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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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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신라대학교 무용학과 이태상 교수

현대무용으로 전하는 따뜻한 소통의 무대

신라대학교 무용학과 이태상 교수

신라대학교 무용학과 이태상 교수

현대무용으로 전하는 따뜻한 소통의 무대

평화, 사랑, 치유. 행복한 마음을 전하고파

9월 19일, 부산 서동시장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춤사위가 이어졌다. 이태상 교수의 재능기부로 오랫동안 준비한 춤이었다. 60여 명이 함께 추었던 간단한 몸짓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태상 교수는 춤이 주는 메시지와 공헌에 뜻을 두어 ‘세계평화의 춤’으로 ‘유엔공로상’을 수상했다. 이태상 교수의 춤은 언제나 사회에 강렬하고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언제나 대중과 춤으로 소통하려 노력하는 이태상 교수를 만나보았다.

몸의 언어로 전한 ‘세계 평화의 춤’

부산 금정구 서동시장에서 열린 “세계평화의 춤” 시연회는 여러의미를 갖는다. 작은 몸짓들이 모여 전하는 사랑과 평화는 추는 이들 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부산대 유네스코 후원 클럽 대학생들과 국제대안학교 청소년 등 60여 명이 참가했던 19일 시연회는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더구나, 이태상 교수가 ‘유엔 공로상’을 수상한 것만 보아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교수가 창작한 이 춤은 사랑과 평화를 담은 간단한 몸짓으로 이날 시연 행사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세계평화의 춤'을 창작한 이 교수의 공로를 인정받아 19일 행사에서 유엔은 이 교수에게 '유엔공로상'을 수여했다.

"몇 달 전 제안을 받았어요. 좋은 의미를 가진 행사라서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했습니다. '사랑과 평화'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가진 춤이지만 전 세계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몸짓이어야 했죠. "

이 교수는 무대를 기획하며 60명의 인원을 통제하고 가르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마다 따로 연습해야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무대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세계 평화의 춤’을 선보이며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무엇보다 참여했던 학생들이 "춤을 추고 나니 굉장히 행복해요, 감사해요!"라는 말을 했다.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이 아닌 일반학생들이 춤을 통해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는 것, 더구나 그들의 춤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며 바라봐 주었다는 사실이 이 교수를 기쁘게 했다. 이 교수가 창작한 공연은 시장 바닥에서 한 공연이었으며 성공적이었다.

이 무대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고향인 부산에서 펼친 의미 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교수는 중앙대 무용학과로 진학하며 20여 년 고향을 떠나 있었다. 굵직한 무용 콩쿠르와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고 국내외 권위 있는 무대에 서며 춤꾼으로서, 안무자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선 제대로 된 춤판을 한 번도 펼치지 못했다. 1년 전 신라대 무용학과로 부임하며 20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온 이태상 교수가 부산 서동시장에서 보인 무대인 평화의 메시지는 스스로에게도 큰 감동이 되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번 계기를 통해, 춤이 주는 감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현대무용의 전하는 이 교수의 삶과 춤 이야기가 궁금하다.

질풍노도 소년이 춘 ‘반항의 춤’

이태상 교수는 키가 컸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외모가 주는 이미지가 인상 깊었다. 춤을 추기에 타고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인 그가 현대무용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이태상 교수는 춤을 시작한 계기를 ‘반항심’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남자가 춤을 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상도 부산 남자인 아버지에게 남자가 춤을 춘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춤을 추고 싶었다. 우연찮은 계기로 춤을 추게 되었고, 무용을 했던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무용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을 때에도 이태상 교수는 자신의 재능을 알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고등학교 때 그저 반항심으로 시작한 무용을 통해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앙대학교 콩쿨에 ‘경험삼아’ 나가봐야겠다던 이태상 교수는 덜컥 콩쿨 대상을 받는다. 훤칠한 큰 키에 그가 보이는 모든 동작들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의 재능이 유달리 돋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학에 입학 이후 국내외 유명한 대회에서 입상하며 재능을 뽐내었다.

‘반항심’으로 시작한 춤이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춤을 출 때마다 잡념이 사라지고, 충만한 기쁨을 느꼈다. 춤이 주는 매력이었을 것이고, 그만큼 이태상 교수가 춤을 통해 느꼈던 강렬한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태상 교수는 춤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표현하고 싶었고, 자신만의 개성과 방식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 마음에서 시작한 이태상 교수의 현대무용은 처음에는 ‘반항의 춤’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추는 ‘치유의 춤’

이태상 교수가 생각하는 춤은 단순히 보여 지는 몸짓이 아니다. 몸의 언어로 전하는 대화이자,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실제로 춤을 추며 자신의 내면이 치유받기도 하지만 보는 이들에게도 치유가 될 수 있다. 춤은 모든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 그렇기에 섬세한 감정 하나하나를 춤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 이태상 교수가 창작한 춤들이 깊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춤이 가진 섬세한 감각 덕분이다. 이태상 교수는 지금껏 사회문제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춤을 추었지만, 세 가지 부류로 변화해왔다.

처음에 추었던 춤은 추상적이고, 비쥬얼이 강한 춤이었다고 한다. 모호하면서도 몽환적인 감각을 춤으로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당시 이태상 교수는 추상적인 춤을 추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사회부조리를 연극적 현대무용으로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코뿔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작품은 다투고 화를 내는 사람들의 감정을 ‘코뿔소’에 빗대어 표현한 수작이다. 유네스코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싱가폴 등 해외 무대에 초청되기도 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를 메시지를 담아 표현하려고 했다. 대표적으로 <백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작품이 있다. 아동성폭력과 관련된 작품으로 그에 따른 아픔과 치유를 위해 문제점을 짚고 싶었다고 한다. 더구나 두 딸의 아버지인 이태상 교수는 딸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안무를 연출했다고 한다. 이태상 교수가 말한 치유의 춤은 춤을 추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담는다는 점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의 몸짓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뜻한 시선과 행복함을 전하는 ‘기쁨의 춤’

"국내외 많은 춤 무대에 섰는데 이번 행사는 좀 특별했어요. 현장 분위기도 많이 따뜻했고 무엇보다 춤을 추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 행복해지는 무대였죠." 부산 서동시장에서 ‘세계평화의 춤’을 시연하고 이태상 교수가 전한 말이다. 행복해진다는 것. 그 의미를 춤을 통해 발견한다. 춤이란 관객과 주고받는 대화이기에 얼마나 깊은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공연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서동시장에서 보인 무대는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이태상 교수는 관객과의 소통뿐 아니라, 가르치는 학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학생들에게 안무를 지도할 때도 늘 가르치는 말은 ‘소통’이자, 자신 역시 학생들과 ‘소통’하는 사이가 되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이 교수의 현대무용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현대무용은 몸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으로, 관객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커니즘을 총동원해서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교수는 현대무용은 어떤 장벽도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하여 아름다운 몸짓으로 관객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노력이 성공할 때에야 진정한 춤이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껏 그가 추었던 춤은 질풍노도 소년의 치기어린 반항의 춤일 수도 있고,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춤, 그리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사랑의 춤이었다. 또한, 사회적 부조리와 이슈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추었던 춤이기도 했다. 이태상 교수는 이제는 한국 현대무용의 2세대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춤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기쁘게 관객들과 소통하며 다양하고 섬세한 감각을 표현하면 될 일이다. 앞으로, 그가 전하는 몸짓의 언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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