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중소기업 품질경영대상
KTC금탑건설 이종범 대표
은행원에서 건설 현장으로 급전환, 부산 최대의 첨단공법 해체전문
건설회사로 우뚝
“전체를 보고 신중하게 계획 세워 끝까지 해봐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그 전 과정은 무의미해”
드라마틱(Dramatic)은 허구적 이야기인 드라마에만 있지 않다. 현실에서의 드라마가 실제로는 더 극적인 경우가 많다. 성공신화 역시 일부의 일반에게 알려진 인물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만이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도전과 희망의 본보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예고 없이 듣게 되는 한 인물의 드라마틱한 성공스토리는 오히려 뜻하지 않은 경이로움으로 인도하면서 우리의 생활의지를 북돋는다. 그들이 애초에 놓였던 나락과 그것을 박차고 반전적 성공을 이룬 이후의 삶의 간극이 멀고 깊을수록 그 감동은 배가된다. 2015 중소기업 품질경영대상을 수상한 (주)KTC금탑건설 이종범 대표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그의 삶에 드라마를 부여했다.
건설 토대를 만드는 발군의 해체전문 건설회사
문명은 이미 지구의 수많은 면적을 점유하며 인간을 위한 건물을 세워왔다. 빈터에 구조물을 세우는 건설은 그 형태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혹은 필요가 없어진 건물을 해체해야만 한다.
모든 산업 분야가 그렇듯 건설의 한 분야인 해체도 첨단 공법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선진기술, 첨단장비를 사용해 공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신속하고 정확한 고난도 해체공사다. (주)KTC금탑건설은 이러한 하이테크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건설기업이다. Diamond Wire Saw공법, 압쇄공법, Water Jet공법, 폭파공법 등이 구사하는 공법으로, 소음·진동·분진이 없는 신공법들이다. 공사 전 입체적인 환경분석을 통해 철거할 때 발생하는 건축 폐기물의 재활용율도 높이고 있다. 철거 부산물은 국가적 이익을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매립하지 않고 분리를 제대로 하면 환경훼손도 막을뿐더러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 및 재개발 구역 철거공사는 물론이고 석면해체와 제거공사에 능통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 롯데건설, 현대산업개발, 지에스건설, 대림산업 등 국내 상위 대기업 30여 개와 협력하고 있다. 부산 양정동 대원칸타빌 재건축철거, 부산 사직동 쌍용예가 재건축철거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한 경기도 성남 중동3구역 재개발 철거공사 ,대구노원지구 재개발 철거공사 ,삼성전자가 발주한 구미스마트시티 공장철거공사, 최근입주를 시작하는 부산광안동 쌍용예가 재개발철거공사를 성공리에 완공한바 있고,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인천검단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지장물 철거와 부산 해운대에 있는 군부대 53사단 병영을 해체 공사 중이다.
국내에 있는 해체전문건설회사 중 전국에는 열다섯 손가락 안에, 지방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KTC금탑건설은 지난 시절 온 나라를 고난에 빠뜨리고 수많은 회사가 도산했던 1998년에 세워져 벌써 설립한지 17년 성장을 거듭해 온 회사다. 아이러니다. 아이러니 속에 이종범 대표의 인생역정이 숨어있다.
IMF가 가져다 준 위기
IMF의 암운이 막 닥쳐오기 전, 이종범 대표는 당시 최고의 금융회사였던 국민은행 차장의 지위에 있었다. 경상남도 고성의 농촌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상고를 졸업하고 23년을 근무해 왔으니 일반이 생각하는 깔끔하고 정확한 화이트칼라의 전형적 이미지를 가진 40대 중반의 안정적인 사회인이었다. 더구나 그에겐 또 다른 기댈 곳이 있었다.
“제 아내가 당시 유치원경영을 했어요.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나갔지요. 그러니 저는 노후보장은 돼 있는 셈으로 은행을 퇴직하면 한가하게 유치원 마당이나 쓸고 있어야겠다, 하고 느긋하고 풍족한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IMF가 그 모든 꿈을 박살냈던 거지요.”
회사들이 도산하니 경제적 어려움이 생긴 사람들이 많아져서 덩달아 유치원 원아들이 술술 빠져나갔다. 이종범 대표의 아내가 유치원을 지을 때 부지나 건물 등에 투자를 많이 해서 금융권에 대출이 많았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꼬박 나가야 하니 시간이 흐르자 파산 지경에 직면했다. 세상도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당시 차장 연봉이 6천만 원이었는데 제가 1억을 받아도 빚이 해결이 안 될 판이었지요. 유치원이 경매에 안넘어 간다는 보장이 없었지요. 그렇게 되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요. 이것이냐 저것이냐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 왔어요. 죽기 살기로, 불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지요.”
14억을 투입한 유치원을 10억에 팔고 은행을 자의로 퇴직한 후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온실에서 근무하던 은행원의 무모한 모험이었다.
특별한 기술 없이 도전한 직업
해체산업에 뛰어든 것은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때까지 펜대만 만지고 있던 이종범 대표에게 가장 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져진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철거는 단순해서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장비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만들고 보니 부산에만 동종업이 50여 곳이 있더군요. 경영이론이나 토대없이 포크레인 기사만 보유하고 모두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고 있던 때였지요.”
어찌해서 처음으로 의뢰 받은 일이 한때는 은행지킴이가 국민은행 연산동지점을 이전하면서 금고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기구한 운명이랄까 은행에 근무했던 그로서는 감회가 깊은 첫 일이었다. 하지만 감회가 사라지기도 전, 그에게는 새로운 직업에의 적응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은행과 건설의 생존 환경이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은행에서는 1 더하기 1은 정확히 2였지만, 건설에서는 아니었다.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수주를 받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은행재직 시 많은 건설업체에 여신심사를 하고 대출을 해주었지만 정작 그들의 생리는 몰랐다.
사회 적응이 안 돼 부산의 유명한 금강 공원을 배회하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갔는데 요금이 얼마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그는 그동안 은행이라는 안전지대에 안주해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경쟁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수주를 주는 건설업체가 이른바 ‘갑’으로서 가격을 후려치는 전횡을 하는 것이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으로 기존의 업체들은 그렇게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불합리를 느낀 이종범 대표는 부산바닥에서는 사업을 해봐야 성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이미 성장한 기존의 회사들과 경쟁하는 것도 무리였다. 아예 전국적인 업체가 되지 않으면 전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진출해 닥치는 대로 1군 건설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비행기를 오가며 한 해체산업 공부
이종범 대표는 서울에 있는 1군 건설 회사에 일거리를 달라고 구걸 아닌 구걸을 하려 다녔다. 은행 재직 시에는 여신심사와 대출전담을 하는 “갑”입장이었지만 이젠 “을”의 신분으로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면담했으나 실무담당자들로부터 하나같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수였다. 흔히들 그들은 쉽게 던진 말 이지만 나의 자존심에 너무 큰 상처를 주던군요. 당신회사는 설립이 일천해서, 시공실적이 전무해서 지금은 안되니 실적을 쌓아 다음에 보자는 등 퇴짜를 맞고 서러움에 눈물도 많이 흘렸지요 .그러나 좋은 직장도 명예퇴직이 아니라 살기위해서 박차고 나온 자신을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나에게는 아내와 유치원 다니는 딸과 아들이 있었고, 장남으로서 어머님과 아직도 출가하지 않은 형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내가 무너지면 집안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용기를 내었습니다. 좋다! 다시 해보자! 당시 부산~서울간 비행기요금이 5만원 이었지요. 고속버스, 철도요금보다도 더 비쌌지만 한 시간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싼 요금을 낸 것을 만회하기 위해 한번 상경하면 보통2-3일 씩 서울에 머물며 끼니는 때로는 2천원 짜리 햄버거로, 잠은 서울역 근처 찜질방에서 해결해가며 업체를 방문하였지만은 동종사들이 많아서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저는 공학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도 없었고 건축에 대한 이해도 없었어요. 막상 기업을 찾아가긴 했는데 그쪽에서 철거방법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회사도 신설회사라 신용도도 없었지요.”
그때부터 이종범 대표는 비행기 안에서도 1군업체 실무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건축 관련 책을 펴놓고 예상 질문을 뽑아 열심히 답변할 공부를 해가며 롯데. 대우 등 온 천지를 빠짐없이 기업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절대로 당신들을 곤란하게 안할거라고 다짐하면서... 은행생활에서 다져진 신용과 40대의 젊은 패기가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설득하여 그렇게 바라던 롯데건설을 감격스럽게 1차 협력업체등록을 하게 되었지요
회사 내부에서도 이종범 대표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했다. 자신이 직접 해체현장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직원들과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했다. 철거를 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기본 정보들인 건물용도, 사용연한, 건축자재 등을 파악하는 법을 익혔다. 또 새벽 철거 현장에 기사들과 똑같이 나가서 일용근로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그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하면서, 현장의 모든 작업을 그들과함께하면서 버텼다.
“처음에 현장에 나가서 건축물이 해체하는 것을 지켜볼 때는 굉음과 파괴력 때문에 겁이 나더군요. 약간의 소음과 진동 때문에 주변 주민들로부터 집단 항의를 받기도 했지요.
그렇게 6개월을 동고동락 하다보니 제가 오래전부터 건설업계에 종사했던 것처럼 해체 현장에 대해 모두 파악하게 되더군요. 그러는 동안 시간을 내어 정신력을 재무장하기 위해 금정산을 일주일에 두세번씩 케이블카가 있는 정상까지 땀이 범벅이 된채로 뛰어 오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설립 10년 만에 금탑건설은 부산에서 해체부분 1위 업체로 부상했다. 그동안 같이 경쟁하던 많은 업체들이 부도로 없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재무회계에 밝고 철두철미하게 신용 지켜
은행과 건설은 천지간의 간격만큼 다른 직업군이었지만, 그래도 은행에서의 경력이 모두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종범 대표는 재무회계에 강한 이력을 살려 회사의 자금운용이나 조달에 밝았고 어떤 경우라도 신용을 지켰다. 은행 차장으로서 조직관리를 한 덕분에 회사 운영의 묘를 살리는데 장점으로 발휘됐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 해체작업에도 참여해 언론에 알려지며 회사도 대외적인 이미지도 상승이 되었다.
“삼성의 故 이병철 회장이 발주하고 현대의 故 정주영 회장이 일본에서 자재를 들여와 부산에 처음 설탕공장을 세운 제일제당공업(현재는 문현금융단지 맞은편에 있는 포스코더샾 자리) 건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경영자가 처음 세운 것을 내가 해체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지요. 당시 많은 매체에 보도돼 금탑건설도 같이 매스컴에 비춰졌어요.”
(주)KTC금탑건설은 이종범 대표가 회사를 설립할 당시 가졌던 포부, 금탑처럼 최고의 회사로 만들자는 그 뜻과 의지처럼 현재 업계에서 일군을 형성하는 회사로 지위를 굳혔다.
그동안 서로 신용을 지켜 준 거래업체들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협력하고 있지만, 한때 잘 나가던 회사들로 이른바‘갑’이었던 기업들이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금융출신이 없는 전문건설협회에서 10여 년 동안 운영위원등 임원도 했고 부산시로부터 우수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자랑스러운 건설인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제는 당당한 건설인이 되었다.
“그동안 금탑건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주위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사업을 하자는 유혹도 많았지만 회사설립 초기에는 부산송정해수욕장과 일광해수욕장의 등대설치공사 등 공정이 비교적 단순한 건축공사는 성공리에 완공하였지만, 기장 아시아드골프장 클럽하우스 신축공사를 하다가 중도에 타절 포기한 것이 내 인생의 최대 실수로 삼미건설의 박원양 회장님을 비롯한 주위의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점이 평생 빚으로 남아 있어요.” 그이후로는 어떤 경우도 경도되지 않고 오로지 해체부분만을 집중해 왔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한 길을 걸어가면서 개발하고 노력하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참 많습니다. 제가 지금 다시 40대만 됐어도 많은 것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편한 것만 하려하고 조금 힘들면 금방 포기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가는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젊은 때 살아온 시대보다는 분명히 힘든 세상은 맞아요, 글로벌시대고 저성장시대가 되고 보니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라 봅니다. 그렇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꾸준히 개척해 나가면 도달하는 곳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물은 100℃가 넘어야 끓는다
(주)KTC금탑건설 이종범 대표가 말하는 경구는 이것이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 중에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도 99도 까지만 하고 포기한다면 그동안의 과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물은 100℃가 돼야 끓습니다. 중간에 포기 안하는 집념이 필요해요.”
하지만 무조건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냉정한 자세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부언한다. 무작정 용기만 가지고 섣불리 무모하게 시작할 것이 아니라, 여러 면을 고찰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안목을 그는 비행기에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전체를 조망하는 큰 시야에 비유했다.
(주)KTC금탑건설의 매출액은 현재 100억이다. 해체전문회사가 이 정도의 매출이면 종합건설회사로서는 몇 백억의 매출과 맞먹는 성과다. 이종범 대표는 올해‘혁신과 내실 경영’을 목표로 잡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저에게 항상 가르치기를“ 어떤 일이든지 큰 욕심 내지말고 정도를 걸어야 하고, 또한 남에게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문득 생각나네요.
“회사가 안정감을 찾았으니 이제는 사업이익을 내는 것 외에 나누어가지는 가치를 실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어려울 때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베풀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직원들 중에서도 정말 내 회사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는 연말에 푸짐한 인센티브를 줄 생각입니다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산의 재개발. 재건축현장의 철거. 해체공사를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득이 될 수 있는지를 17년 동안 금탑건설이 축적해온 기술과 노하우를 지역사회에 봉사해 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부산에는 철거시 이주관리가 특별한 고도의 노하우를 요하는 용역이 아닌데도 이것을 명분삼아 무조건 서울의 3-4개 업체에 철거를 맡기므로 조합원들에게는 많은 손해를 입힌 사례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버지가 고생해서 이룬 부를 자식한테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은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있던 에피소드 하나가 현재 그가 사회복지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좁혀가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운영하는 원룸 건물의 세입자가 그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왔다. 일이 잘 안 풀려 살아갈 방도가 없으니 밀린 월세만 받고 원룸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자기가 새롭게 살아갈 방법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밑천이라는 말이었다.
일단 생각해 보겠노라고 하고 나이가 적지 않은 그 세입자의 처지를 여러모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밀려 있는 두달치 월세를 제하고 제기 할 때까지 월세를 안 받는다는 조건으로 보증금을 돌려 줬다.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격려와 함께.
17년이란 짧은 세월동안 생소한 사업에 뛰어들어 일정한 성취를 이룬 이종범 대표가 가장 고마워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다. 그동안 힘들때도 무척 많았을 텐데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려줬다. 유치원을 처분하고 퇴직금을 다 합쳐서 빚을 갚아도 5억의 빚이 아직 남아 있던 암담한 때도 아내는 동요하지 않고 1남1녀의 자녀를 잘 기르며 그를 지탱해 줬다고 한다.
(주)KTC금탑건설 이종범 대표가 벼랑 끝에서 도전한, 폭풍을 일으켰던 물은 이제 100℃의 끓는점을 넘어 그 온기를 주변에 전파하고 있다. 그의 성공 스토리가 좋은 롤 모델로 작용하면서 또 다른 물을 끓게 하는 열기로 작용하고 있다. ‘2015 중소기업 품질경영대상’이란 열기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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