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매립제 제조의 선두주자로 우뚝선 네비원
자동차는 실용적이다. 실용적이란 말은 이동수단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한 말일 터이지만, 요즈음에는 본연의 기능인 이동수단일 뿐만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생활공간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자동차는 그에 걸맞게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내비게이션 매립을 개발하고, 생산하여 사업화에 성공한 “뉴네비원”의 강은아 대표이다. 그녀는 내비게이션 매립의 개발과 사업화를 통하여, 자동차 인테리어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였고, 자동차 매립마감재 등 자동차용품 분야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4차 산업시대를 이끌어갈 강단과 리더십을 갖춘 강은아 대표를 만나보았다.
국내 최초로 매립형 내비게이션 개발
그녀는 어찌보면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젊은 20대에는 패션 디자이너로 잠깐 일한적이 있지만, 결혼 후에는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내재된 창의력과 도전정신은 평범한 주부로 머물게 하지 아니하였고, 결국에는 한 기업의 CEO가 되었다. 그 계기는 그녀가 30대 중반이던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동차 용품업계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GPS 기반의 차량용 내비게이션의 출현이었다. 지금은 에어컨과 더불어 자동차의 필수용품이었지만, 내비게이션은 당시만 하더라도 운전자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용품이었다. 사용시 자동차의 앞 유리창에 부착하여야 하고, 운전대 주변에 있는 시거잭에 케이블선을 연결하여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편리성과 불편성이 공존하는 기기에 불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것은 여름에 앞유리에 부착하면 높은 열기 때문에,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탈착되는 현상이 개선되지 않았다. 강대표는 여기에서 사업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운전자의 편의성을 토대로 개발된 내비게이션을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개선할 방법을 없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그 노력은 케이블선을 감출수도 있고, 탈착을 예방할 수 있는 매립형 내비게이션의 개발로 이어졌다. 어찌보면 콜롬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기가 막힌 발상이그 녀를 사업가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강대표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세상을 얻는 듯한 기분을 가져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한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비게이션을 토대로 사업의 영감을 얻어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생각만 해서는 아무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끝에 우선 소유하고 있던 승용차(S사 제품)에 레진(성형이 자유로운 재질)을 이용하여 내비게이션 매립을 시도하였지만, 만만치 않은 시도였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한 끝에 모형을 만들고, 매립에 성공하였다. 일단 매립의 성공은 사업의 가능성 만을 확인하였던 것이지, 사업의 성공이 아니었기에 하나하나 사업을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우선 자본금의 부족이었다.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는 있었지만, 큰 돈을 모아둔 생태도 아니었고, 있었다 한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업을 그것도 여자가 시작한다고 하니 냉소적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템은 훌륭한데, 그것을 사업화 시키려다보니 처음 단계부터 장애에 부딪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좌절할 그녀가 아니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찾아다니며 간절히 설득을 하면서 친언니에게 1억2천만원을 빌릴 수 있었다. “당시에 사업이라는 것을 전혀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빌리려 하니, 다들 미쳤다고 해요. 남편과 가족들 모두한테서 외면받았어요. 더군다나 지금도 큰 돈이지만, 당시에 1억이 넘는 돈은 굉장히 큰 돈이었거든요.” 라며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실의에 빠졌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와 형부를 겨우 설득시켜 간신히 1억2천만원을 빌릴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많은 자금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었기에 우선 몇몇 차량을 대상으로 금형을 파서 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판매가 문제로 다가왔다. “세상은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등산을 하다 보면 한 봉우리를 오르면 다음 봉우리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고심 끝에 선택한 것은 또다시 방법을 찾는 수 밖에 없었다. “힘들게 제품을 생산해 놓았지만, 오를 봉우리가 또 있더라구요.” 그 봉우리란 판매를 말하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자동차 전문 잡지에 나와있던 전국의 유통업체와 대리점 등의 명단을 모두 확보 하였다. 명단을 확보한 후에는 제품의 전단지와 그 사연을 모두 자필로 작성하여 보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실현해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자필로 직접 구구절절 사연을 정성들여 보냈습니다.”그러자 유통업체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금문제는 선주문으로 계약금을 선입금하는 조건으로 해결이 가능하였다. “이렇게 선입금 받아 물건을 공급한 덕분에 시작 2개월만에 언니한테 빌린 돈을 이자까지 쳐서 다 갚고도 남았다.”라며 당시를 회상하였다.
이렇게 사업을 시작한 강대표는 그 후로 차량 후방카메라와 발가락 교정기 및 바스탑스(여성용 가슴 미용 패치) 등을 선보이며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사업을 시작한지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에 여자의 몸으로 남성들도 힘들다는 자동차 업계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계기에 대한 대답은 단호했다. “크리스찬으로서의 믿음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라면서 첫 번째로 종교의 힘을 들었다. 사실 그녀는 “그 동안 부침도 많아 가까운 지인에게 조차도 돈을 떼이는 등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세월을 보내기도 했었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절실히 기도를 했습니다. 상대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었지만, 하나님한테서는 용서를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어려서는 철학자가 되는게 꿈이었을 정도로 좀 엉뚱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는 강대표는 “회사라는 것은 아름다운 밀물과 썰물”이라는 화두 아닌 화두를 던지며 인터뷰를 마쳤다. 성공과 좌절을 모두 맛 본 그녀였기에 오늘날 남부럽지 않은 회사의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그녀가 대한민국, 아니 세계를 주름잡을 기업가로서 날개를 활짝 펼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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