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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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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이종표 대표 - 삼창그린테크

자체기술 개발한 농업용노즐 전문생산·유통으로 국내 최고 입지

이종표 대표 - 삼창그린테크

삼창그린테크 이종표 대표

상공의 날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수상

자체기술 개발한 농업용노즐 전문생산·유통으로 국내 최고 입지

특허만 70여개,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생존으로

중소기업의 힘 키워 나가

사람은 각자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기질은 개인의 활동과 인생에 여러 형태로 개입을 한다. 예로부터 의학이나 문학 분야에서 기질이나 성격을 분류해 특징을 열거해 놓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동류의 일을 하더라도 그것의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태도나 결과의 양상을 보여준다. 올해 상공의 날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한 삼창그린테크의 이종표 대표는 타고난 판단력과 결정을 추진하는 활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온 기업인이다. 말하자면 자주적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면, 그의 앞에 놓인 어떤 사업적 문제나 시련도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가 우리나라 농기계 생산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유다.

농업용 노즐에 관한한 최고 기술 보유

경남 김해시 상동면에 위치한 삼창그린테크는 농업용 기계의 노즐 전문생산업체다. 농업용 스프링클러와 노즐부분에서는 국내에서 이 기업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 아직 없다. 특히 상하이동식 방제기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기술의 제품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일반은 어느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을 가진 기업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농업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어느 대기업 못지않은 지명도와 신뢰를 쌓고 있다. 삼창그린테크의 이종표 대표가 직접 고안해 개발한 무인자동방제기 노즐은 세계에서 유일한 제품이다.

“농작물의 병충해를 막는 방제기는 그간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 뿌림이 고르게 분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노즐 막힘 현상이 많은 불편을 가져 왔지요. 방제 후에는 매번 막힌 노즐을 일일이 갈아 주어야 했습니다. 저희 회사가 생산하는 노즐은 많은 특허기술이 조합되어 있습니다.”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노즐과 비슷해 보이지만, 삼창그린테크만의 특허기술들로 구성된 노즐은 금형의 연구 개발 비용만 해도 10억 원 이상이 소요됐다. 중소기업에는 부담스러운 이런 투자비에 사내 직원들이 많은 우려를 표할 정도로 도전적인 일이었지만, 지금은 과수, 원예 등과 시설농업 분야에서 종사자들이 갖추는 필수 농자재로 여겨지고 있다.

삼창그린테크의 제품들에는 관련 특허만 70여 개가 등록돼 있다. 모두 이종표 대표의 추진력에 의해 개발된 것들로 자신의 모든 심혈과 투지를 쏟은 것이기 때문에 작은 나사 하나까지도 특허로 등록하고 있다. 특허가 많다보니 이종표 대표 자신의 기존 특허에 새로 신청한 특허가 제한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삼창그린테크의 노즐 제품들은 현재 전국 9곳에 대리점이 있고 일본, 미국, 호주 등지에도 수출하고 있다.

농업 관련 분야에서 종사한 지 25년이 돼가지만 이종표 대표의 처음은 전혀 의도치 않은 계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선박해운업에서 능력을 인정받다

이종표 대표의 사회생활은 선박회사에서 시작되었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 중 장남이었던 그는 당시 한국의 장남들이 감당해야 했던 대부분의 책임처럼 동생들을 위해 그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가 대학에 가면 밑에 동생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력을 숭배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대학은 안 나와도 그만이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그에게도 대학 진학은 필요하고도 유리한 일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기질은 자신이 가진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의 에피소드가 그를 대변한다.

“당시 시골에서는 상고를 많이 권유했습니다.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지요. 부모님도 제게 상고를 권유했는데 저는 늘 같은 책상에 앉아 일하는 상상만으로도 답답해지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즈음 신문에 전자계산기가 개발돼 상용화 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상고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 하면서 인문계를 고집했지요.”

남해제일고둥학교를 나온 그는 자신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많은 부분의 지식을 재학 당시에 배웠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는 안했지만, 시골고등학교 중에서는 일반 도시의 고등학교 수준과 같은 수업을 진행시켜 주었던 선생님들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동창들은 소위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제법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경남지사이었던 김두관 씨가 그의 1년 선배라고 한다.

여하튼 그는 이 자랑스러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박회사에 취직을 했다. 선박회사는 해외 업무가 많아 대학의 영문학과 출신들이 대부분 일을 하던 분야였다. 하지만 타고난 영리함이 있었던 이종표 대표는 난관없이 적응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선박 회사의 제의로 몇 번의 스카웃을 거쳐 서른 살에 한 국제운송회사의 부산사무소장을 맡을 정도로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문업체가 실패한 노즐 개발

그때까지 계속 자신이 계획한 일에서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이종표 대표는 새로운 야심을 가지고 ‘삼창무역’이라는 자신의 독립된 회사를 설립했다. 무역 분야에 일가견을 자신을했기때문에 원예·농자재를 이스라엘에서 수입해 전국 각지에 독점판매할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뜻밖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시작됐다.

“농자재 일로 제주도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농민들이 무인자동방제기의 노즐이 막혀 답답해하고 있는 겁니다. 농민들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노즐을 생산하는 8개 업체에 의뢰를 해 이 부분을 해결하려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왔어요. 그래서 제가 한번 개발해 보겠다고 했더니 무역을 하는 사람이 기계를 어떻게 다루느냐고 신통치 않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6개월 만에 그 부분을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해 준 겁니다. 기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제가 원리만을 이해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궁리를 통해 성공한 거지요.”

개발에 성공한 이종표 대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업의 새로운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농자재를 다루었으니 농기계를 더 나은 쪽으로 발전시키는 개발을 할 수 있겠다는 포부와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는 무역에서 공업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이후 농기계 뿐만 아니라 인삼포방제시스템 또한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해 냈고 에너지 효율이 30% 높아지는‘열매체를 이용한 전기보일러’도 개발했다. 그의 수많은 특허 기술의 시작이었다.

저는 항상 단순히 반복되는 일을 하면 바로 꾀를 부려서 간단히 해결하려고 궁리를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궁리만하면 바로 해결점이 나오는 선천적 영향이 많은것 같습니다.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것도 생각을 하면 해결점이 나오더군요. 사람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계속 보고 있으면 궁리가 생기고 언젠가 기회가 오게 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사이클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국가의 정책 부재로 부도

하지만 그 사이클에는 결코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으로 이끄는 궁지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실패나 좌절도 있게 마련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 외부 요인에 의해 억울한 실패일지라도, 인생의 교훈으로서 성공의 한 자양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신용불량자라는 나락으로 내몰았던 이종표 대표의 한 때의 좌절이 그렇다.

이종표 대표는 무역을 하면서 비철금속을 가공하여 일본으로 수출을 하고 있었다.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무역이란 국제 상황이 얽혀 있기 마련이어서 한 나라에서의 문제가 다른 지역으로 여파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당시 비철금속을 가공하여 수출을 하고 있었는데, 비철광산이 많은 칠fp에서 스트라이크를 하면 당장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비철 협정라인이 체결돼 있지 않아서 불안할 수밖에 없었지요. 수출 신용장이 요구 하는대로 선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의 기본적 부채 때문이지요.

그런데 원자재가격이 두 배 이상이 오른 겁니다.”

결국 일부는 선적을 못했고 회사는 비철파동이후 3개월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소요비용이 너무 많아 손해만 보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한창 열성으로 일한 나이인 서른여덟이었고 그로부터 3년 여 동안 방랑을 생활로 신용불량자로 몰리기도 하던 때였다. 하지만 타고난 의지와 개척 정신을 가지고 스스로를 제어하는 능력을 가졌던 이종표 대표는 자신의 좌절에 힘들어 했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산에 가서 분노의 고함을 지를지언정 술로 한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종표 대표는 몇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당시 비철금속 가격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 정부기관의 정책 때문에 그는 무역업을 성실하게 이행해 왔음에도 개인의 힘이 국제사회 경제흐름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정책이나 동향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업적 트라우마가 생기고, 동향을 살피며 필요한 것을 스스로 챙기는 개인의 판단을 더 중요시 여기게 된 것이다.

멈추지 않는 발명에의 골몰

이종표 대표는 요즘도 자신의 뇌리를 스쳐가는 기계 발명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나는 역시 기존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이다.

“하우스에서 농작물에 무인방제를 할때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분사해서 날려 보내는데, 물 입자가 너무 크다보니 휀을 이용해 물입자를 날리다보니 육안으로 물분무 형태가 잘 보이지 않고 살포시간이 3시간에서 6시간으로 너무 길어서 불편할뿐만 아니라 다음날 시설하우스내부가 농약가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 농민들이 일을 하면서 사실상 자신도 모르게 마시고 있는 실정입니다. 건강에 치명타를 입게 되지요. 이러한 방제기를 정부지원사업으로 채택하는 것은 농민으로 하여금 폐암으로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루빨리 이러한 농민의 건강을 해치는 지원사업은 없어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분자를 연기처름 날려서 눈으로 물 입자가 확인이 되는 노즐 형태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제시간도 5분으로 단축함으로 간단히 방제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도 아직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만들어 내지 않는 방법입니다.”

이 노즐은 다가오는 4월 말에 완제품이 나와 출시할 예정에 있다. 앞으로 유사한 제품이 나오기까지 5~6년 동안은 삼창그린테크를 부양해 줄 새로운 기술이다.

또 하나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아이디어다. 현재 회사와 공장 일부가 있는 지역의 지형이 산악지대라 겨울에 눈이 오면 주행이 어려워지는 형편에서 힌트를 얻었다. 겨울에 간편하게 장착할 수 있는 스노우체인(Snow chain)이다.

“겨울에 스노우체인은 필요하나 평소에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고 급하면 구매하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이것을 가벼운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들어 녹슬지 않고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자동차 다루는데 익숙지 않는 여성들도 쉽게 장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격도 약 2만 원대로 책정해 마트나 슈퍼에서도 살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일반인 외에도 영업 파트의 판촉용으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삼창그린테크가 업계에서 현재 점유하고 있는 위상과 이종표 대표의 끊임없는 발명에의 헌신으로 보아 이 회사의 규모를 무척이나 크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종표 대표의 가치관은 다르다.

“보통 회사를 설립하면 규모를 키우는데 치중합니다. 직원과 공장을 우선 늘리지요. 대기업하고 거래하는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대기업과 거래하면 그들의 요구에 맞춰야 합니다.

내가 만든 물건인데 왜 그들이 결정하는 가격을 받아들이고 심부름을 해야 합니까. 삼창그린테크는 대기업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만의 기술로 작아도 내실 있게 지속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기업을 운영해 저희만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대리점도 먹고 살고, 농민들도 이익이 생겨야지요. 저희 사업의 바탕은 공동체가 서로 잘살자는 것입니다.”

아들이 존경하는 아버지의 삶

쉼 없는 발명을 통해 삼창그린테크를 건실히 경영해 나가는 것 외에도 이종표 대표에게는 또 다른 할 일들이 많다. 그는 경남10개 군의 향우회가 연합한 재김해경남10개군향우연합회 회장을 4년간 연임하고 있다. 운영은 회비에 의해 이행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종표 대표의 개인 지원이 만만치 않다. 고향 공동체를 위해 쓰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소 자신이 버는 돈 중의 일부를 자신이 아닌 다른 형태의 좋은 의도로 사용하면 결과 역시 여러 형태의 선의로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종표 대표는 회사가 위치해 있는 장척 마을의 장점을 개발해 자신이 주도해서 마을을 힐링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도 현재 진행하고 있다. 마을 뒤편에는 편백나무 등 자연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각종체험학습과 휠링마을조성을 위해 농어촌공사에서 추진하는 마을선진화권역사업을 신청해 국비 55억 원을 지원받았고 이종표 대표도 투자를 했다. 그가 삶을 일구어가는 공동체 공간인 마을 발전 및 역량강화사업에 대한 관심과 열성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이종표 대표는 끊임없이 마을공동체가 같이 잘사는 삶을 구상한다. 그는 자신의 선친에게서 받은 삶의 태도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

“예전에 시골은 1년에 한 번씩 바꾸어줘야 하는 나무울타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 나뭇가지들이 떨어지면 꽤 좋은 땔감이 됩니다. 보통 지나가다 사람들은 그걸 주어다 자신의 집에 땔감으로 씁니다. 그런데 저희 선친께서는 꼭 그걸 주워서 그 집 마당 안으로 던져 넣으셨어요. 쪼가리 하나도 남의 것은 취하지 않는 일생을 사셨습니다.”

어느 날 현재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을 수학하고 있는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종표 대표에게 ‘아버지는 인생을 잘 사시는 것 같다. 많은 어른을 봤지만 아버지만큼 존경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생이 뭐하고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인생은 불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피우는 방식에 따라 활활 딸 수도 있고 연기만 내다가 사그라질 수도 있는 거지요. 인생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으니 언제든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만큼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이미 필요 없는 것이다.

이종표 대표는 하루에 옷을 세 번 갈아입을 때가 많다고 한다. 대표로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공동체의 미래를 가꾸는 사람으로, 또 각종 봉사단체 이끌어 가는 사람으로, 그는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그에 맞는 행동을 해나가는 또 기업을 경영하는 한 경영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이미 성공한 삶을, 아니 사람냄새 풍기는 여러 공동체의 성공한 리더임이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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