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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4 18: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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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완보완심(緩步緩心)의 지혜를 전하는 김성운 화백

김성운 화백의 작품 속에는 그 옛날 소박한 인정이 넘치던 시골풍경이 보이고 소를 타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신속함과 강함을 요구하는 게 요즘 세상의 흐름이지만 김 화백은 ‘느린 걸음으로 꾸준히 가라, 느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가라’며 완보완심(緩步緩心)의 지혜를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여 주는 듯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며 ‘고향’을 이야기하다 지난 해 2010년 12월 29일부터 2011년 1월 4일까지 종로 관훈동에 위치한 갤러리 수에서 김 성운 화백의 <고향회귀의 노래 5> 개인전이 열렸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자 소와 아이들, 구름, 산, 강, 나무 등 시골의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평단으로부터 ‘자연의 시인’이라는 평을 들어온 김 화백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향토색 물씬 풍기는 전원의 일상들을 화폭위에 담아내고 있다. 시인 신달자씨는 일찍이 김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해 “김 화백의 그림 속에는 언뜻언뜻 비치는 내 고향의 하늘과 바람, 나무

완보완심(緩步緩心)의 지혜를 전하는 김성운 화백

김성운 화백의 작품 속에는 그 옛날 소박한 인정이 넘치던 시골풍경이 보이고 소를 타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신속함과 강함을 요구하는 게 요즘 세상의 흐름이지만 김 화백은 ‘느린 걸음으로 꾸준히 가라, 느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가라’며 완보완심(緩步緩心)의 지혜를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여 주는 듯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며 ‘고향’을 이야기하다

지난 해 2010년 12월 29일부터 2011년 1월 4일까지 종로 관훈동에 위치한 갤러리 수에서 김 성운 화백의 <고향회귀의 노래 5> 개인전이 열렸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자 소와 아이들, 구름, 산, 강, 나무 등 시골의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평단으로부터 ‘자연의 시인’이라는 평을 들어온 김 화백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향토색 물씬 풍기는 전원의 일상들을 화폭위에 담아내고 있다. 시인 신달자씨는 일찍이 김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해 “김 화백의 그림 속에는 언뜻언뜻 비치는 내 고향의 하늘과 바람, 나무를 추억하게 만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김 화백의 작품은 그 옛날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을 떠 올리게 만들고 고향의 서정성과 순수함을 보여주며, 우리들의 지친 마음에 한 가닥 아련함과 포근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김 화백 자신도 “옛날에 형편이 어려웠을 때 느끼지 못했던 귀한 감수성을 현대에 와서 현대적인 방법으로 소가 반추하듯이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작품 관을 피력했다. 이번 <고향회귀의 노래 5>전시회에서 주목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고유의 굵은 윤곽선’을 유기(遺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이나 색 하나만으로도 화가의 화풍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화백은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굵은 윤곽선을 유기시키고 있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 화백은 “제가 디자인을 전공한 회화작가인데, 그러다보니 디자인에서 접할 수 없었던 회화성과 회화에서 접할 수 없었던 디자인 성 등과 같은 특징에 비중을 두고 작업을 해 봤습니다.”라고 말하며 “예전에는 굵은 아웃라인으로 표현한 반면 이번에는 기법 상에 중첩이라는 효과를 시도해 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기법은 구조주의와 해체주의인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이 되어 있다.”며 “전혀 다른 형태를 중첩 시켜서 색다른 표상을 구현하고자 힘썼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평소 김 화백은 후학들에게 “작가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지를 절단하는 순교적 영성과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형극의 인내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스스로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다. 이와 같이 그의 ‘버리는 작업’에는 분명한 미완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이런 미완(Nonfinito)의 완성은 바로 ‘텅 빈 충만’을 의미하며 역설적이게도 ‘중첩(Overlapping)’이라는 비표상적 조형언어를 통섭한 반전의 뫼비우스 띠처럼 미완을 전제로 한 반복이 함의 되어진 모(矛:창)와 순(盾:방패)의 작업이다. 우리 농경문화의 정서적 기호인 ‘소’를 중심으로 한 수구초심의 향리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 형상언어의 한 부분을 컴퓨터로 확대하여 이를 조형화시킴으로써 여러 대상의 화면이 유기적으로 반응하게 하여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스토리텔링을 추구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 이리하여 로직한 디지털의 도움을 받은 비표상은 서로의 긴밀한 결합(Intimate Union)과 선택, 또는 비 선택의 페토스를 형성하여 화면을 탈 형식, 비정형으로 데포르메(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시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 화백의 이번 작품의 소재들은 이미 존재했던 고향의 이야기들이지만 그것은 마음과 기억 속에 존재할 뿐,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비표상적 익명성(Anonymity), 곧 잔상의 간접체험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기호학의 함의를 바탕으로 드로잉 된 궁극의 기표로서 간명한 조형과, 어딘가 있을법한 익명의 초동들, 그밖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의 수수덤덤한 무표정, 무기교 등은 신비로운 은폐를 통해 더 많은 것, 더 깊은 것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소(牛)’와 소통하며 ‘일체(一體)’가 되다

푸른 밭 위로 소 한 마리가 앉아 쉬고 있고, 소의 몸에 기댄 아이도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소를 바라보며 쉬고 있다<봄과 불암산의 중첩>. 또 다른 작품에서는 소등에 앉은 아이가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잠자리를 잡고 있고, 소는 마치 잠자리를 몰기라도 하듯 워낭소리를 울리며 달린다<누렁소와 잠자리의 가을 중첩>.

이와 같이 이번에 전시된 김성운 화백의 작품 속에서는 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한국 적 농경사회에서의 소는 인간과 거의 동격인 가족 개념과 다름이 없다. 소는 친구이자 동료이며 가족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소 그림은 단순한 소재로서의 소가 아닐 터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소와 인간이라는 관계가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소년, 소녀들과 일상의 가족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기서 관계란 주객의 상대적 개념이 아닌 일치의 대대적 개념으로서의 관계, 즉 연기론의 통섭을 통한 소통과 일치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소는 서로 대화와, 노동의 나눔과 원효가 소등에 올라 앉아 기신론을 썼다는 말처럼 목가적 탑승과 취식이 있고, 소싸움을 즐기는 유희가 있어, 인간과 감정을 교감하는 선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11월29일 경북 안동 와룡면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일주일 만에 안동 전 지역으로 확산됐고, 파주를 거쳐 강원도 평창에서 충청도까지 확산되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마을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양성판정을 받으면 인근 500m내에 있는 소는 모두 살 처분 된다. 살 처분을 앞둔 소에게 마지막 여물을 주며 눈물을 훔치는 어느 시골의 할머니도 계시고, 소의 살 처분 소식에 차마 끌려가는 광경을 볼 수 없어 일찍 집을 나가버린 농부도 있다. 구제역과 같은 재앙 앞에 김 성운 화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들의 모습은 자뭇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며 진지한 반성마저 가지게 만든다. 소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동물이며 아울러 “소가 웃겠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행동거지가 가벼움을 비유할 만큼 무던함과 우직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와 같이 김 화백의 소 그림에는 노동하는 소보다는 노동 후에 한가로운 휴식이나 아이들과 평화롭게 놀아주는 소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의 작품 속에 소는 고즈넉한 한 폭의 산수화처럼 한국인의 문화유전적 DNA로서 산이요, 들이며, 강물이 되는 우리일상의 환경이고, 자연의 무대가 된다. 김 화백의 소는 단순한 소재로서의 소가 아니라 때로는 주연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자리하고 있고 아이들의 등장은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소박한 시절로의 회귀와 신앙적으로 죄 사함을 갈망하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요컨대, 김 화백은 그 옛날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이상향, 무릉도원을 그리듯, 소와 아이들, 구름, 산, 강, 나무, 들꽃, 열매, 초가, 원두막, 왜가리 등과 흙색의 소와 푸른 초원이 조화롭게 배치된 향토색 물씬 풍기는 전원의 화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김 화백은 소를 주제로 하여 ‘한국의 자생미학’을 표현하려 노력한 점은 비록 같을 지라도 안토니오 폰타네지의 목가적 풍경화 범주의 개연적 소 그림이나 아니면 이중섭, 양달석의 시대상황적, 도전적 반항과 현실도피 적, 반어법 맥락인 소 그림과 분명히 구별된다.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의 마음’ 으로 담아내는 ‘고향풍경’

김성운 화백은 그의 화풍에서 드러나 듯 화가의 꿈을 지닌 아이로 시골에서 자라왔다. 특히, 그는 지난 1988년 포도막염으로 실명위기까지 갔던 경험이 있다. 이때의 위기를 김 화백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뒤 과거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접어야 했던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붓을 다시 잡는 기회로 삼게 된다. 과거 힘든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김 화백의 경험들은 고스란히 이번 작품들에서도 반영이 되고 있으며, 나아가 성경을 우리 정서로 승화시키는 새로움마저 보여주고 있다. <도성 입성>, <애굽 피난>, <탄생하심>, <선한 사람> 등의 작품에는 예수의 생애와 성경이야기를 모티브로 접근한 성화(聖畵)로서 작가 자신의 신앙적 염원을 한국적 소재를 차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나귀나 말, 낙타 대신 소를 적용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한복으로 코디네이션 하여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흥미롭게 상승시키고 있으며, 더불어 성경의 역사 공간인 이스라엘의 건축물은 한국 성곽, 기와집, 초가집으로 재해석하고 이집트의 피라밋은 중국 계림의 산으로 탈바꿈하여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과 레위인, 바리새인, 동방박사 세 사람 등에게는 양반복식인 도포를, 제자들, 백성들, 아이들은 평민 복을 착용시켜 기독교문화의 토착화를 시도하고 있어 세계적인 것을 한국적인 미학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던가. 김 화백의 작품은 현재 미 의회도서관이 9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전원적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대표작가의 작품으로 담당 큐레이터에 의해 엄선되었으며 그는 한국의 정서로 세계적 조형어법을 찾기 위한 작업에 확신을 갖고 지속적으로 우리 자생적 미학 찾기에 천착(穿鑿)하고 있다. 김 화백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경향은 주님이 인간에게 주신 카리스마적 은총보다는 아카페 적 사랑이 온 화면을 적시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모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어미 소와 송아지의 내리사랑을 은유하고 있는 것과 하늘과 소통이라도 하려는 듯이 위로 향하는 미루나무의 신앙적 상징이 그것이다. 아울러 작가 고유의 특화된 조형어법인 ‘흩날리는 빛 조각’들은 조물주가 창조한 천연 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침잠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화백은 “단순한 햇빛이 아닌 감사의 빛, 축복의 빛을 나타내고 싶었다.”며 “제가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세가 이스라엘 국민일 때 하느님이 주신 ‘만나’라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구현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흔히 성화를 “빛의 기도”라고 말하듯이 ‘빛’이 의미하는 생명, 시간, 에너지에 감사하며 행복한 작업을 하는 김 성운 화백의 성화는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운보의 그것과도 다른 색다른 영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으로 이후 작가의 다양한 성화 시리즈 창작을 은근히 기대하게 하고 있다.

‘예술’도 결국 ‘나눔의 미덕’ 바탕 되어야

“나눔이라는 덕성은 이중으로 축복받은 것이요,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것이니, 미덕중에서 최고의 미덕이다.” 이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G20개최 등으로 한국은 그 어느 때 보다 세계적으로 국격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스러운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해마다 늘고 있어 자살률 세계1위라는 오명 또한, 가지고 있는 나라다. 어쩌면 이들에 대한 무관심은 자살자의 방관자가 아닐까 싶다. 소외된 이웃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김 성운 화백은 교수로서, 아울러 화단의 중견작가로서 누구보다 확고한 자신의 조형언어를 확고히 구축하며 한국화단과 교육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이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예술 속에 실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강조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나눔의 실천이다. 실제로 김 화백은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과 함께 시화전을 개최, 불우청소년들을 말없이 돕고 있다. “예술도 나누면 아름다운 사회로 갈 수 있고, 저 역시 제가 가진 작품들을 다 처분해서 불우한 이웃들을 돕고 싶다”는 김 화백의 말처럼 예술도 결국 나눔의 미덕이 바탕이 되었을 때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나눔의 예술철학을 김 화백은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에 많은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가 사나운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를 그린 소설<파이이야기>에 이런 라틴어 명문이 나온다. “선함이 없으면 위대함도 없다(Nil magum nisi bonum)”

인간의 선함과 종교의 진실함을 화폭 위로 담아내는 김 성운 화백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소박하고 진실한 정신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마치 우리에게 “선함이 없으면 위대함도 없고, 나아가 숭고함도 없는 거”라며 조용하지만 힘차게 말을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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