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 : 2026-08-25 05:54 (화)
🇰🇷🇺🇸
종합

청우 손주필 작가 - 3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특선

2015년부터 대한민국 미술대전문인화 초대작가로 활동 기대

청우 손주필 작가 - 3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특선

3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특선 청우 손주필 작가

어릴 적 아버님이 구비해 주신 필방을 20년 만에 잡으며 문인화 시작해

2015년부터 대한민국 미술대전문인화 초대작가로 활동 기대

조선시대 문인화는 시·서·화를 한 폭에 담아내며 자연의 풍류와 선비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그림이었다. 얼핏 강희맹, 윤두서, 강세황, 김정희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도 문인화 부문이 따로 있다. 올해는 1,547점이 출품될 만큼 많은 화가들이 문인화에 예술적 자아를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올해 33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특선을 받은 청우 손주필 작가는 그동안 이전 국전에서 받았던 특선과 서울시장상 그리고 이번의 특선 입상으로 11점의 점수를 얻어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자격 점수인 10을 넘어 내년부터는 문인화 초대작가로 중앙에서 더욱 활발한 작품을 활동을 예견하고 있다.

거센 물살을 차고 올라오는 잉어의 기상

긴 가로 화폭 아래쪽은 거센 물결이 출렁인다. 잉어 두 마리가 몸을 곡선으로 굽히며 물결에 반응한다. 유연함과 탄력적인 힘이 느껴진다. 물살 위 허공에는 역시 큰 잉어 한 마리가 몸을 휘면서 힘차게 비상하듯이 뛰어오른다. 황허(黃河) 강 상류에 있는 폭포를 거스르며 뛰어오르는 잉어의 등용문 도전이 저런 형세를 했을까. 올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특선을 수상한 청우 손주필의 ‘더불어 사는 삶’이다. 화풍이 자못 역동적이다.

손주필 작가는 그동안 경남을 중심으로 한 공모전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풍류 문화의 본거지였던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공모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 상을 받았었고 세 번의 국전 수상으로 이제 명실공이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다.

본래부터 그림에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 손주필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군데에 복무했던 20대 초반까지 서양화를 그렸다. 그러나 그 뒤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음식점을 경영하느라 그림을 멀리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부친이 어린 시절 구비해 주신 필방도구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한마디가 그를 자각하게 만들었고 문인화를 시작하면서 다시 그림의 세계로 인도했다. 손주필 작가의 어린 시절, 부친께서는 그에게 붓, 벼루 등 문방 일체를 구비해 주셨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그 옛날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셨다. 하지만 손주필 작가는 아직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청소년기라서 유용하게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서양화 위주의 그림공부를 하던 때였다. 그냥 방 안 어딘가에 밀쳐준 상태로 잊어버렸다.

“생활을 해야 하니까 유화조차도 어느 때부터인가 안 하게 됐지요. 게다가 가게가 나름 번창해서 2호점까지 내게 됐으니 시간이 없었어요. 어느 날 서울에서 고등학교 동기가 내려왔는데 같이 술한잔하면서 너 어릴 때 그림을 참 잘 그렸는데 왜 접어두고 돈만 벌려느냐, 고 하더라구요. 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거의 20여 년 그림하고는 절연하고 살았다 싶었는데... 그 말이 저를 다시 그림에 대한 생각을 갖게 했지요.”

그런데 묘한 것이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유화보다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의 평생교육원으로 문인화를 배우러 갔다. 문인화 선생님은 손주필 작가에게 ‘붓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손 작가는 제대로 붓 잡는 법부터 배우기 위해 서예를 먼저 시작했다. 그림이야기를 꺼내 순주필 작가를 각성시켰던 친구가 벼루를 선물해줬다. 본래 옛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터라 100년이나 된 귀한 벼루였다.

그렇게 해서 서예를 5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인화를 그리게 됐다. 문인화를 그리게 됐을 때 손주필 작가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몇 십 년 전 그의 부친이 장만해 주셨던 문방 일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아버님의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인지, 손주필 작가의 그림 재주가 어느 곳에 있는 지를 미리 간파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물려받은 붓 7자루는 모두 소모되고 벼루와 오동나무를 짠 문방 함만 남았다. 작가의 부친은 지금은 작고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서예 5년, 문인화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된 것이다.

130년 된 밀양의 고택에서 한식집 ‘향촌’ 운영

손주필 작가가 본격적으로 문인화가로 활동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그에게는 직업이 있었다. 밀양에서 유명한 한우갈비집 ‘향촌’이다. 부인인 김규리 여사와 함께 경영하고 있다.

“저까지 3대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130년 된 한옥이지요. 500평 정도 됩니다. 역시 집안 대대로 살아온 곳입니다. ‘향촌’이라는 이름은 저의 호인 ‘청우’와 함께 밀양의 교육자이신 백사 선생께서 지어주셨습니다.”

더욱 근사한 것은 130년 된 한옥인 향촌 마당에는 250년 된 모과나무가 있다. 그런데 이 모과나무는 암수가 붙어 있는 부부다. 가지 붙은 건 더러 있지만 암수가 함께 있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한다. 이 모과나무는 금실 좋지 않은 부부가 나무를 만지면 다시 금슬이 좋아진다는 바람직한 속설을 가지고 있다. 향촌은 일본의 유명한 관광책자에 맛있는 집으로 소개돼 있기도 하다. 밀양 뿐만 아니라 근교에서까지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향촌을 찾는다. 향촌 곳곳에 걸어진 손 작가의 묵향이 어우러져 음식의 깊은 맛을 더 더욱 음미하는지도 모른다.

이 130년 연륜의 한옥과 관련해 더욱 재미있는 인연은 아래채에서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안철수 전 대표의 부친이 15육군 병원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2년 동안 이곳에 세를 얻어 살았는데 그때 모친이 안철수 씨를 잉태했다고 한다. 안철수 전 대표는 태어나자마자 부친이 부산으로 근거지를 옮겨 같이 뛰놀 기회는 없었다고 한다.

인생의 조용한 관조를 화폭에 옮기는 작업 계속

향촌에는 손주필 작가가 그린 문인화들이 벽에 걸려 운취를 자아낸다. 하지만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을 다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의 꿈은 갤러리를 마련해서 자신의 그림도 걸고 후배도 양성하는 것이다.

“작품 활동은 향촌의 일이 끝난 열시 이후부터 밤을 꼬박 새면서 이루어지죠. 문인화는 유화와 달라서 한번 붓을 댄 자리에 다시 붓을 갖다 대면 그립을 망치게 됩니다. 한번의 호홉으로 선을 그려야 해요. 그래서 글자 한 자 쓸 때도 흔들리지 않게 잠시 호홉을 멈추어야 합니다. 틈틈이 할 수가 없는 작업이지요.”

그의 문인화에는 새, 물고기, 황태 등의 자연 생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릴 때 선산에서 보았던 기억인 밀양강 낙조 풍경도 있다. 선조들의 문인화가 추구했던 삶의 관조적인 시선이 배어있다. 8월 25일부터 6개월 간 동안 ‘예술로 소통하는 법정’이라는 테마로 밀양지원에서 밀양 구상작가 회원들과 함께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