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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정건영, 예술은 관계다

예술로 포용의 길을 여는 선구자… 포용을 현실로 만드는 현장형 리더

예술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정건영(丁健榮)이 던진 이 한 문장이 협회의 방향을 설명한다. 1963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이어진 한·오스트리아 문화 교류 속에서 ()케이공감아트교류협회가 전면에 섰다. 현장으로 들어간 음악, 포용을 기준으로 삼는 교육, 지역과 세계를 잇는 연결이 동력이다.

페스타가 만든 새로운 질서

‘2024 ·오공감예술페스타가 관람의 경험을 넘어 참여의 질서를 세웠다. 오스트리아 바덴시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힘을 보탰고, 발달장애인 작가가 동등한 예술가로 서는 장면이 연출됐다. 전시는 다양한 표현과 협업을 한 무대에 올렸고, 관객은 문화의 융합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협회는 바덴시와 MOU를 맺어 교류의 통로를 넓혔다. 축사에 나선 볼프강 J. 반디온 문화대사와 볼프강 앙거홀처 대사는 교류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상징과 실무가 맞물린 셈이다.

예술이 빚은 서사, 관계가 확장한 무대

정건영의 이력은 악보 밖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시절 타악기에 눈을 떴고, 생계를 위해 공장 노동을 거쳤다. 스물일곱에 오스트리아 린츠로 유학을 떠났으나 사기를 당했고, 설거지로 하루를 버티는 시간도 있었다. 귀국길마저 막히며 불법 체류 상태에 놓였지만 한인교회의 도움으로 빈국립음대 시험대에 섰다. 경쟁률 18:1 벽을 넘어 합격했고, 10년에 걸쳐 학사·석사와 타악기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로 마무리했다.

2004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 1위가 분기점이 됐다. 11,142타 기록은 집중과 반복의 미학을 증명했다. 2010년 빈국립음대 초청교수로 임명됐고, 오스트리아 프라이너예술대학교 정교수로 강단에 섰다. 일본의 앤드비전(ANDVISION)’ 네트워킹에서 유일한 한국인 타악기 수석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베를린 필 라이너 제거스와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루딕무써 팀파니 아티스트 활동과 링고 스타와의 협업까지 무대 밖 인연이 무대를 확장했다. 화려함보다 꾸준함이 중심에 자리한다.

지역에서 시작하는 포용, 교육으로 완성되는 변화

그의 사명은 분명하다. 사회적 포용성과 다양성이다. 음악을 열린 공간으로 규정하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도록 설계한다. 충남교육청 홍보대사로서 당진꿈나래학교 해늘 타악기 합주단’, 보령 정심학교 초아 타악기 앙상블을 창단해 지도했다.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활동도 이어갔다.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과 소외계층, 발달장애인 예술가가 주체로 서는 장면이 쌓일수록 예술은 특정 계층의 사치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힘을 얻는다.

협회가 그리는 다음 장, 오케스트라로 여는 생태계

협회는 케이공감아트 오케스트라창단을 예고했다. 장르의 경계를 낮추고, 세계적 연주자와 협연 기회를 마련하는 구상이다. 신진 음악가는 국제 무대에서 경험을 쌓는다. 정기 프로그램과 국제 행사로 접점을 넓히면 지역의 재능이 곧바로 세계와 만난다. 교육과 공연이 따로 걷지 않도록 구조를 짠 시도다. 목표는 명확하다. 한국 음악의 위상 제고, 교류의 일상화, 인재 양성의 선순환이다.

철학이 디딤돌이 되는 순간

정건영은 예술가를 사상가로 본다. “의식이 없는 예술가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 문장을 신념으로 삼고 서양과 동양의 사유를 함께 탐독했다. 작품의 시대, 작곡가의 삶, 사회의 결을 읽는 공부가 연주의 깊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음악을 메시지로 삼아 사회 변화를 겨냥하는 태도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희망과 영감을 건네는 음악을 지향한다. 연결과 공감이 목표라면 철학은 방법이 된다.

현장에서 증명할 문장

협회는 대형 구호보다 체감 가능한 장면을 만들었다. ‘찾아가는 음악회처럼 학교 안으로 들어간 공연은 감수성과 리더십을 키우는 학습이 된다. 청소년은 악기 체험과 전문가와의 소통으로 적성과 흥미를 찾고, 진로의 방향을 그린다. 지역은 문화 접근성의 벽을 낮춘다. 세계와 지역이 하나의 악단처럼 움직일 때 문화는 생활이 된다.

결국 칼럼의 첫 문장으로 돌아간다. 예술은 관계다. 관계를 세우는 일은 기술보다 어려우나, 일단 세워지면 기술은 따라온다. 정건영의 행보가 증거다. 그는 무대를 넓히기보다 경계를 낮추는 일을 택했다. 그 선택이 더 많은 사람을 무대에 올린다. 다음 박자는 이미 시작됐다.

데일리뉴스-지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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