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에 빠진 것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럴 가능성을 부정하지만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중국의 경착륙 등의 비관적 단어들도 언론을 장식한다. 무역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초국적 금융시장 등으로 묶인 세계 경제는 어느 한 나라의 상황도 수수방관할 수 없도록 만든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와 예견과 전망 속에서도 경기 침체의 출구가 멀다. 해법은 없을까. 출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공직생활 30년 경제통, 민간에서 시장경제연구 15년의 결론
우리나라에 경제연구소는 많지만 순수 민간경제연구소는 몇 되지 않는다. 재원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 세미나를 하자면 돈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민간에서는 충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제법 규모 있는 경제연구소는 대기업 부설 연구소이거나 국책연구기관들이다. 정부도 이런 연구소들의 지표나 보고서를 참고로 정책을 세운다. 그러나 이들의 출신을 고려할 때 한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안 될 일이지만, 신문 기사의 취사선택이 광고주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나 같은 이치이다.
그 몇 안 되는 민간연구소 중에 시장경제연구원이 있다. 김인호 이사장은 최초의 장관급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고 공직생활 30여 년을 마감한 후 10여 년간 민간에서 시장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과 민간의 실제를 모두 경험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각의 균형을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장경제연구원 회의실에는 ‘시장(市場)으로의 귀환(歸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김인호 이사장의 경제전문가로서의 지향점을 단번에 알게 한다.
그는 누누이 각종 인터뷰나 칼럼, 저서를 통해 ‘시장의 원리’에 충실한 경제운용과 기업경영을 강조해왔다. 저서 ‘길을 두고, 왜 길 아닌 데로 가나’에서 이 원리의 본질을 ‘자율의 원리, 정부 역할의 제약, 시장 참가자들의 경쟁과 자기책임, 수요자 선택의 원리’등으로 요약한 바 있다.역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최근의 국내외 경제에 대한 진단도 거기에서 출발했다. 길이 아닌데 가고 있는 것에 대한 질타이다.
경제침체는 시장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
김인호 이사장은 현 국제경제 불안을 두고 한쪽에서 지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론을 오히려 오류라고 되받는다.“문제를 정확히 인식해야합니다. 현재의 위기는 지구적으로 시장경제 법칙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선 버는 것만큼 쓰는 경제를 하지 않아서예요. 미국을 비롯한 유럽쪽에서는 버는 것 보다 더 쓰려고 하고, 중국은 대외관계에서 버는 것만큼 쓰지를 않고 있어요. 벌었으면 국제시장에서 사들이고 써야만 하는데 미국 국채만 사들이고 있어요. 일본,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의 결과가 시장에 충분히 환원이 안 되니 국민들은 소득을 절하당하고 있는 겁니다. 내수와 소비가 적어져 경제가 침체할 수밖에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미국이 버는 것만큼 써야 하는 원칙을 위배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경제 능력에 맞는 집을 가져야 되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자산이나 소득, 신용이 없는 사람도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었다는 것이다. 버는 것 이상을 쓴 것이다. 그 여파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그렇다면 장기 침체에서 탈출할 수 있는 당장의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미국과 유럽, 중국 경기가 회복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는 쪽도 있고 또 여전히 불안정하다고 하는 쪽도 있습니다. 개인적 견해로 하자면 전 후자 쪽입니다. 회복은 경기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돈을 풀어 경기 회복만 노리는 겁니다. 풀던 돈을 그치거나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고 조금 덜 푸는데도 이렇게 세계경제가 야단인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경제라면 돈을 풀어서 해결하는 것 보다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정면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의 과제는 구조조정입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시장경제 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우리 경제가 국제적으로 깊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우리가 직시해야 할 첫 번째는 세계경제환경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연구소를 동원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세계경제에 영향을 주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해답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세계경제가 어떻게 변화하든지 간에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체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넘어지더라도 덜 다칠 수 있게,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게 유연한 경제, 구성원이 책임을 분산해서 공유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해답은 바로 시장경제의 본질에 맞게 경제를 운영하는 겁니다.”김인호 이사장은 한국이 세계경제의 변동을 견뎌내고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가혹한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국민의 각오 없이는 지금의 수준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후배들이나 경제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이점을 항상 강조한다고 한다.
창조의 기본은 자유스러움과 유연함
한국의 경제는 지금 ‘창조 경제’를 통해 경제의 회복과 성장과 동력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김인호 이사장이 보는 창조경제의 개념은 무엇일까.“사람마다 쓰는 개념이 조금씩 달라 혼돈스러운 면이 있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경제이전에 ‘창조’라는 낱말에 대한 이해입니다. 창조는 가장 자유스럽고 유연한 환경에서 일어납니다. 규제나 제한이 많은 데서 창조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경제가 시장원리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면 자연스럽게 창조경제로 연결됩니다.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오로지 시장의 신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창조경제의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시장의 원리’를 강조하면 친대기업적 성향이나 기득권 옹호자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어찌보면 기업운영 역시 ‘시장원리’에 충실하지 않게 운용돼 왔다는 방증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서민경제’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시장주의자 김인호 이사장이 보는 서민경제는 시장경제는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경제학에서 서민경제란 용어는 없습니다. 저소득층이나 중소기업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보다 적극적으로 돌보자는 경제정책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서민경제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용어인거지요. 그런데 서민경제를 강조하다 보면 왜곡 가능성이 있어요. 시장경제는 대기업, 잘사는 사람이나 서민층, 최저 소득층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공유하는 시스템입니다. 결코 잘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최대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성과에 따라서 분배를 받는 것이지요. 성과를 많이 올리면 잘살게 되는 것이고 조금하면 적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탈락자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장경제 안으로 끌어 들여 재기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시키든가 복지시스템 안으로 흡수하는 겁니다.
전체가 어울려 자연스럽게 경제가 운영이 되는 거지요. 국가의 인위적인 목표나 계획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의해 돌아가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경제 시스템입니다.”김인호 이사장은 지금까지 실험해 본 어떤 경제시스템, 가령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이 모두 실패하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시장경제는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완전한 것에 가장 유사한 경제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목도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경제전문가로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철학적 밑바탕이 있어야
우리나라 경제를 운운하면서 대기업 총수들의 일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에 대한 일반의 적대감정은 온전히 이들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재벌문제의 본질은 경영이 투명하지 않는 것,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것, 경쟁을 제한하는 경영을 하는 것, 부당한 상속을 하는 것 등인데 정부가 법을 지킬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현행법 체계로도 대체로 교정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기업의 총수 등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정부도 보다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기업정책을 펼 필요가 있어요. 기업에 대한 규제와 지원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해야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많은 기업관련 정책이나 제도가 각각 따로따로 놀고 있고 일관성이 없어요.”기업의 사회공헌이 기업 이미지와 깊게 연관되고 하나의 트렌드로 되어가는 흐름과 관련해서 의미를 묻자 의도의 순수성과 철학이 밑바탕이 되어야 지속적이 될 수 있고 진정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배임, 불법상속 등 일탈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고 나서야 사회공헌 한답시고 많은 금액을 내놓곤 합니다. 사회적 기여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서양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마지못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생활철학이 되어 있어요.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있다’는 성경말씀을 믿는거죠. 국가나 사회나 개인이나 리더가 되려면 베풀어야 합니다. 빌 게이츠가 돈 벌어서 자식 다 준다는 말 들어 봤습니까?개인이 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사회공헌을 하면서 직속의 계열기관을 만들지 않고 다른 단체에 기부도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제2의 부자 웨렌 버핏은 그렇게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제1의 부자 빌 게이츠가 만든 재단에 그 돈을 냈어요. 자기가 직접 계열기관을 만드는 것보다 그곳에서 더 잘 운용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우리나라에서 어떤 기업이 사회공헌 기금을 내면서 다른 기업이 만든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것 상상할 수 있겠어요? 이것이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힘이라고 봐요. 미국은 일면 엉망인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지도자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자세는 지극히 건전합니다.”
정부와 시장 융합하는 총정리격의 연구 목표
김인호 이사장은 우리나라 경제연구소의 풍토가 제대로 된 연구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견해다.“국책연구소나 대기업연구소에서 일년에 수 십, 수 백 개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꼭 연구해야 할 것들이 빠져있는 것 같아 그런 걸 찾아서 연구하는 것이 우리 연구원 목표의 하나입니다. 저는 정부와 시장이라는 상반된 두 영역을 공히 섭렵한 사람입니다. 이 둘을 융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정부와 기업 양쪽 모두에 균형을 맞춰 정책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문제의 핵심, 본질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문제의 본질을 떠나서 답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공직에서 오랫동안 경제통으로 일해 온 사람이 퇴임 후에 기업체와 연관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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