국악에 입문해 ‘춘향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배웠다. 15세에 임춘앵여성국극단에 합류해 도창을 맡았고 25세에 경주시립국악단 강사, 신라국악예술단 강사, 국립창극단 단원을 역임했다. 1999년 경희대대학원 최고정책과정을 이수했고 동국대, 중앙대, 부산대, 경북대 등에서 국악 판소리 실기강사를 역임했다. 제3회 전국판소리경창대회 대상(1981), 제3회 남도예술제 판소리부 특장부 대상인 대통령상(1985), KBS국악대상(1997), 금복문화상 국악부문상(2009), 제56회 경상북도 문화상 공연예술 부문(2015), 옥관문화훈장(2015) 등을 수상, 수훈했다. 정 명창은 현재 (사)한국판소리보존회 경북지부장, 새천향민속예술단장으로 재임 중이다. 정순임 명창은 "지금까지 걸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전통국악 발전을 위해 후진양성과 전승보전에 노력과 열정을 아끼지 않겠다"고 각오를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젊은 소리꾼 상당수는 스승의 목소리를 마냥 베끼기만 하는 ‘사진소리’로 전락함을 아쉬워하며, 자기만의 ‘더늠’(필살기)을 가지기 위해 정진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사진 김동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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