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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3: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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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목숨을 건 업종변경, 대광수산 유원기 대표

엔지니어에서 수산업으로 재기하다

목숨을 건 업종변경, 대광수산 유원기 대표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111-198 대광수산 유원기 대표(53)는 수산업에 뛰어들기 전에는 전도양양한 기게설비분야 엔지니어였다.

유 대표가 소래공판장에서 꽃게 등 수산물중도매인으로 변신한지는 벌써 15년. 이 사업에 투신하기 직전에는 중견기업에서 생산과장소리를 들었고 월급쟁이 생활만 14년 동안 했었다.

소래공판장은 물때가 돼야 배가 들어올 수 있고 수산물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서 공판장경매가 시작된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경매가 진행되는 다른 공판장과 다른 점이다. 경매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열리지만 보름주기로 찾아오는 물때에 맞추어 시간이 결정된다. 소래 공판장에는 중도매인이 모두 13명이 있는데 유 대표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소래포구에 드나드는 어선은 총 4백35척이지만 요즘은 고기가 없어 1/3만 조업하는 정도이고 잡히는 어종도 꽃게, 잡어가 주류이다.

전국의 어느 어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소래포구도 지구온난화 등으로 수산자원이 갈수록 고갈돼 작년에는 공판장 사상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그 전년에 비해 어획고가 20∼30%감소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갈수록 심해져 어민은 말할 것도 없고 수협, 중도매인, 소매상 모두가 울상이다. 특히 어민들은 유류 값이 상승하면서 조업을 나가도 잘못하면 경비도 못 건질 수 있어 시름이 더욱 깊다.

소래공판장은 한창 성어기인 9∼10월 사리 때는 어획고 30톤을 기록하지만 겨울철 조금 때는 1톤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광수산 유원기 대표

유 대표는 소래 공판장 지정 중도매인으로 도매인 5∼6명 혹은 소매상에게 경매로 사들인 수산물을 넘긴다. 어획고가 많을 때는 구입한 꽃게를 냉동창고에 비축했다가 꽃게잡이가 끝나는

겨울철에 창고물량을 방출한다.

냉동비를 주고 대형 임대창고에 보통 10톤 정도는 저장해두고 수급사정에 따라 부족분이 발생하면 다른 중 도매인으로부터 구입해서 조달한다. 항상 불확실성이 따르기에 예상수요의 2/3만 확보해놓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외부에서 조달한다.

유 대표는 경북 문경의 산골출신으로 소래에 와서 바다를 처음 접했고 그전에는 수산물사업 은 꿈도 꿔보지 않던 사람이다. 1984년 대학 기계설비학과 졸업 후 용인에 있는 (주)남북에서 공

작 기계 만드는 일을 10년 정도하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남동공단국제다이아몬드라는 동일 업종 회사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생산과장까지 올라갔다.

이 회사는 CNC, 굴착기 등 자동화 기계를 만들어 삼성, 현대, 대우그룹에 납품하는 회사였는데 IMF위기를 맞으면서 유 대표도 직장을 나오게 됐다. 14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직장

생활만 하다가 최대위기를 맞은 것이다.

유 대표는 IMF로 실직한 뒤 거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생활을 했다. 앞날이 워낙 막막해 서울역, 영등포역 등의 노숙자 거리도 찾아가 대화도 나눠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데 가서 어떠한 일도 못한다는 오기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하고 소래포구로 뛰어들었다. 지인소개로 소래 어시장에 들어와 헝그리 정신으로 부딪히다 보니 2년

이 지나서야 모든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두 아들 두고 한창 정신 없이 뛸 때 부인도 식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가사를 도울 정도였는데 유 대표는 그게 두고두고 가슴에 맺힌다고 한다.

수산업이 전혀 생소한 분야라 과욕 부리지 않고 또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돈이라는 자세로 임했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줬고 유 대표 스스로도 신용을 쌓았기에 2년 정도 흐

르자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 벌려고 욕심내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견뎌 내다보니 IMF실직 때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두 아들도 무난히 대학공부를 마쳤으니 그게 남은 장사라고 말한다.

고객을 대할 때도 있는 그대로 현실을 솔직히 털어놓고 줄 것은 주고 요구할 것은 요구한다는 자세로 임하자 모두들 납득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 대표가 동생 및 조카들도 불러 같은 업계

서 종사하고 있다.

4평 규모 대광수산 사무실도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이 유 대표 혼자 꾸려가고 있지만 사업규모는 창업초기보다 10배 이상 확대됐다. 창업 4∼5년 후에는 2톤짜리 배도 구입할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농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어릴 때부터 보고 익혔기에 그게 IMF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유 대표는 소래포구의 가장 문제점이 주차난이라고 지적한다.

배가 싣고 온 수산물을 빨리 지상으로 옮기고 물때에 맞춰 배가 떠나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돼 하역이 지체되다 보니 수산물신선도가 떨어져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차문제 때

문에 어민은 물론이고 도, 소매인이 모두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구인난이 심하다는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실업자가 많다고 하는데 소래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야단들이다.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회풍조 때문에 일자리를 못 찾는 것이지 뭐

든지 하겠다는 자세만 있으면 소래에서 얼마든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실업자가 넘치는 세상인데도 소래 포구에서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인건비만 올라가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유 대표는 7년전 라이온스 클럽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최근에 탈퇴했다. 더러는 진정한 봉사자의 자세라기 보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나왔다는 것이다. 라이온스에 있을 때는 환경보호 캠페인은 물론 노인복지회관 무료급식, 청각장애인 보청기사업을 하거나 불우이웃에 쌀도 보내줬다.

요즘은 개인적으로 1년에 한번씩 광명에 있는 장애인협회에 일정액을 송금해준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씩만 보태주면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많기에 이웃을 돕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확산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장남은 인하대 인문사회대학 조교를 하면서 대학원 졸업반이고, 차남은 KBS에서 근무하고 있다.

유 대표의 인생관은 남에게 피해안주고 양보한다는 자세로 베풀고 살아가면 인생도정에 장애물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식들 공부도 마쳤기에 더 이상의 물욕 혹은 명예욕을 쫓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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