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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4: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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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건설업계 산증인 이지송 LH사장 아름다운 퇴임

뚝심과 신뢰로 현대건설과 ‘부채공룡’ LH를 정상화

건설업계 산증인 이지송 LH사장 아름다운 퇴임

건설업계 산증인 이지송 LH사장 아름다운 퇴임

뚝심과 신뢰로 현대건설과 ‘부채공룡’ LH를 정상화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일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전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50년 동안 건설업계를 호령한 산증인이다.

2001년부터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현대건설을 2003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 사장은 5년 만에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을 시키는 탁월한 위기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100조원이 넘는 부채 공화국이라고 했던 LH를 청렴하고 건실한 기업으로 키웠다.

이 사장은 퇴임사에서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고 생존과의 싸움이었다”며 “변화의 개혁으로 통합 LH의 토대와 기틀을 세우고 경영정상화의 초석을 닦아 소임을 다 했다”며 건설업계을 아름답게 떠났다.

‘사명만 빼고 다 바꾸자’

이 사장의 나이는 70세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젊은 사람들 보다 더 빛날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해 왔다. 이 사장은 1965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한강유역협동조사단을 시작으로 건설업계와 인연을 맺었으며 수자원공사를 거쳐 현대건설에서만 약 30년 간 근무했다. 1999년 현대근설 퇴임 후에는 경기 운하 사장과 경북대학 토목설계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초반 건설업계를 이끌어가던 현대건설이 워크아웃 상태가 되자 이 사장은 2003년 3월 구원투수로 현대건설 대표이사에 복귀하여 3년 만에 경영정상화시켰다. 이 사장은 “다시 현대건설 사장직을 맡으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각오로 명예와 자존심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사장의 열정은 휴일과 휴가를 반납하고 명절 휴가를 이용해 중동 건설현장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뚝심으로 일을 할 때는 직원들은 호되게 몰아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사장은 정도 많고 부드러운 성격이라 직원들은 물론 수십 명의 출입기자들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장이었다. 현대건설을 정상화 시킨 후 퇴임할 당시 현대건설 노조는 이 사장 부부에게 감사의 글귀가 새겨진 금반지를 선물했다. 2009년 이 사장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통합한 LH 초대 사장으로 선임이 된다. 그가 LH 초대 사장으로 선임된 배경은 건설업에서 쌓아온 경력과 현대건설을 정상화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LH 출범 당시 부채가 100조원을 웃돌아 말 그대로 ‘부실공룡’이라 할 만큼 재무상황이 나빴으며 조직원들 간의 갈등과 반목의 골도 깊었다. 이때부터 이 사장의 변화와 도전, 그리고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이 사장은 LH가 ‘부채공룡’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사명만 빼고 다 바꾸자’라고 강조하면서 조직과 사업 전반에 걸쳐 개혁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 사장은 “사무실 칸막이부터 없애고 출신을 따지지 말고 하나로 뭉치자”며 조직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햄버거와 자장면을 먹으면 시간을 단축해 업무 파악했으며 사업성이 없는 신도시와 택지지구를 과감히 정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장관과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의 호통과 반발이 심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또한 이 사장은 강도 높은 부패방지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직무 관련된 비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공기업 최초의 지방 감찰분소 도입을 하고 입찰 전 과정을 완전 공개한 ‘LH클린심사제도’ 도입으로 업무의 투명성 강화와 비리직원에 대한 무관원 원칙을 확립하기도 했다.

이 사장의 청렴적인 회사 운영으로 LH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평가한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청렴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면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공공기관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출범 후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사장은 LH 퇴직금 5000여만원을 노사통합 밑거름으로 쓰라고 기부했다. LH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현대건설 재임시절 확보한 200억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스스로 반납하는 등 공직자로서도 모범이 되고 있다.

이웃들과 함께 했던 LH 사장 이지송!

이 사장은 업무에만 탁월한 리더가 아니었다. 공공임대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마을형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만 60세 이상 실버사원을 채용하는 등 고용 확대에도 앞장섰다. 또한 간부들의 임금을 반납해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국가유공자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LH와 이 사장은 2010년에 일할 능력은 있고 축적된 경험도 있는데 재취업의 기회를 잡지 못한 고령자들 위해 국내 최초로 만 60세 이상 고령자 2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당시 일자리는 아파트 관리자지만 실버사원 선발에 무려 2만 2000여명이 응시해 1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마을형 사회적 기업’은 이 사장의 아이디어로 취약계층 일자리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마을형 사회적 기업은 공공임대단지 입주민과 인근 지역주민을 채용하고, 지역사회의 공익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다. 도시락사업, 두부공장, 콩나물 공장 등 사업을 벌이고 수익금은 지역 사회의 재생 등 다양한 지역사회의 목적과 가치 실현을 위해 재투자하는 기업으로 국내 최초 사회적 기업으로써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장과 임직원들은 임금을 반납하여 서민을 위해 금융지원을 하기도 했다. 조성된 지원금은 신용회복위원회의 `LH 행복 론(Loan)`계정에 의해 별도 관리되었는데 주로 공사의 임대주택 거주자 또는 영세자영업자 등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자금이나 시설개선 및 운영자금으로 지원되었다. 이 사장은 국가유공자들에게 주택을 마련해주는 ‘국가유공자 사랑의 보금자리 사업’도 추진하기도 했다. 이지송 사장은 "국가에 헌신한 고령자들의 쉼터를 마련하는 사업에 참여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그밖에 LH와 이 사장은 노숙인쉼터, 대학생 보금자리 등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주거복지지원 사업추진, 기동보수반 운영을 통한 클린 및 무상서비스, 무방문 소유권이전서비스 등 찾아가는 서비스로 고객감동을 실현하며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키웠다. 이 사장은 LH를 떠났다. 그는 평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해 왔다. 그의 평소 지론처럼 50년 동안 건설업계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

이제 70세라는 나이를 잊은 채 모교인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건설인생 50년의 산 경험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더 아름다운 향기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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