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천민자본주의를 그나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만든 것도 노동조합의 힘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들을 ‘귀족 노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부와 법률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힘을 키운 노조는 일반 노동자들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높은 임금을 받고,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적극적인 경영혁신에 대한 발목을 잡거나, 심지어 다른 약자에게 피해룰 주는 일도 벌이고 있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도 있듯, 오늘날 노동조합이 가진 막강한 힘과 권위로 인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왜 김용균씨 사건에 침묵했나?
지난해 12월 5일, 울산 현대자동차 새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이상수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거 전 공무원분들과 식사하면서 ‘울산 관공서 차량이 현대차가 아니라 기아차’란 소릴 들었다. 오너(정의선 수석부회장)는 한 분이지만, 기아차는 현대차의 경쟁사인데 왜 이렇게 됐을지 조합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역 주민이 현대차 안티, 국민이 현대차 안티라면 (제품을) 만들어도 안 팔리는 회사가 되는 것 아닌가?”
이러한 발언은 그간의 노조 활동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기도 하다. 사실 현대차 노조는 가장 전형적인 ‘귀족 노동’의 길을 걸어왔다. 누군가는 그들을 ‘철옹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균연봉은 9,0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평균치’일 뿐, 실제로 1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노동자들이 많다. 연봉만 높은 것이 아니다. 휴가도 철저하게 챙기는가 하면 정년까지 안전한 고용을 보장받는다. 일반 노동자들은 받기 힘든 고액 임금과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특히 공항이나 마트 노동자들의 경우 화장실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실질적인 식사 시간은 채 20분도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언제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대기업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노동자의 권익’을 찾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외주 노동자인 김용균씨 사건을 봐도 현재의 노조가 어떤 상태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김용균씨의 사망 이후 이후 ‘제2의 김용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반영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마땅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안에 대해 이 이들 노조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김용균 씨의 경우 외주 근로자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국내의 대기업 제조공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위험한 일은 외주로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조 역시 이러한 시스템에 동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 같은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면을 본다면 현재의 노조는 ‘자신들의 권리만 찾는 이익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보편적인 노동자들에 대한 대표성도 갖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노조가 방해하는 혁신활동
최근에는 건설노조의 악행도 비난받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는 ‘건설노조 불법·부당행위 유형’을 정리해 언론에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대규모 집회와 소음 ▲비노조원에 대한 신분검사 ▲고의적인 업무태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신고 ▲조합원 채용 및 기계 장비 사용 등의 요구 ▲비노조 건설 근로자의 일자리 밀림 현상 ▲건설현장 작업 방해 ▲추가 공사비 요구, 공기 지연, 품질 저하 등의 피해 발생 ▲지역 내 주민 생활권의 침해 등이 있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건축현장에 대한 규제 사항이 500개나 된다. 만약 이를 탈탈 털어 찾아내면 여기에 당하지 않을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노조가 비판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경영혁신’에 대해서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인해 생존의 문제가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자신들의 성과급 투쟁을 벌이곤 한다. 함께 허리를 졸라매고 함께 노력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회사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 실제 과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노조가 혁신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결론도 있다.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다니엘 브래들리 교수팀은 노조가 조직된 후 3년 동안 특허 건수는 8.7%가 줄었고, 특허 1개당 인용횟수는 12.5%가 감소했다는 조사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는 특허의 양과 질이 모두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기업이 충분히 혁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노조 활동을 통해서 저숙련, 저생산성 노동자에게도 고임금을 주면 역시나 기업의 경영활동은 방해를 받게 마련이다. 실제 현대차에 저숙련 노동자들을 투입하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오리엔테이션을 겸해 4시간 정도 교육을 시킨 후 주말 특근에 투입했지만 생산 효율은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 말은 곧 ‘알바 수준’의 노동자가 엄청난 고임금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경영활동에 타격을 주는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노동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노동자들은 오히려 기술의 혁신과 발전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실제 한 노동자 커뮤니티에서는 4차산업혁명과 신기술에 대해 이런 글이 있다.
“기술 혁신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리라는 기대는 자본가들이 왜 신기술을 도입하는지에 관한 순진한 오해에 따른 것이다. 기술 혁신을 중립적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본가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이윤을 위해 혁신 기술을 도입한다.”
기술마저 자본가VS노동자의 프레임으로 보는 시선에서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대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노조는 끊임없는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느 단체, 어느 조직에나 문제는 발생하고,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바로 ‘자정 능력’이다. 경찰 중에서도 뇌물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다고 경찰 전체를 부패 집단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황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자정 능력이 없다면 그 부패의 크기는 점점 늘어나 결국에는 조직 전체를 덮어버리게 된다.
우리 사회 민주화와 노동자의 인권을 지켜온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반성과 자성을 통해 다시 건전한 이익 단체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몰염치의 연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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