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단 6일 만에 세계 질서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유럽의 동맹국들은 그가 잠시 숨을 고르길 바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일주일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남겼다.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관세와 무력까지 거론하며 압박한 이후, 서방 세계는 기존 국제질서의 규범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됐다.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말했듯, 이는 ‘전환’이 아니라 ‘단절’이었다. 규칙과 신뢰에 기반한 질서는 사라지고, 힘과 위협이 지배하는 보다 거칠고 무법적인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년간 견고해 보였던 대서양 동맹의 신뢰 역시 이 균열 속에서 붕괴됐다.
NATO 동맹국을 향한 전례 없는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부터 이미 그린란드에 대한 소유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주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그 욕망이 NATO 동맹국을 상대로 한 노골적인 협박으로 표출됐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그린란드를 갖게 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힘든 방식”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를 “침공 위협과 관세 위협이 동시에 벌어진 한 주”라고 규정했다.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유화(appeasement)’라는 단어를 꺼내 들며, “유럽은 적뿐 아니라 동맹 앞에서도 약해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단어는 유럽 역사에서 뼈아픈 기억을 동반하는 표현이다.
EU 외교 관계자들 역시 “미국 행정부의 매우 비정통적인 수사”로 인해 만들어진 “극도로 불안정한 새로운 현실”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유사한 화법을 구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며, 유럽 동맹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공개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EU 정상회의 후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파트너십은 상호 존중과 예의를 바탕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백악관의 공격적 외교와는 극명히 대비되는 발언이었다.
유럽 내부에서는 마침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미국은 더 이상 자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 아니라는 자각이다. EU 외교정책 수장 카야 칼라스는 “지난 일주일 동안 대서양 관계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전 EU 정상회의 의장 샤를 미셸은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수십 년간 알고 있던 대서양 관계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한 EU 외교관은 “미국이 그린란드를 밀어붙인다면, 에스토니아를 방어할 것이라는 약속을 누가 믿겠느냐”고 말했다. 그린란드 사태는 유럽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유럽의 선택: 독립인가, 종속인가
트럼프의 압박 앞에서 유럽의 선택지는 분명했다. 맞서거나, 굴복하거나. 투스크 총리는 “유화는 결과가 아니라 굴욕만 낳는다”고 강조한 반면, 벨기에 총리 바르트 더 베버는 다보스포럼에서 “불행한 노예보다는 행복한 봉신이 낫다”는 냉소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EU 외교가에서는 방위 문제를 중심으로 백악관의 변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2025년까지 이어졌던 이른바 ‘트럼프 달래기’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다보스에서 미국의 관세 공세를 “근본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괴롭힘이 아니라 존중을 원한다”고 말했다.
EU는 이미 유럽 방위 공동 투자와 ‘유럽산 우선 구매’ 원칙을 중심으로 방위 산업 강화를 추진해 왔으며, 이러한 흐름은 2026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EU 차원의 군대나 안보위원회 창설까지 거론되지만, 아직 전면적 통합에 대한 정치적 의지는 충분하지 않다.
트럼프의 언행과 무관하게 유럽이 직면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번 주 키이우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고, 핀란드 정보당국은 발트해 해저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을 경고했다. 중동과 중국발 리스크 역시 여전하다.
EU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동맹국의 주권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공개적 대응은 신중하다. 유럽은 아직 러시아와의 장기적 충돌을 단독으로 감당할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유럽이 ‘무역 바주카포’를 언급한 이후 트럼프가 한발 물러서자 “그 변화에 감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발트 3국은 비교적 침묵을 유지했다. 리투아니아의 도빌레 샤칼리에네 전 국방장관은 “감정이 아니라 군사적·기술적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며, 유럽이 미국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려면 5~10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 역시 “대립보다는 협력이 핵심”이라며 “미국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이번 주는 유럽이 더 이상 과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확인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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