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현한복 신숙영 원장
전통과 현대의 지평에 서서
한복의 한류 코드를 완성하다
보담재(步譚齋). 숙현한복 신사옥의 당호(堂號)였다. 한자는 다를지언정 추사 김정희의 당호이자 명호인 보담재를 이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
우리네 전통 담벼락을 천천히 걷는 심정으로 한 땀 한 땀에 정성을 들여 한복을 짓는 숙현한복은 수많은 드라마의 전통 복식을 통해 우리 곁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섰던 곳이다.
숙현한복이 청담동 사옥 보담재로 터를 잡은 것이 6개월째. 투명한 유리문을 열자 새악시 입술마냥 붉디 붉은 벽과 청사초롱 불밝히 듯 아름다운 비단이 물결쳐왔다.
가업, 그리고 한복의 시대적 사명
한복을 디자인하는 신숙영 원장의 이름과 한복 원단을 짓는 남동생의 이름을 따서 숙현한복이 되었다. 남매가 사이좋게 어우러진 이름자에서도 알 수 있듯 숙현한복의 기저에는 한복 가문으로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자부심이 있다. “가업이었지만 한복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한복이 우리 곁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선택이 아닐까 우려도 했었지요.” 그러나 한복이 지닌 그 희귀성으로 인해 선택은 확고해졌고 살아갈 이유는 분명해졌다.
한복이 그저 우리 옷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요. 전통과 삶, 그리고 옛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이 옷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숙현한복은 그에게 옷이라기보다 작품이고 작품이기 앞서 영혼이다. 숙현한복의 오늘이 있게 된 바탕에는 한복 명가의 정통성과 장인정신이 있다. 1942년, 가족들이 누에고치 밭에서 누에고치를 수거해서 실을 뽑아 직접 비단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던 풍기상회가 숙현한복의 시작이다. 1976년, 나라직물로 이름을 바꾸어 품질좋은 원단을 전국으로 유통시켰고 중동에 원단을 수출한 공로로 정부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1987년 ‘그리나실크’를 창립, 2000년 ‘고운 우리옷 숙현’으로 오늘날의 기틀을 닦았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어머니 곁에서 한복 만드는 법을 보고 배우고 익혔던 신숙영 원장은 숙명여대 가정학과를 다니며 우리 전통복식사를 전문적으로 배웠고 신숙영 원장의 뒤를 이어 성균관대 전통복식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한복을 짓고 있으니 4대에 걸쳐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60년을 이어온 한복의 숨결이 오롯이 숨쉬고 있는 곳, 숙현 한복에서는 디자인부터 원단, 그리고 한복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자체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우리 옷을 말하는 그 이름, 숙현
신숙영 원장에게로 와서 한복은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옷이 되었다. 한복을 가장 패셔너블하게 해석해내는 그녀의 시각은 경이로움을 넘어 하나의 드레스 코드로 완성되고 있다. “2011년도였던가요. LA 한국 총영사관저 패션쇼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늬 패션쇼와 달리 가든파티 형식으로 개최된 한복 패션쇼였는데 LA지역 문화, 언론, 학계에 계신 130여명이 우리 한복에 감탄해주셨지요.” 외국인들에게 “Wonderful!!"을 연발하게 했던 그녀의 한복은 ‘한 드레스(Han Dress)'로 통한다.
한복 특유의 고운 선과 전통을 계승하면서 모던하면서도 미니멀한 감각으로 디테일을 완성한 숙현한복은 유학생과 해외 주재원 가족, 외교관련 전문인들에게도 반응이 뜨겁다. 저고리를 입지 않으면 서구의 드레스보다 훨씬 화려하고 갖추어 입었을 때는 품위와 격을 더하는 정장이 되는 숙현한복은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식있는 옷이다. 더불어 우리네 전통 오방색이 곱게 어우러진 조각보, 살짝 살짝 비치는 시스루 스타일 등 변화무쌍한 시도 또한 멈추지 않는다.
파티드레스로도 손색이 없고 VIP를 맞이하는 공식석상에서도 더없이 어울리는 옷으로 숙현한복이 선택되는 것은 현대적 코드와 한복의 정통성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디자인이 중심을 지키고 있어서다. 혼사를 앞둔 양가 모친의 혼례복으로 숙현한복이 유명해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되 입은 사람의 내면과 기품을 한없이 드러내게 하는 깊이있는 카리스마. 모든 사람을 한없이 포용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정중동(靜中動)이야말로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한복으로 알리게 한 저력이다.
한류드라마 속의 숙현한복, 세계를 휘감다
한국사극 드라마가 한류 붐에 크게 일조했다 본다면 한류 드라마 뒤에는 신숙영 원장의 내공이 숨쉬고 있다. 우리의 맛을 세계로 전한 드라마 <대장금>를 비롯해 100부작의 대작으로 안방극장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연개소문>, <돌아온 일지매>,<동이>,<제중원>,<왕과 나>에 등장하는 그 모든 한복이 숙현한복에서 제작된 의상이다.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로 전했던 신숙영 원장에게 <대장금>은 각별한 드라마다. 중국,베트남,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게 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극에서 전통혼례의상, 전통한복 및 궁중복식을 재현했던 그 실력을 현재 방송 중인 MBC 드라마 <허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신숙영 원장은 “한복은 이영애가 단연 최고지요. 한혜진, 한효씨, 이소연 또한 한국적 자태가 빛나는 스타들입니다.”라고 귀띔한다. 수많은 드라마와 세계적인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신숙영 원장. 그러나 시종일관 그녀는 따뜻하고 온화하게 천천히 인터뷰를 이어갔다. 숙현 한복이 지니는 고아한 품위의 기저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드라마를 통해 숙현의 한복과 연을 맺은 스타만 해도 수십여명. 금보라, 정영숙 등 많은 중견 연기자들이 숙현한복의 오랜 손님이다. 세계무대를 향한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 세계화상논단 패션쇼, 중국상해와 일본 도쿄돔 등 아시아 전역은 물론 전 세계 무대 어디나 숙현한복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런웨이다. 5월 16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개최되는 <지구촌 문화나눔이>행사에서 다시 한번 숙현한복의 진가가 확인된다. 1부에는 드라마의상, 2부에는 한복 드레스로 패션쇼를 펼치게 될 이 행사는 숙현한복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우리 한복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녹의홍상(綠衣紅裳)은 물론 청, 적, 황, 백, 흑의 우리나라 오방색을 한껏 펼쳐내는 세계적인 한복디자이너 신숙영 원장. 그녀가 사랑하는 색깔은 ‘라일락꽃’색이다. 세상 모든 색과 세상 모든 옷감을 아우르는 그의 색깔은 그 어떤 명징한 빛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자연이 그려낸 빛이라는 점이 새롭다. 조용조용 아껴뒀다 귀하게 걸음하게 하는 숙현한복. 이 곳이 있기에 우리 한복의 내일은 밝다.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사라져가는 한복을 현대적으로 구현하고 한복으로써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신숙영 원장의 꿈. 오늘 그 꿈이 가치롭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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