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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4:3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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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천부적 조직 감각으로 인천 배드민턴 협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다

인천광역시배드민턴연합회 조광휘 회장

천부적 조직 감각으로 인천 배드민턴 협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다

세상에는 같은 사안을 가지고도 남들과 비교해 유난히 쉽고 경쾌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운스럽게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활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부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좀 살아본 사람은 알게 될 일. 타인의 눈에 쉬이 보이더라도 그들 자신은 섬세한 계획과 조용한 정열로 일을 구상하느라 내면에서 무척 분주할 것이다.

인천배드민턴협회 조광휘 회장은 그런 인상을 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마치 조약돌 하나가 만들어낸 동심원의 끝없는 확대처럼, 그가 지난 일 년 간 일궈놓은 여러 성과물들이 차례로 하나씩 퍼져나가 거대한 하나의 영역을 이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생활체육의 시대가 도래했다

작년부터 일 년 여 동안 생활체육조직인 인천배드민턴연합회 회장으로 끊임없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김광휘 회장의 말투는, 그가 이룬 성과들이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과는 대조적이었다. 흔히 추진력 좋은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을 법한 대담한 활달성이나 외양적 무게감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고 치밀한 학습형 리더 같다는 같은 인상을 받았다.

김광휘 회장에 따른면 인천시에 등록된 배드민턴 인구는 약 1만여 명. 생활체육단체에 등록하지 않고 야외에서 개별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2만 5천여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약 300만 명 정도를 추산하는데 배드민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작년 회장 경선에 나선 김광휘 회장이 내건 슬로건은 ‘영 점프’. 그 자신 최연소 경선자이기도 했거니와 진취적 기운으로 일해보자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생활체육단체에서는 원대한 포부라고 할 수 있는 전국대회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항상 장소문제 때문에 생기는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배드민턴 전용구장 건립도 제안했다. ‘이루어지면 좋은 일’이지만 ‘상황 상 어려운 일’ 로 치부해 오던 것을 과감히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약은 혈기 방장한 무모함이 아니었다. 1 년여가 지난 지금 그의 공약은 이루어졌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맞물려 바야흐로 배드민턴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책임감과 추진력이 빚어낸 시너지

그는 짧은 시간에 획기적인 발상으로 역대 협회 추진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가 회장 취임 후에 주력한 것은 협회 운영시스템의 변화였다. 먼저 대회 의전을 간소화했다. 어느 대소 모임을 막론하고 내외빈들을 배려하는 의전행사가 참여자들의 하품을 자아내는 일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 동호회 선수들이 자리에 앉아 있고 내빈들이 입장하는 방식의 역발상으로 비효율성을 제거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경기 도중 출전 선수들을 마이크로 호명하면서 관전자들의 청각을 어지럽게 했던 전통(?)을 탈피해, 코트 지정제를 도입하고 선수 각자가 자신들의 경기 시간대와 장소를 사전 숙지해서 스스로 찾아가는 방법을 도입하니 더욱 경기 몰입도가 좋아졌다. 수기로 작성하던 대진표를 전산화해 후속 경기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경기운영 능력을 향상시킨 것도 그의 추진에서 비롯됐다. 상품으로는 생활이 좋아진 사람들에게는 시큰둥한 저가 상품대신 브랜드를 채택해 출전 의욕도 상승시켰다.

누구나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 대처로 나가 웅지를 펴고 싶은 법. 동호인들도 마찬가지로 학교 체육관에서 벗어나 대형 경기장에서 더 많은 경쟁자들과 배드민턴채를 휘두르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한다. 2014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마련되는 전용구장은 건립은 그래서 의미가 더욱 깊다. 자신 앞에 놓인 일은 마다않고 처리하는 책임감으로 뭉친 김광휘 회장이 이룬 쾌거의 또 하는 전국배드민턴대회를 기획하고 시 예산까지 확보한 일이다. “기획서를 직접 작성하고 관계부서도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인천배드민턴협회 역사가 31년인데 전국 대회는 처음이죠. 2014년 아시안게임 성공을 기원하는 대형 경기장 오픈 기념으로 ‘미추홀 전국 오픈 배드민턴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고 이것을 인천을 알릴 수 있는 고유 대회로 정례화 할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중국 광저우와 교류전도 가졌고, 일본과도 교류하고 있다. 차후, 한․중․일을 묶어서 국제대회로 격상시키고 싶은 의욕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그룹이든 수장의 자리에서 이룰 수 있는 마지막 큰일을 해낸 자의 자부심이 김 광휘 회장의 얼굴에서 조용한 자부심과 생기로 빛났다.

단지 개별 동호회가 아닌, 화합과 소통의 조직으로

김광휘 회장의 배드민턴 입문은 한국공항공사에 재직하던 2000년도 우연히 이루어졌다. 그후 행보는 가히 저돌적이랄 수 있다. “영종도 공항 신도시로 이사를 했는데 아무런 문화적 인프라가 없었죠. 우연히 초등학교에서 여성 학부모들이 친목 경기 하는 것을 보고 유일한 남자로 끼어들었죠. 그런데 학교에서 장소제공을 거절하는 겁니다. 장소도 없이 클럽을 결성하고 제 승용차를 승합차로 바꾸고 비싼 톨게이트 비용을 지불하며 이리저리 구걸(?)운동을 하러 다녔죠.”책임감과 운동 욕구가 맹렬한 추동력이었다.

이 클럽은 지금도 영종도의 유일 클럽으로 150여명의 골수회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심 없는 묵묵한 배드민턴에의 봉사는 차즘 그를 인천배드민턴 계에서 주목받게 되었고, 더 많은 책임들을 부여받고 이룩해내면서 오늘의 정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연합회 운영에서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클럽들 간의 화합이다. 구성원들이 늘어나고 조직이 커지다 보니 분과도 많이 생기고 의견도 다양해지기 마련. 스포츠에는 개입되지 말아야 할 노선의 양분도 있었고, 지도자(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마치 다른 진영처럼 나눠져 있는 등의 갈등의 소지들이 있어왔다고 한다.

이들을 협회 산하에서 한 조직으로 묶고, 전국대회 유치를 위한 특별사업추진위를 발족해 모두를 아우르는 운동회를 여는 등의 소통 창구를 마련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다보니 이들 간에 둘러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라졌다. 항상 그가 있는 곳에서 개선이 이루어지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난 10년간 배드민턴 봉사를 하면서 축적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어떤 점들을 개선해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들이 있었죠. 그것들을 실천에 옮긴 겁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은 다르지 않다

김광휘 회장은 작년 3월에 순전히 자비를 들여 인터넷에 생활체육 채널을 만들었다. “인력, 장비, 자금 등 모든 면에서 힘들었지만 김포대 영상매체학과와는 산학협력을 맺었고, 네이버 와 다음과는 곤텐츠 제휴 협약을 맺었습니다. 4개월 만에 36만 명이 클릭하더군요.” 그가 회장을 맡으면서 집행부의 봉사활동가들이 배가 늘어 7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기꺼이 혼신을 다하는 사람에게 사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선진국은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분리돼 있지 않습니다. 체육이 생활화되어 있어 프로 선수도 생활 체육인 중에서 나옵니다. 의사, 선생 등의 직업을 가지면서도 스포츠 선수로 활약합니다.” 생활체육진흥법 입법화 돼서 체육 환경 좋아지면 우리나라도 그처럼 전문직업과 스포츠 활동을 겸비하는 안정적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 “생활 체육이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활성화 되면 주민들 건강이 좋아지고 국가의 보험료 덜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의 낙천적 의지를 듣고 있자니 금방 그런 환경이 다가올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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