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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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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장영동 교수

인술의 요람...약학발전에 묵묵히 정진, 제자에 대한 신뢰로 약학인재 양성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장영동 교수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장영동 교수

인술의 요람...약학발전에 묵묵히 정진, 제자에 대한 신뢰로 약학인재 양성

인간의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이고 보다 나은 건강한 삶을 안겨주기 위한 약의 역할은 고대로부터 현재 또한 미래사회의 진보에 있어 한 사람의 일생과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대상이다. 그런 만큼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에 관한 기초이론과 전문기술을 습득하고 관련된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약학 역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 진정성 있는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인성을 갖춘 약학인으로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며 협업과 소통으로 약학 분야 발전에 밀알의 발자취를 남겨온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장영동 교수가 35회 스승의 날 ‘대통령상’ 표창의 주인공이 되었다.

진리와 인성을 양성하는 영남대학교와의 인연

인술을 베풀고 싶었던 한 청년의 꿈은 약학인으로서의 인연을 맺게 했다. 장영동 교수가 약학대에 입학하던 당시만 해도 남학생들의 약학대 입학을 꺼리던 시기였지만 장영동 교수는 즐겁게 인술을 베풀 수 있는 약학과에 대한 남다른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한국문학통사를 집필하신 조동일 교수님께서 ‘영남대학교의 자유로운 학문의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처럼 영남대학교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학문을 탐구하는 열정이 가득합니다.” 장영동 교수는 1987년 약학대에 부임한 이래 28년간 몸 담아 온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을 이렇게 소개하며 영남대학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에 영남대에서 열리는 약학회에 참석했던 장영동 교수는 약학대학으로서의 영남대의 분위기가 참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977년에 약학대학원이 있었는데 지방대 중에서는 처음으로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이 약학회를 개최했습니다. 교수님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계신 모습이 좋았습니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영남대학교에 부임할 수 있는 기회도 그래서 더 놓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학회 참석 때 느꼈던 영남대학교는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열정 가득한 장영동 교수의 학교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값지고 빛나는 열매들로 돌아왔다.

“전공분야는 의약품합성학입니다. 약으로 쓰이는 화학물질을 만드는 것인데 가령 아스피린이 부작용이 있다 보니 아스피린을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우수한 약효를 가지지만 부작용이 적은 의약품을 설계하고 합성하는 걸 연구하는 학문분야입니다.”

연구결과물도 특별한 게 없고 열정은 있었지만 효율적인 교육자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수상이 부끄럽다는 장영동 교수. 그가 겸손한 미덕을 보여주고 있음은 지난 28년간의 그의 행보에서 잘 엿볼 수 있다. 학문에 대한 진지함과 책임감 있는 리더로서 역할을 해 온 장영동 교수는 약학계의 성장에 있어 많은 기여를 했다.

끊임없는 노력, 책임감 있는 헌신

장영동 교수는 1987년 3월 임용된 이래 약학과와 제약학과에서, 1994년 이후에는 약학부에서 유기약화학, 유기약품제조화학, 의약화학 등의 교육을 담당했다. 2011년 약학대학 학제 개편이후에는 유기약품제조화학, 방사성의약품학 및 약품제조공정학을 담당, 교육하며 약학발전에 공헌했으며 약학계와 약사사회의 핵심인력인 약사 양성에도 헌신해왔다. 1991년부터 4년간 약학대학 학장보를 역임하며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한약사, 약사법 파동으로 학생활동이 심각하던 시절 학생 한사람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게 하는 등 학생지도에 정성을 쏟았다. 학자로서의 면모 외에도 1998년과 2006년에 두 번에 걸쳐 약학대학 학장의 직무를 수행한 장영동 교수는 1998년 ‘약학대학 뉴스레터’를 발간하여 영남대학교 약학대학과 약학대학 동창회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등 남다른 리더쉽을 발휘하기도 했다. 약학대학 뉴스레터는 지금도 약학대학과 동창회원간의 소통 창구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에는 대학 본부의 기획처장직을 수행하면서 행정부서를 팀제로 개편함으로써 조직의 체계화 및 슬림화를 통한 행정 효율화와 예산절감을 주도하는 등 행정적인 역량을 인정받았다. 연구적 측면에서도 영남대학교 부설 약품개발연구소의 초대 간사로 활동하며 연구소가 대학교 본부의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1999년에는 연구소장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연구중심의 연구소로 자리를 잡는데 힘을 실어 주었다.

그 결과 약품개발연구소가 2002년 학술연구재단 지정 중점연구소로 지정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대학교 본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연구소 평가에서 항상 최우수 등급을 받는 연구소로 위상을 다질 수 있었다. 영남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진의 연구력도 함께 경쟁력을 높이며 약학대학의 연구력이 중앙일보 평가 등 주요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의 평가를 지속적으로 받는 쾌거를 낳고 있다. 장영동 교수는 약학대학의 연구력 증진에 정진하면서도 본연의 학문탐구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15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약물남용에 관한 심포지움을 개최하는 등 약물남용의 예방과 마약퇴치 교육에 기여하며 사회적 관련 단체들의 관심고취와 참여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인문학적 소양으로 삶을 품다

장영동 교수는 약학인으로서 인간애의 기본 인성을 지닌 학자의 기품을 풍기면서도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 왔다. 약학연구 외에도 평소에 가졌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최근에 정부가 주도하고 지자체가 후원하는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 기념사업 단체인 (사)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임진‧정유왜란시 의병활동에 참여했던 숨은 선비들을 발굴하고 그 역사적 기록을 정리하는 활동을 이어가는 그의 행보에서도 그러한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장동영 교수는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돌아가신 조부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 무릎에서 명심보감과 학식을 배웠습니다.”

시골 유지로 다양한 활동을 하셨던 장영동 교수의 할아버지께서는 그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분이다. “이조 말엽에 과거를 볼 기회를 놓치신 아쉬움과 나라 잃은 설움 등을 한시로 담아내셨습니다.” 장영동 교수가 대학 3학년 무렵 그의 조부는 직접 쓰신 글을 손수 문집으로 엮어 나가는 작업을 하셨다. 그가 군에 있을 때 조부는 돌아가셨고 조부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한시문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장영동 교수는 아버지가 작고한 후 직접 조부의 한시를 독학으로 공부하며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면적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한다.

부모의 마음으로 올곧은 제자 길러내

3남3녀의 다복한 가정에서 자란 장영동 교수도 슬하에 3남매를 두고 있다.

“가정은 교육이 시작되는 뿌리입니다. 인성은 부모에 의하여 형성되고 자라납니다. ” 가정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영동 교수, 그는 자식을 대하듯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한다. “교육은 전달하는 사람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먼저 그 지식을 접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육현장에서 미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개척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장영동 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믿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기 전에 제가 보기에 어긋나는 점이 보이면 혼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눈에 어긋나 보일 수도 있음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학생들의 행동도 무관심하게 간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장영동 교수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로 운동권이었던 한 여학생을 떠올렸다.

“지금은 40대 중반쯤 되었을 겁니다. 운동권에 있던 학생이었는데 여러 상황으로 인해 교수들과도 대화가 많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기회가 되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그때 그 학생에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개혁시키기 위해서는 학교를 졸업하는 일이 먼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교수의 진심어린 한 마디는 여학생의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비록 동기들에 비해 늦은 졸업을 했지만 약국을 잘 경영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그 무렵 우연히 스치듯 만난 제자는 환하게 웃는 밝은 모습으로 성장해 있어 흐뭇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학생들이지만 졸업 후 잊지 않고 연락을 주었던 많은 졸업생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것 같다는 말로 제자들을 추억하였다.

“영남대학교는 민족중흥의 새 역사창조에 기여할 인재 양성의 창학 이념을 기초로 설립된 학교입니다. 영남대 총장님이 대구향교의 석전제(釋奠祭)를 지낼 때 두 번째 잔을 올릴 정도로 영남 유학자들이 설립에 관여하였고 그 전통이 이어지는 명실상부한 명문대학이지만 요즘 대학마저 서울 중심으로 가고 있어서 영남대학교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장영동 교수는 대학 선택의 기준이 서울 중심으로만 치우지는 현상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지성의 전당으로서 ‘미래를 만드는 대학’ 영남대학교의 슬로건처럼 대학은 더 이상 지역의 울타리에 머무는 공간이길 거부한다. 우리의 대학들이 지역을 넘어 위대한 꿈을 꾸며 나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요람이 될 수 있는 힘은 그곳에 장영동 교수와 같이 학생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는 참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학문을 통한 더 깊은 의미를 일깨워주며 제자들의 삶에 등불을 밝혀주는 든든한 동행... 오늘도 장영동 교수는 묵묵히 이들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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