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 (주)보문 대표
음지에서 ‘인(仁)과 덕(德)’의 나눔을 펴다
부산지역 아동복지시설의 멘토…수십년 간 아낌없는 후원
‘어린이날’ 국민포장, 어린이·청소년의 밝은 미래 위해 헌신
부산아동복지후원회 결성, ‘체계적·조직적 민간 복지운동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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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인류 공존을 위한 고귀한 실천이다. 물질의 결핍을 영혼의 풍족함으로 치환하는 지혜이며, 인간 내면의 빛을 두루 공유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만약 한 사람의 반복되는 일상의 지표가 늘 나눔과 봉사를 향한다면? 그야말로 숙성된 인류애를 생활화한 모습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이상규 (주)보문 대표의 어제와 오늘이 그러했다. 그의 ‘나눔’은 조건반사적 측은지심의 울타리, 그 너머에 있다. 곧 서로 기대어 더불어 살아감을 상형(象形)한, ‘사람’ 인(人)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이를 내면화한 자기 고백이다. 그의 지난날 이력이 한낱 ‘선행’ 이상의 주목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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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주)보문은 그리 크지 않은 기업이다. 자동차 부품과 그 주변 제품을 도․소매하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 어떤 부호나 명망가보다 넓고 큰 나눔의 자락을 세상에 펼쳐 보였다.
그는 정작 자신의 ‘나눔’ 행적에 대한 공치사나 생색은 극도로 경계해왔다. 튀지 않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부축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보이지 않은 손을 내밀어 왔다. 그러나 그 선한 실천의 여운은 너무나 깊고 넓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따뜻하게 손을 잡았던 이웃들이, 이를 전해들은 지역사회와 지방정부, 그리고 국가가 앞다투어 이 대표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말마따나 “본의 아니게” 각종 포상도 받았다. 최근 수년 간 지역사회와 국가로부터 각종‘표창장과 사회공헌장’‘자랑스런 시민상’ 등을 받았다. 이번 ‘제93회 어린이날’에도 주변과 이웃들은 그를 ‘국민포장’ 대상자로 강력히 추천했다. 상이라기보단, 우리 사회와 나눔 공동체가 이 대표에게 주고 싶은 마음의 선물이라 해야 옳다.
각종 상과 표창장…“달갑지만은 않아”
하지만 이 대표는 이런 게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꼭 겸손해서만은 아니다. “세상과 더불어 살며, 세상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자신만의 신념이 오히려 세상의 곡해를 받을까 걱정해서다. 그 색깔 뚜렷한 진솔함을 행여 세인들이 못 미더워할까, 두렵기도 하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타인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가슴을 키워왔다.
“밥상 하나에도 많은 사람의 정성과 도움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해왔죠. 어릴 때부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신세를 갚으며 살아야겠다’고 맘먹었죠. 굳이 남을 돕는다? 뭐, 그런 거창한 생각에 앞서 당연히 세상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눔과 배려’는 그렇게 이 대표에게 가장 분명한 삶의 주제가 되었다. 학창 시절엔 주유소 야간경비 알바를 하면서 번 돈 1만원을 동사무소에 던져놓다시피 하고 빠져나오기도 했다. 30대에 대구서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시작했던 복지관 후원이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복지시설 어린이·청소년의 ‘후견인’ 역할
특히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아픔과 성장통에 주목했다. 그 중에서도 가족과 가정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지팡이가 되어주었다. 아동복지시설이 주로 그런 곳이었다.
2000년도부터 현재까지 16년간 그는 부산 지역 아동복지시설에 장학금을 희사하고,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유니세프, 노숙인쉼터, 국제장애인협회, 다문화가족지원 등 20여 단체에 매월 기부하고 있으며 복지시설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디딤씨앗통장도 만들어 후원하고, 갖가지 행사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렇게 후원한 금액만 20억을 훨씬 웃돈다.
그러나 도중엔 고민도 있었다. “개인이 무작위로 선행을 베푸는 방식, 그게 과연 언제까지나 가능할까?…” 그래서 뜻이 같은 지인들과 함께 지난 2009년 사단법인‘부산아동복지후원회’ 설립허가를 받아 단체를 출범시켰다. 그리곤 “아동복지시설 및 지역 사회 빈곤층과 결손 가정 아동복지 증진, 청소년 장학과 자립 지원과 사회봉사”를 기치로 내걸었다.
“개인보단, 집단의 의지를 모아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게 오래 간다고 봤죠.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하고….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했던 겁니다.”
설립 후 6년이 지난 지금 이 단체는 아동복지시설을 체계적·조직적으로 후원하는 광역의 자선단체로 자리잡았다. 나아가선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민간 차원의 사회복지운동의 모형으로 꼽히고 있다. 소외와 결핍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빛이며 소금이 되고 있다.
물론 이 대표는 그 단체를 앞장서 이끌어왔다. 이후 그에겐 늘 “지역의 숨은 공로자로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든 아동들의 복지와 삶의 향상을 위해 특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항상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인사”라는 헌사가 뒤따른다.
대학 진학 청소년들 등록금·용돈도 지원
특히 그는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아이들을 두고보지 못했다. “배고픔과, 돈 없어 배우지 못하는 설움, 그것만큼 뼈에 사무치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이 대표가 살아온 동시대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뼈저린 기억들이다. 그래서 서슴없이 사재를 털었다.
복지시설에서 자라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에겐 등록금이나 용돈을 마련해주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1년간 700명에게 약 3억5천만원, 학교 등 단체에 인재육성 장학금 1억3천만원 가깝게 후원했다. 연말이면 함께 식사도 하며 꿈과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 중엔 은공을 잊지 않고 길이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부산대학교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마산국악시향에 입사 한 학생은 아직도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다.
사회적·직업적 성취를 한 학생들도 많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김해시립예술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 모양은 현재 예술대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 양도 감사의 글을 통해 “저한테 이분(이 대표)의 도움이 없었으면 저 또한 미래가 없었을 것”임을 절절히 고백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 때마다 그 대견함에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그는 또 천성탓에 그 누구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못 넘긴다. 그를 아는 아동복지시설의 한 관계자는 “주위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생활비 지원은 물론, 자신의 지인들을 총동원해 취업도 알선해주곤 한다”고 들려줬다.
아동복지시설 각종 행사, 전폭 지원과 참여
지난 15년간 아동복지시설 체육대회 행사 진행비나 경품, 도시락, 각종 선물 등을 망라해 약 2억5천만원 가까운 후원이 이뤄졌다.
그는 행사때마다 기업체의 바쁜 CEO임을 잊곤 한다. 체육대회에 참가해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물질이 아닌, 가슴으로 만나는 멘토가 되기 위함이다.
또 전국의 아동복지시설 초․중등부를 대상으로 한 ‘보건복지부장관배 꿈나무 축구대회’,이 행사엔 부산시내 복지시설 어린이·청소년 30여명으로 구성된 부산연합팀의 유력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훈련을 위해 지금까지 14년간 간식과 비용, 그리고 참가 선수들의 용돈을 전달해왔다. 그 덕분인지 부산연합팀은 2012년부터 작년까지 내리 3년 연속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청소년 자립지원 교육사업도 그가 애정을 기울이는 대목이다. 보통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라 만 18세가 되면 그곳을 나가야 한다.
이 대표는 “그런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조기에 정착하고, 성공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면서 “원만한 직장생활과 올바른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8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교육, 자립준비캠프, 인성교육, 직업체험학습, 성교육, 해병대 캠프체험 등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때는 자립교육사업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대표는 뜻있는 지인들과 현장으로 달려가선 거액의 후원금을 희사했다. 그리곤 “청소년들이 보다 윤택한 생활과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자신의 사업장 일부, ‘노숙인 쉼터’로 활용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엔 노숙인들도 들어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사업장 2층과 3층을 노숙자쉼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을 위해 각종 생필품과 함께 후원금을 기탁하기도 했고, 부산노숙인지원센터(부산희망등대종합지원센터)에도 역시 7천만원이 넘는 돈을 기탁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동네에 그런 ‘혐오시설’은 안 된다”는, 이른바 ‘님비’(Not In My Yard)현상도 극복해야 했다. 노숙자 쉼터에 대한 주변 상가의 강력한 반발이 일자, 직접 발로 뛰며 이를 해결했다. 때론 빵이나 음료수를 갖고 이들을 일일이 찾아 양해와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리곤 “노숙자들이 자활 의지를 키워 하루 빨리 독립해 나가도록 하는게 상책”이라고 설득했다.
그 밖에도 그의 크고 작은,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눔’은 그 끝이 없을 지경이다. 그 어떤 상이나 표창으로도 그 공적을 발굴해내기 힘들 만큼 그의 이타적 행보는 공동체 구석구석을 누빈다. 부전여전(父傳女傳)이랄까.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한 장녀도 서울지역 아동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에 열심이었다. 아버지를 거울삼은 선행의 세습인 셈이다.
그러나 이 대표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분은 음지에서 오로지 ‘인(仁)과 덕(德)’을 실천해온 후원자”로 기억한다. 이 대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조용한 봉사도 중요하지만 적으나마 함께하는 진정한 나눔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단지 시설아동들이 잘 자라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큰 일꾼이 되어주길 간절히 빕니다. 그들의 성장 과정에선 비록 외롭고 불우했지만, 후일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게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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