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자주 비유적 표현에 동원된다. 세상에서의 쓸모를 권면하는 ‘소금같은 사람’이나 그 귀함을 은근하게 표현한 ‘평안감사보다 소금’ 등은 위상이 사뭇 긍정적이다. 하지만 현대의 소금은 인간 몸을 병들게 하는 나쁜 근원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럼 소금을 먹지 않을 것인가. 그 절대 필요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못한다.
결국 방법은 소금을 현명하게 선택해 섭취하는 것이다. 소금을 단지 ‘짠’맛을 내는 양념 정도로만 생각하는 당신이 있다면 그 무지를 부끄러워하고, 한여름 뜨거운 태양아래서 모든 불순함을 표백하고 눈꽃처럼 순수하게 피어나 쌓이는 영백염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기다림의 결정체 소금처럼 40년 외곬의 집념
어느 작가는 염전을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바다에 모든 생산의 바탕을 내 맡긴 채 광활하고 아득하다’면서 ‘염부들은 기다림의 바닥을 훑어서 시간의 앙금을 거둔다‘고 응시했다. 영광군에 있는 칠산 앞바다의 짠물이 법성포와 함평만을 지나 두우갯벌이 포용한 미네랄과 섞이며 조석으로 70 리 이상을 넘나들어 당도하는 곳은 영광군 염산면의 영백염전이다.
이 짠물은 20여일 이상 저수지, 증발지를 거쳐 마침내 결정지에 도착하고, 정수리를 따갑게 내리쬐는 폭양(曝陽)아래서 하얀 소금 꽃으로 개화한다. 자연과 시간이 여기까지의 주역이다. 누구든 10년 이상 무엇인가에 몰두하면 왠만한 내공이 쌓인다. 하물며 40년이랴. 염백 염전(주)의 김 영관 회장이 바닷가에 둑을 막아 약 20만평(약 615,385㎡) 규모의 갯벌염전을 시작한 것은 1973년이다. 일제 때 천일염전이 주로 북쪽에 마련된 탓으로 남한에는 소금부족이 생기고 정부는 대대적으로 염전을 증설한다. 하지만 한때 부흥했던 천일염전은 90년대 초 값싼 수입산 소금의 유입으로 경쟁력을 잃게 되고, 정부는 다시 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김 회장은 운영곤란 때문에 아주 잠깐 외부 임차를 준적은 있었지만 애증이 묻어 있는 염전을 져버릴 수 없었다. 확연히 사양(斜陽)에 들어선 천일염전 사업의 전망부재를 확인하고 사업자 대부분이 염전을 팔던 시절에 그는 외로이 버티었다. 그리고 7년 전 새로운 사업적 혜안과 갯벌 천일염의 미래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당시로선 무모한 설비투자에 과감히 나섰다. 미친 노인네라는 뒷말을 듣기도 했다. 염전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여 사업전략을 다시 쓴다면 오히려 수익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관 회장은 ‘해보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 스스로 말하는 천일염 생산을 고집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일염에 대한 그의 신념과 애정은 ‘시간’을 견디고 난 후 굵고 짠 향기를 배태한 절정의 알갱이처럼 가시적인 보답의 결실을 맺었다. 2011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실시한 제1회 대한민국 염전콘테스트에서 친환경 대상을 받음과 동시에 김 영관 회장 자신은 천일염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그해 11월 11일 염산업 발전공로가 인정되어 대통령표창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조명 받는 유력한 사업가보다는 ‘그냥 소금쟁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새로운 생산방식, 친환경 천일염
바다를 끼고 영백 염전과 마주한, 소금의 주생산지로 알려진 신안군의 여러 염전을 제치고 영백염전이 친환경 대상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안전한 환경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낸 김회장의 안목이 실천적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5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서 영백염전에 친환경 시설을 전면 도입한다. 사실 예전의 염전은 낙조를 받는 저녁 한때의 풍경이 시인의 서정을 자아낼 수는 있을지언정, 실상은 남루했다. 염판은 화학공장에서 생산한 장판이었고, 염판을 구획한 둑은 부직포로 에워쌌다. 소금물 창고인 해주지붕은 슬레이트였고, 결정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는 풍상에 닳아 검게 상한 송판으로 둘러졌다.
김회장의 과감한 투자는 염전에 청결과 위생관념을 도입했다. 도자기 염판을 깔았고, 염판둑은 두껍고 질 좋은 송판으로 마감했다. 해주지붕은 채광 성능이 좋고 견고한 폴리카보네이트 자재를 썼고, 접합 부분은 녹슬지 않게 스테인레스를 채용했다. 염수로에는 이물질이 동반유입을 막기 위한 거름망도 설치했다. 염전자체를 모범되게 만들어 놓으면, 소비자들이 실제를 확인하고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때마침 그동안 광물로 분류되어 일반식품 사용에 제한적이던 천일염이 비로소 2008년에 식품으로 인정되면서 위생과 안전성이 중요해진 시기와 맞물렸다.
이렇게 생산된 소금은 연도별, 계절별로 구분해 저장해 숙성시켰다가 가공공장에서 11단계의 공정을 거치면서 자연 불순물이 제거되고 두우갯벌의 풍부한 미네랄을 15%나 함유한 영백염전의 ‘오가닉 갯벌소금’으로 탄생된다. 물론 엄격한 국제HACCP(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에 따른다. 여기서 일반이 오해하기 쉬운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흔히 ‘가공과정’이라 하면 바닷물을 인공적으로 화학 분해해 얻어낸 정제염(기계염)을 연상하기 쉬운데, 천일염에서의 ‘가공’은 바닷물이 해수로를 거쳐 결정지까지 유입되는 동안 자연 현상에 의해 유입될 수 있는 각종 부유물과 유철, 이물, 사분 등의 불순물을 제거해 깨끗하고 안전한 상태로 만드는 순수과정을 의미한다.
한국 음식에는 국내산 천일염이 쓰여야 한다
영백염전은 k은행지점장을 거쳐 연구원과 대학에서 경영학을 강의하다 5년 전부터 영백염전 경영에만 혼신을 바치고 있는 민동성 대표이사와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더욱 발휘하고 있다. 민 사장은 천일염의 상품성과 부가가치를 확신한다. 그래서 아직은 천일염에 대한 인식부족인 식품업계와 소비자들에게 적극적 홍보를 통한 활로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영입되면서 영백염전은 다양한 상품 아이디어들이 창출되고 있다. 영백염전은 얼마 전 한국식품연구원과 MOU를 체결했다. 영백염전에서 직접 시료 채취해 성분분석을 해 본 결과 세계 최고의 소금으로 치는 프랑스의 ‘겔랑드’ 소금보다 더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민 동성 사장은 이러한 인정이 정작 현실에서는 도외시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는 “한식의 세계화를 논하면서 정작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내놓은 것에 국내 천일염을 쓰지 않는다. 한국 음식의 기본은 장류이고 그것의 근본은 소금이다. 지금 요리사들이 한국 음식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부분 정제염이나 수입 소금이 쓰이고 있다. 진정한 한국음식이랄 수 있을까?”라고 일갈한다. 그의 안타까움이 배인 지적은 이어졌다. “소비자들도 천일염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장에 가서는 약간의 가격 차이로 망설이다 결국 정제염을 고른다. ‘오가닉 갯벌소금’ Ikg이면 일 년을 먹는다. 어느 것이 궁극적으로 이로운 판단인가?”고 토로했다.
또 정부가 나서서 천일염을 지원한다면 기존의 정제염이나 수입업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학교 급식 교사들이나 관공소 구내식당, 군납기관 등 공공성과 관련된 기관들에서 먼저 천일염의 가치를 인식하고 음식에 이를 적극 사용하여 국민건강에 기여함으로써, 일반가정으로 확산되어 맛있고 유익한 소금으로서 우리생활에 안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는 비단 영백염전의 사업적 번창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아직 만개하지 않는 조건 속에서도 천일염을 고집하고 생산하는 ‘장인 정신’을 가진 열악한 동업계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천일염에 대한 자세하고도 충분한 시장적 고찰
소금의 질은 염화나트륨 성분이 결정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소금들의 염화나트륨 성분비를 보면 정제염, 수입염 등은 거의 99%이고 재제조염이 88%, 천일염은 85%이하이다. 천일염 구성비에는 나머지 15%는 인체에 유익한 무기질 영양소인 미네랄 성분이다. 민동성 사장에 따르면, 소금에서는 단지 짠맛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염화나트륨외 함유된 성분에 의해 차별화된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일부 업자가 수입산을 들여와 국내 천일염과 혼합해놓고 천일염으로 가장해 판매해도 확인할 길이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올해부터 농식품부에서는 생산 현지에서 직접 생산량을 확인한 후 생산업자들에게 이에 상당한 QR(흑백무늬패턴의 정보를 나타내는 바코드)스티커를 발급해주는 제도를 시행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민 동성 사장이 전해준 영백염전의 지사(志士)적인 이야기가 있다. 수년전 일본 원전사고가 났을 때 국내외적으로 소금값이 일시적으로 폭등하고 품귀현상이 빚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대부분 판매 호기라 생각하고 저장된 소금을 몽땅 처분하였고, 업자들과 일부 소비자들은 필요이상으로 사재기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백염전은 오히려 판매를 거절하고 출하를 자제하였다. 천일염의 식품 안전성과 품질개선 노력에 의한 차별성과 우수성이 인정된다면 분명 고가에 명품화시킬 수 있는데, 일회적인 호황에 가치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창업주의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천적으로 국내소비량 100만톤에 비해 생산량(35만톤)이 절대 부족한 천일염을 원물상태의 헐값출하가 아닌 종합처리 가공을 통한 프리미엄급 천일염으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에 출하하였다면 국산천일염의 명품화와 글로벌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였는데 일시적인 판매현상에 그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 면서 민 사장은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천일염의 진정한 가치가 대중적으로 호응을 받을 때까지 긍지를 잃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판로를 개척해가는 것에 일종의 경외심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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