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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5:4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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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이규원 원장 - 인천 이규원 치과

인천 1억원 기부 클럽‘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이규원 치과원장

이규원 원장 - 인천 이규원 치과

인천 이규원 치과 이규원 원장

인천 1억원 기부 클럽‘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이규원 치과원장

“나를 객관화시킬 수 있어야 다른 사람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무료진료, 인천 학생 6․25 참전관 운영, 문화지 발간 등 전방위적 활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기부 클럽인‘아너 소사이어티’에 전국의 3만여명 치과의사 중에서 첫 번째로 가입한 인천 이규원 치과의 이규원 원장은 개원 25년을 넘기고 있는 치과의사이자 인천광역시의회 제4대 시의원을 지낸, 지역에서 존재감이 묵직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연인으로서의 그는 시대말로 ‘쿨’한 사람이다. 그의 사고방식이 그렇다. 현재 이규원 원장은 동종업이 밀집해 있는 블록(bloc)에서도 ‘잘나가는’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입의 절반 정도를 그의 관심과 애정을 자극하는 사회 봉사와 공익 사업에 쏟아 붓는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생활을 지나친 소박함으로 절제하지도 않는 것 같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수입이 많으면 자신을 위해 좋은 물건을 사고, 취향을 구하는 것은 눈치 볼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타인들도 똑같은 욕망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여력이 있는 내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다. 그에게서 건전한 자본주의의 순수한 면을 본다.

개원 직후부터 장애인 무료진료

이규원 치과에는 유독 지체부자유 장애인들이 많이 드나든다. 여기에서는 그들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는다. 그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이 자신의 신체를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수가 있는 직업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이규원 원장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장애인들의 치료비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치과가 잘된다. 그것이 장애인들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는 이유다. 이규원 치과는 25년전인 1989년에 개원했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 원장은 개원하자마자 장애인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공중 보건의를 할 때 병원선을 타고 의사가 없는 낙도에 진료를 다녔어요. 그때부터 장애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장봉도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혜림원도 방문했죠. 제가 한참 젊을 때라 세속적 욕망도 많은 때였는데 혜림원에 있는 장애인들이 저보다 행복해 보이는 듯 했어요. 그들을 보면서 기본적인 것을 채우고 나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 태도, 그게 행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요.”

장애인 무료치료를 하면서 자신도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더러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해 진한 감동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이규원 치과에는 20년째 그의 치과를 이용하는 40대 장애인 여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20대 때부터 줄곧 이규원 원장에게 자신의 치아를 맡겨온 셈이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쓰고 버스 번호를 읽을 정도 수준의 지능만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애인 여성은 치과에 올 때 가끔 자신보다 더 지능이 낮고 부자유한 장애인 친구들을 데려온다고 한다.

"그 장애인 여 환자를 볼 때마다 정말 바탕이 좋은 사람이구나, 세상이 참 살만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도 일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불편한 형편인데도 항상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쓰고 있는 거지요. 지성은 멈추었지만 따뜻한 마음은 오히려 자기 잘났다는 정상인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볼 때 마다 장하다는 마음이 들어 더욱 정성껏 치료하지요.”

치과 내에서의 장애우 무료 진료는 물론, 미추홀복지관의 요셉장애인치과에 정기 검진을 나갈 뿐만 아니라 양로원이나 소외지역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며 반드시 틈을 내 찾아간다. 장애인 단체에서 먼저 무료치료를 부탁해 오는 경우도 있다. 이규원 원장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무료진료와 봉사활동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주변에 쌓여 병원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일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며, 좋은 일의 선순환을 이야기 했다.

부친 도와 인천 학생들의 6.25 자취 담은 참전관 건립

이규원 치과 건물 1층에는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 있다. 매일 오후 4시에는 무료로 이규원 원장의 부친인 이경종 옹의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관람할 수 있다. 사재를 털어 기념관을 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는 부친 이 경종 옹의 사연이 있다.

이경종 옹은 6․25 조국수호(북은 조국해방) 전쟁 당시 참전용사다. 전쟁 중 생긴 허리병을 앓았는데 1995년 어느 날 같은 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중에 신문에서 6․25참전 용사 증서를 발급한다는 소식을 읽었다. 이경종 옹은 6․25전쟁 당시 인천상업중학교(현 인천고등학교) 3학년인 16살의 소년병으로 형을 따라 참전해 20살에 제대했다.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바쳤던 애국적 열정의 보상은 50여 년이 지난 후 정부가 건넨 종이 증서 한 장이었다.

이경종 옹은 허탈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 당시 인천지역에서 같이 참전했던 3000여 명의 학도병들에 대한 회상에 젖었다. 전쟁터에서 함께한 학생 전우들의 형편이 궁금했다. 그때부터 이규원 원장은 부친을 모시고 6․25 참전 인천 학생들의 자취를 더듬어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친의 참전 용사증을 보는데 저도 미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6․25 참전 인천 학생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었지요. 그리고 6․25 참전 전사 인천 학생이 206명인 것도 발굴해냈습니다. 그때부터 어떤 책임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잊힌 참전 역사를 기억하고 선대 사람들의 투철했던 애국정신을 후대에 알려주고 싶었어요.”

50여년 세월이 흐른 뒤, 6․25 참전 인천 학생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은 실마리만 있어도 무조건 달려갔다. 그곳에서 작은 정보라도 얻으면 그것을 가지고 또 다른 연결점 찾기를 반복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19년 동안, 발품을 판 결과 약 2,500여 점에 달하는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흔적이 담긴 사진과 증서, 인쇄자료, 훈장증, 전사 통지서 등을 모을 수 있었다. 이규원 원장은 이 자료들을 모아 자신의 병원 건물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열었다.

4권으로 엮어진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

인천학생 6․25 참전관은 추모의 벽, 추억의 벽, 기억의 벽 등 세 개의 테마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 6․25 조국수호(북은 조국해방)전쟁의 기억을 소환해서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가 전쟁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공간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이규원 원장이 6․25 참전 인천 학생들을 더욱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애국 참전의 대가로 얻은 것이 너무 볼품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인 이경종 옹은 참전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우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경종 옹의 친구들 중에는 은행 지점장, 교장 선생님, 고위 공무원 등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이경종 옹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이규원 원장을 키웠다. 청춘을 바치고도 나라로부터 혜택은커녕 현실적 삶에 고달파 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술회한다.

이규원 원장의 인천 학생 6․25 참전 기념사업은 직접 이들에 대한 서적 편찬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이 규원 원장은 아버지 이 경종옹과 함께 ‘인천 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어 3,000여 명 인천 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와 그리고 전사자 208명에 대한 참전사를 기록으로 밝혔다. 이 작업은 지난 2007년 1권 출판후 2013년 4권 출판이라는 방대한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앞으로 총 10권까지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행복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웃으면 행복해진다

전술했다시피 이규원 원장은 부친이 세탁소를 운영하여 집안이 어려워서,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하였으나, 대학은 성적우수 입시장학생으로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입학하여 치과의사가 되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현재 사회적 명망과 경제적 지위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규원 원장의 대단함은 이런 물질적 결과를 충분히 자기 것으로 누리면서도 사회적 배려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봉사와 기부를 통해 그것들을 풍요롭게 더욱 증식해 나가는 중이다. 이규원 원장은 인천중부경찰서와 전·의경 치아 무료 진료 및 구강교육 협약을 체결하고 25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의 치아 건강을 살피고 있다. 2012년부터 인천구치소에 재소자를 위한 기부금을 매년 1천만 원씩 전달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도 매년 1천 만원씩 기부했다. 인천보육원, 다사랑의 집, 한무리여성공동체 등의 운영에 이규원 원장의 기부금이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실히 노력하였습니다. 누구의 삶이나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닥칩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문제를 내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나에게 닥쳐오는 문제를 푸는 존재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화살이 날아오면 막고 총알이 날아오면 피하는 거지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다보니 안정된 생활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안에서만 만족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내가 먹고 싶으면 다른 사람도 먹고 싶은 것이고, 내가 갖고 싶으면 다른 사람도 다 갖고 싶겠지 라는 생각으로 항상 나를 객관화 시켜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이 저절 터득되는 듯해요.”

성공한 치과 의사에 인천광역시의회 제4대 시의원을 지냈고, 라이온스클럽 부총재로 각종 봉사활동과 기부생활을 하면서도 이규원 원장은 사회에 대한 관심의 촉수를 늘 드리운다. 그는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환경공학을 공부해 박사학위(Ph.D. Env. Eng)를 받고 대학교에 출강도 했다. 지역의 환경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삶이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면 기약할 수 없어요. 인간이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으면 오늘 떠오른 계획을 바로 실천하게 됩니다.”

이규원 원장은 자신은‘치과를 개업하면서 25년 째 웃고 다닌다. 행복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웃으면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말로 그의 일상 철학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한 사람의 바르고 열의 있는 삶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규원 원장을 통해서 확인한다.

정희 기자( miyego@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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