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산증인 이지송 LH사장 아름다운 퇴임
뚝심과 신뢰로 현대건설과 ‘부채공룡’ LH를 정상화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일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전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50년 동안 건설업계를 호령한 산증인이다.
2001년부터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현대건설을 2003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 사장은 5년 만에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을 시키는 탁월한 위기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100조원이 넘는 부채 공화국이라고 했던 LH를 청렴하고 건실한 기업으로 키웠다.
이 사장은 퇴임사에서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고 생존과의 싸움이었다”며 “변화의 개혁으로 통합 LH의 토대와 기틀을 세우고 경영정상화의 초석을 닦아 소임을 다 했다”며 건설업계을 아름답게 떠났다.
‘사명만 빼고 다 바꾸자’
이 사장의 나이는 70세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젊은 사람들 보다 더 빛날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해 왔다. 이 사장은 1965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한강유역협동조사단을 시작으로 건설업계와 인연을 맺었으며 수자원공사를 거쳐 현대건설에서만 약 30년 간 근무했다. 1999년 현대근설 퇴임 후에는 경기 운하 사장과 경북대학 토목설계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초반 건설업계를 이끌어가던 현대건설이 워크아웃 상태가 되자 이 사장은 2003년 3월 구원투수로 현대건설 대표이사에 복귀하여 3년 만에 경영정상화시켰다. 이 사장은 “다시 현대건설 사장직을 맡으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각오로 명예와 자존심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사장의 열정은 휴일과 휴가를 반납하고 명절 휴가를 이용해 중동 건설현장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뚝심으로 일을 할 때는 직원들은 호되게 몰아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사장은 정도 많고 부드러운 성격이라 직원들은 물론 수십 명의 출입기자들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장이었다. 현대건설을 정상화 시킨 후 퇴임할 당시 현대건설 노조는 이 사장 부부에게 감사의 글귀가 새겨진 금반지를 선물했다. 2009년 이 사장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통합한 LH 초대 사장으로 선임이 된다. 그가 LH 초대 사장으로 선임된 배경은 건설업에서 쌓아온 경력과 현대건설을 정상화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LH 출범 당시 부채가 100조원을 웃돌아 말 그대로 ‘부실공룡’이라 할 만큼 재무상황이 나빴으며 조직원들 간의 갈등과 반목의 골도 깊었다. 이때부터 이 사장의 변화와 도전, 그리고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이 사장은 LH가 ‘부채공룡’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사명만 빼고 다 바꾸자’라고 강조하면서 조직과 사업 전반에 걸쳐 개혁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 사장은 “사무실 칸막이부터 없애고 출신을 따지지 말고 하나로 뭉치자”며 조직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햄버거와 자장면을 먹으면 시간을 단축해 업무 파악했으며 사업성이 없는 신도시와 택지지구를 과감히 정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장관과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의 호통과 반발이 심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또한 이 사장은 강도 높은 부패방지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직무 관련된 비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공기업 최초의 지방 감찰분소 도입을 하고 입찰 전 과정을 완전 공개한 ‘LH클린심사제도’ 도입으로 업무의 투명성 강화와 비리직원에 대한 무관원 원칙을 확립하기도 했다.
이 사장의 청렴적인 회사 운영으로 LH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평가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청렴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면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공공기관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출범 후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사장은 LH 퇴직금 5000여만원을 노사통합 밑거름으로 쓰라고 기부했다. LH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현대건설 재임시절 확보한 200억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스스로 반납하는 등 공직자로서도 모범이 되고 있다.
이웃들과 함께 했던 LH 사장 이지송!
이 사장은 업무에만 탁월한 리더가 아니었다. 공공임대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마을형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만 60세 이상 실버사원을 채용하는 등 고용 확대에도 앞장섰다. 또한 간부들의 임금을 반납해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국가유공자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LH와 이 사장은 2010년에 일할 능력은 있고 축적된 경험도 있는데 재취업의 기회를 잡지 못한 고령자들 위해 국내 최초로 만 60세 이상 고령자 2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당시 일자리는 아파트 관리자지만 실버사원 선발에 무려 2만 2000여명이 응시해 1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마을형 사회적 기업’은 이 사장의 아이디어로 취약계층 일자리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마을형 사회적 기업은 공공임대단지 입주민과 인근 지역주민을 채용하고, 지역사회의 공익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다. 도시락사업, 두부공장, 콩나물 공장 등 사업을 벌이고 수익금은 지역 사회의 재생 등 다양한 지역사회의 목적과 가치 실현을 위해 재투자하는 기업으로 국내 최초 사회적 기업으로써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장과 임직원들은 임금을 반납하여 서민을 위해 금융지원을 하기도 했다. 조성된 지원금은 신용회복위원회의 `LH 행복 론(Loan)`계정에 의해 별도 관리되었는데 주로 공사의 임대주택 거주자 또는 영세자영업자 등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자금이나 시설개선 및 운영자금으로 지원되었다. 이 사장은 국가유공자들에게 주택을 마련해주는 ‘국가유공자 사랑의 보금자리 사업’도 추진하기도 했다. 이지송 사장은 "국가에 헌신한 고령자들의 쉼터를 마련하는 사업에 참여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그밖에 LH와 이 사장은 노숙인쉼터, 대학생 보금자리 등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주거복지지원 사업추진, 기동보수반 운영을 통한 클린 및 무상서비스, 무방문 소유권이전서비스 등 찾아가는 서비스로 고객감동을 실현하며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키웠다. 이 사장은 LH를 떠났다. 그는 평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해 왔다. 그의 평소 지론처럼 50년 동안 건설업계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
이제 70세라는 나이를 잊은 채 모교인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건설인생 50년의 산 경험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더 아름다운 향기를 준비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