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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3: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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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인천지구 JC회장 역임한 기술인ㅣ현대자동차 만수동부점 김성기 대표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 372 현대자동차 만수동부점(대표 김성기(45))은 현대자동차가 판매한 차량의 A/S를 목적으로 세워진 업체이다. 대지 1백20평, 건평 67평(2층)에 직원은 모두 5명. 이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현대자동차 차량의 보증수리 및 일반 수리를 하는 것이다. 수리물량의 70%는 일반 수리이고 30%는 보증수리이다. 보증수리 차량은 현대자동차가 판매한 차량을 수리해주고 현대로부터 수리비를 받고, 그 외 일반 수리에 대해서 현대자동차 권장가격 범위 내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한달에 찾아오는 고객은 5백 명 선으로 만수주공아파트 주민들이나 주변의 직장인들이 주류이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자동차시장의 50% 마켓셰어를 쥐고 있기에 현대차 보증수리업체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갈 수 있다.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서비스마인드는 손님들이 웃으면서 나갈 수 있도록 고객만족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차를 고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의 마음을 고 치는 것이라고

인천지구 JC회장 역임한 기술인ㅣ현대자동차 만수동부점 김성기 대표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 372 현대자동차 만수동부점(대표 김성기(45))은 현대자동차가 판매한 차량의 A/S를 목적으로 세워진 업체이다. 대지 1백20평, 건평 67평(2층)에 직원은 모두 5명. 이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현대자동차 차량의 보증수리 및 일반 수리를 하는 것이다.

수리물량의 70%는 일반 수리이고 30%는 보증수리이다.

보증수리 차량은 현대자동차가 판매한 차량을 수리해주고 현대로부터 수리비를 받고, 그 외 일반 수리에 대해서 현대자동차 권장가격 범위 내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한달에 찾아오는 고객은 5백 명 선으로 만수주공아파트 주민들이나 주변의 직장인들이 주류이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자동차시장의 50% 마켓셰어를 쥐고 있기에 현대차 보증수리업체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갈 수 있다.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서비스마인드는 손님들이 웃으면서 나갈 수 있도록 고객만족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차를 고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의 마음을 고 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어 차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흡족하게 해준다는 자세로 일한다.

이 업체의 직원들은 모두 한국폴리텍2대학 인천캠퍼스를 수료했다. 직원 2명은 일하면서 전문대 2년 정규과정을 수료했고, 이미 전문대를 마치고 입사한 1명은 기능장반 1년 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니까 만수동부점에 들어와서 전문대과정을 수료한 사람도 있고 다른데서 전문대과정을 마치고 들어와 폴리텍대학에서 기능장코스를 밟은 직원도 있다. 김 대표도 지금 인천폴리텍2대학 정규과정 2학년에 다니고 있다. 김 대표에 의하면 폴리텍대학을 마치면 기술인으로서의 일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일과를 마치고 주 5일간 오후 6시 반∼10시 반까지 4시간 수업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없이는 견디기 힘든 어려운 과정이다. 그렇기에 이 업체는 전 직원이 전문대졸업자 이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애로점이라면 직원들이 보증수리 고객의 원하는 바를 최대한 맞추려고 하지만 그 요구가 상식선을 벗어난 것일 때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전문가 관점으로 봤을 때 충분한 서비스인데도 막연한 느낌상 수리가 미진하다며 어필해올 때 설득하는 게 힘들다.

더군다나 올해부터는 직원퇴직금을 100% 주도록 돼있는데 소상공업자에 대한 국가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소상공인 혼자 퇴직금 부담을 져야만 하는 것도 어렵다. 올해부터는 5인 미만 업체도 직원 퇴직금을 줘야하기에 점차 경영수지 맞추기가 힘들다고 한다.

김 대표는 1987년 한양공고 자동차과 졸업 후 1991년 군 제대와 동시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대방동 소재 남부서비스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보증수리반, 일반수리반으로 분리돼있었는데 김 사장은 일반수리반에서 근무했다.

그때 현대자동차 남부서비스로 파견 나온 보험회사 아가씨를 만나 연애하게 됐는데

그 사람이 1994년 결혼한 지금의 부인이다.

김 대표는 1999년 5월 현대자동차를 퇴사하고 현대자동차 A/S 지정점을 창업했다. IMF를 전후해 사내에서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살아지는 시기였다.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에 근무 중 노조활동을 하면서 노동자권익을 위한 회사와의 협상이 노조원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가 있었다.

조합원들의 마음은 황폐해지고 조합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많이 들어 더 이상 조합원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친한 친구와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회사에서도 A/S망 확충을 위해 직원들에게 보증수리 서비스점 창업신청을 받는다고 하기에 지원했던 것이다. 처음 친구와 자본금 7천4백만 원을 가지고 간석4거리 부지 1백84평을 임대해서 창업했다. 자본금은 둘이서 절반씩을 부담했다.

창업 시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대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차 수리하는 것은 고교 때부터 해온 것이라 자신 있었지만 대인, 대 관청 관계 업무는 해본 적이 없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동업하던 친구는 3년 만에 따로 별도로 점포를 차려 나갔다.

창업 2년 만에 수익구조는 안정화단계에 들어섰고, 4년만인 2003년에 현재의 만수동 공장부지를 구입해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만수동 공장으로 옮겼을 때 고객의 50%는 간석동4거리 점포시절의 단골이었고 그 후 신규고객을 많이 확보하다보니 이제는 전체 고객 중 20% 정도를 차지하는 정도이다. 만수동으로 이전하고는 전단지를 인근 아파트단지에 뿌리고 차에도 꼽는 식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가장위력 있는 홍보는 고객의 입소문을 통해 이웃에게 알려지는 것이었다. 고객들을 그런 식의 홍보전사(?)로 만들려면 역시 감동을 주는 최선의 서비스밖에 없었다. 기술력과 친절을 최강의 무기로 생각하며 서비스를 했기에 간석4거리 단골고객들이 이전 후에도 변함없이 만수동까지 찾아줬다.

김 대표는 2000년 4월 간석4거리 점포를 운영할 때 고객 추천으로 인천남동JC에 가입했다. 지역사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 수 있다고 JC간부였던 고객이 권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JC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지금껏 자신이 접해온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1년 반 정도는 사고의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야말로 서민계급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

들은 부유층계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진퇴를 망설였다. 그러한 가운데 기업경영 열심히 하면서 JC취지에 맞는 활동을 하는 괜찮은 사람들을 발견하고서 생각을 달리했다. 조직 내에서 괜찮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연히 같은 부류의 많은 사람들과 석이게 되면서 마음의 뿌리를 내렸다.

2004년에 남동JC 부회장을 하고 2005년에 수석 상임부회장(부회장 3명)을 거치면서 2006년도에 남동JC 회장에 올랐다. 김 사장이 회장 취임시 내 건 슬로건은“함께 하는 JC”로 3개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는 지역과 함께 하고,

회원들과, 가족들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지역과 함께“는 JC 이념대로 리더십개발과 부합하지만 결국은 봉사활동이라는데 귀착돼 있었다. 또, JC가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 여성이나 가족을 배려하는 모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김 대표는 평소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어떠한 것도 할 수 없고 사회적

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보았기에 가족위주 행사를 주최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회원들과 함께하자는 목표는 모든 회의나 모임의 출석률을 관심 있게 체크하여 최대한 높이는데 주력했다.

남동JC회장 재임 시 특이한 행사로 <장애인 세상 보여주기 운동>을 펼쳤다. 지체장애우, 정신장애우를 가진 가족들이 부모와 함께 여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부모 및 자녀가 함께 젖소목장에 가서 아이스크림-치즈 만들기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동암역에서 실직 노숙자가 많았을 때 매월 1회씩 무료

급식행사를 8개월간 실시했다.

노숙자 1백 명을 대상으로 예산1백만 원을 들여서 급식행사를 치를 수 있었는데 부인들의 협조도 적극적이었다. 무료급식 봉사는 <만월복지관>에서도 8년 정도 했다. 내용은 복지관에 있는 독거노인들 1백50명을 대상으로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남동JC에서는 만수1,3동 빌라 촌에 거주하는 경제형편 어려운 독거노인을 위한 도배장판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김 대표는 2007년 인천지구 JC부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던 중 2011년 인천지구 JC회장이 개인사정으로 사퇴하는 바람에 회장으로 추대됐다. 회장을 하려고 애쓴 것도 아닌데 우연한 조직상황이 김 대표로 하여금 회장을 맡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지구JC는 본래 구체적인 사업을 하지 않고 산하 7개 롬을 지원하고 협조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이다.

인천지구 JC회장 재임 시 추진했던 인천JC의 <어린이날 미아방지캠페인>, 부평JC의 <소년소년가장돕기 후원의 밤>, 동인천 JC의 <청소년 회의 진행 교실>, 인천 남동JC의 <어린이 지킴이 캠페인>, 송도JC의 <사회복지관 지원 사업>, 계양JC의 <지역독거노인 지원사업>, 서인천JC의 <내고장 역사기행 및 백일장>

등을 내용이 좋았던 사업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인천 JC의 <내고장 역사기행 및 백일장>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해왔는데 서구지역 공단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대상을 다문화가정으로 바꾸어 행사를 추진했다.

김 대표의 자녀는 아들 둘로 고3, 중3이다. 생활신조는 11사단에서 근무할 때 몸에 익힌“할 수 없기에 포기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기에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단훈을 신조로 여기며 자식들에게도 강조한다. 성당은 자주 안 나가지만 언젠가는 가톨

릭에 귀의하길 원하는 현재 잠재적 천주교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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