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동 1-447 일명 부평농장에 자리잡은 동양종합주방(대표 이승모(55))은 영업용 주방설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종업원은 25명이고 대지면적 2백평에 건평은 2백40평(2층건물) 규모이다.
이 업체는 주방기구를 주문제작 및 사후관리가 사업주종이며 주로 스텐레스 주방기구, 싱크대, 작업대를 생산한다. 기존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범용제품만으로는 앞서갈 수 없어 2012년부터 에어샤워기, 몸 샤워기도 생산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70여 개소 그릇가게들로부터 주방설비 주문신청이 들어오면 그대로 제작해주지만 단가는 거의 정해져 있는 편이다. 주 거래처는 그릇가게, 냉장냉동업 등 식품업과 관련된 업체들이다.
전국적으로 치면 경쟁업체가 수백개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인천지역에서만 대충 20여개는 된다. 이 대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동양종합주방에서는 결코 원자재를 속이지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 대표가 주방설비업계에서 인정받고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원자재는 니켈 함유량에 따라 품질에 큰 차이가 있다.
니켈함유량이 많을수록 녹이 덜 쓰는데 201, 202 제품은 수입품이고 304제품은 국산품이다. 쉽게 말해 숫자단위가 클수록니켈함유량이 많아 좋은 자재로 분류된다. 사실 니켈함유량이 적은 수입품을 쓰면 녹이 잘 슬어 나쁘지만 수요처에서 단가를
줄이기 위해 값싼 자재를 요구하면 공급자는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동양종합주방도 정품 원자재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거래처에서 싼 자재를 써서 제작해달라고 주문해오면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이 대표는 1997년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주방설비업계에 입문했다. 창업
하면서 무엇보다 고객에 대해 철저히 지키는 수칙은 납기는 반드시 지키고 품질
은 엄선된 재료만 쓴다는 원칙이다. 우량품질, 납기준수를 어떤 것보다 강조해왔
기에 업계에서 신용을 지키게 된 것 같다고 한다.
이 대표는 조리대 등 범용제품 생산에만 안주하지 않고 식기소독장, 에어샤워
기, 몸 소독기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같은 주방계열의 제품이라도 몸 소
독기는 기존의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동양종합주방을 한층 더 차별화시킨 제품
이다. 에어샤워기는 위생관리를 중시하는 식품업체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미세한
먼지도 털어준다. 그러나 몸 소독기는 먼지를 털어내는 것 외에 살균작용까지도
한다. 타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지 않고는 치
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이 제품들이 동양종합주방이 최근 불황기에도 버
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 대표는 그동안 주방설비산업이 경쟁이 치열하고 부가가치가 적은 것으로
인신돼 머리를 써서 만든 제품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사업방향
을 선회했다. 에어샤워기 및 몸 소독기는 작년부터 년 3~4번 킨텍스에서 열린 식
품자재 전시회에서 항상 선을 보였다. 사실 이것이 동양종합주방이 갖고 있는 최
신의 무기라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전기분야에 만 3년 정도 몰입하며 연구했
다. 연구개발비로 수 억원이 들어갔는데 거의가 인건비 및 재료비에 쏟아부은 것
이다. 동양종합주방처럼 에어샤워기를 만드는 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제품을 대량으로 출시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이 대표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고 전문영업회사에서
치밀하게 파악한 시장동향자료에 입각해서 납품전략을 세웠기에 살아남을 수 있
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다른 업체보다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효과적인 개발전략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대표는 전라남도 순천이 고향으로 순천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군제대 후 자영
업을 하다가 31살인 1988년에 매제 소개로 주방설비제조업체 선경산업에 들어갔다.
1997년까지 성실하게 직장생활에만 매진하면서 공장장까지 올라갔다. 선경산업 공
장장으로 일하면서 주방설비업체 전반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웠다.
곧 선경산업을 그만두고 자본금 1억2천만원을 가지고 창업에 들어갔다. 평소
저축해두었던 3천~4천만원에 8천~9천만원을 빌리거나 대출받아 자본금은 겨
우 조달했다. 직장생활만 하다가 독립사업을 하는 것이라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3년이란 시간이 지나자 안정화단계에 들어섰다.
창업직후에 IMF가 터졌는데 처음 5개월 정도는 무척 고생했지만 새로이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해 곧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때는 내 사업을 하는 것이라 힘이 들어도 재미가 있었고 밤늦게 일해도 모든
게 내 일이라 고생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IMF때 창업초기만 잠시 당황했지만 그이후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7년 전인 2006년 미추홀로타리클럽에 가입해 현재 클럽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로타리클럽 봉사활동으로는 장애아들에게 쌀 및 반찬을 전달하고
서구 재소자복지공단에 위문금도 전달하는 등 불우이웃들에게 조그마하나 도움
이 되도록 애쓴다.
특이했던 행사로는 인천에 사는 사할린동포들을 위해 가수들도 초빙해 위문
공연도 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3~4회씩 7순 잔치도 해줬다.
자녀들로부터도 받지 못한 잔치상을 받은 노인들이 크게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이 대표는 주방업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업체간 기술수준 격차가 적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동양종합주방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우수 자재 및 납기
준수 등 고객관계에서 철저히 신용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