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우리 사회에서는 ‘복지’라는 화두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여야의 유력한 두 후보가 동일하게 내세웠던 공약 가운데 ‘복지’는 늘 전면에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복지’는 실현되지 못할뿐더러 장기적인 불황과 경기침체로 인해 오히려 퇴보돼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전 생을 바쳐 참 복지를 꿈꾸며 ‘이타의 삶’을 살아온 스승이 있다.
“복지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원성춘 참사랑복지재단 이사장은 무려 반백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장애인과 노인, 아동복지를 위해 헌신해 온 우리시대의 참 봉사자였다.
‘사랑’으로 다져진 51년간 봉사의 삶
지난 9월 6일,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는 제14회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기념식이 열렸다. 이 기념식에서 원성춘 참사랑복지재단 이사장은 그간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사회복지법인인 참사랑복지재단은 충남 당진에 위치한 복지시설로 ‘자녀 된 마음’으로 노인성 질환에 고통 받는 노인들을 보살피며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노인 전문요양원으로 주위에 좋은 평판이 자자하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가진 우리나라는 급속한 노령 인구의 증가로 인해 노인문제에 대한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1960~70년대 경제 발전기에 온 몸을 바쳐 일하고 또 자식들 뒷바라지에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이 시대의 많은 노인들이 치매, 중풍 같은 노년기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 하지만 ‘10년 부모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옛 속담도 있듯 핵가족화의 가속화와 더불어 병중의 부모를 모시기 힘든 가정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현대사회로 올수록 물질적 풍요는 커져가는 데 반해 효에 대한 가치관은 점차 퇴색돼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이 크게 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원 이사장은 반평생을 아동, 노인, 장애우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살아왔다. 지난 2005년 참사랑복지재단의 대표로 취임하며 복지재단 운영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룬 원 이사장은 참사랑복지재단 역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 참사랑복지재단에서 운영 중인 시설은 ‘참사랑소망의집’과 ‘참사랑천사의집’, ‘참사랑재가요영센터’로 지난 2011년 연면적 530평 규모다. “각박한 시대에 효친사상을 회복해 어르신들을 공경하며 그 어르신들이 편안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내 일”이라고 말하는 원 이사장에게, 재단은 그의 인생을 집약시켜 놓은 핵심 정수기도 하다.
원 대표가 이렇듯 타인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각별하다. 본래 이북의 개성 출신인 그는 6.25전쟁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당시 10대 초반의 소년이었던 원 대표는 유랑걸식하는 신세였는데 다행히도 당시 아동시설이었던 ‘성광보육원’이 그를 받아 줘 그 곳에서 자랄 수 있었다.
“죽는 날까지 ‘봉사’의 자리에 있겠다”
원 대표는 군 제대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어렸을 적 은혜를 입었던 보육원을 찾아 생활지도사로 봉사하며 타인에 대한 봉사의 삶을 계획했다. 삶의 이정표가 세워지자 그 실행은 빨라졌다. 곧 강남대학교의 전신인 중앙신학교 사회사업학과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한국사회사업시설연합회 인천시지회 사무장과 해성보육원 총무, 사단법인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총무부장을 거쳐 사회복지법인 부산애광노인요양원장, 서울시립노인남부 및 북부복지관 사무국장과 관장 등을 지내며 사회복지사의 길을 걸어왔다.
1968년부터 8년 간 총무로 근무했던 영아시설 해성보육원에서의 일화는 원 대표의 박애정신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는 우리 사회가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기였지만 아직도 절대빈곤의 사회였다. 그러다보니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다. 해성보육원에 있던 아이들도 역시 대부분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원 대표는 이 아이들이 안쓰러워 가톨릭구제회와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를 돌며 보다 안정되고 좋은 여건 속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입양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결과 8년 동안 약 1,500여 명의 아이들이 국내외 가정에 입양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원 대표의 봉사의 삶은 치열했다.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근무 시절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무보수로 일한 적도 있으며 다각도의 수익사업을 기획하고 전개해 협회가 재정적으로 건전 성장하고 발전해 현재의 한국노인복지중앙회로 확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자식들에게는 돈이나 재력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과 철학’을 물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는 원 이사장. 진짜 행복은 ‘봉사하는 삶’ 속에 있으며 봉사를 통해 펄펄 뛰는 삶의 맥박을 느낀다는 그의 삶을 통해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큼 가치 있고 멋있는 삶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참사랑복지재단과 이를 진두지휘하는 원성춘 이사장, 그리고 재단의 모든 임직원들의 미래가 더 밝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