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선대회장을 연상케하는 '뚝심경영'으로 자동차사업을 세계 3위의 반석에 올려놓은 정의선 회장이 다시한번 특유의 배탕을 선언했다.
탄핵정국 장기화와 미국 트럼프2기집권 개막으로 국내외 정세불안이 고조돼 올해 핵심 사업인 자동차 업황이 예측불허의 상황임에도 현대차그룹이 역대 최대규모인 24조3천억원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성장 동인이었던 전기차가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의 늪에 빠져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줄줄히 투자를 축소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근원적인 경쟁력 강화에 초점...R&D에 집중투자
현대차그룹이 9일 그룹 혁신 허브인 한국을 중심으로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3천억원을 국내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투자 집행한 20조4천억원에서 3조9천억원, 비율로는 19% 늘어난 금액이다. 연간 기준으론 전신인 현대그룹을 포함해 현대차그룹 역대 가장 많은 투자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까지 역대 최대 분기 실적 등 성과를 거뒀지만, 올해에는 어느때보다 돌발적인 경영 변수가 산재해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국내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불안하고 불투명한 경기상황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투자를 늘려 다가올 호황에 대비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특히 위기 극복의 본거지로 해외가 아닌 국내를 선택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투자의 목표가 근원적인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두고 있는 만큼 투자의 상당부분을 연구개발(R&D)에 집중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R&D부문에 11조5천억원, 경상 투자에 12조원, 전략 투자에 8천억원을 각각 투입할 계획이다.
총 투자액의 절반가량을 R&D에 쏟아부겠다는 의미다. 연구개발 투자는 제품 경쟁력 향상, 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수소 제품 및 원천기술 개발 등 미래 역량 확보를 위해 주로 사용된다.
캐즘 여파를 완충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하이브리드 모델과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비롯해 주행거리 연장형 자동차(EREV) 등으로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전기차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전동환 전환의 속도를 늦출 생각은 없다. 전기차 신모델 개발로 전동화 전환을 추진한다는 목표다. 현대차의 경우 2030년까지 총 21개 모델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당초 예정대로 전동화전환 계획을 밀머붙일 방침이다.
기아 역시 2027년까지 목적기반모빌리티(PBV)를 포함해 15개 모델의 전기차 라인업을 갖춘다.기아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중인 목적기반차(SDV) 분야에서는 2026년까지 차량용 고성능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적용한 SDV페이스카(Pace Car) 개발 프로젝트를 완료, 양산 차에 적용할 예정이다.
◆핵심 車사업에 67% 투자...캐파 확장 지속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합종연횡 속에서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해 캐패(생산능력) 확장에도 속도를 유지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가동 중인 기아 광명 이보 플랜트에 이어 전기차(EV) 전용 공장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다.
2026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은 초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특히 전기차 캐파 확대를 위해 차체를 통째로 제조하는 신공법인 하이퍼캐스팅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 울산 공장에 아예 하이퍼캐스팅 공장을 신설한다.
12조원이 책정된 경상 투자는 전기차 전환 및 신차 대응 생산시설 확충, 제조 기술 혁신, 고객 체험 거점 등 인프라 보완에 집중한다. 또 전략투자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원천기술 확보에 투입한다.
투자액을 산업군별로 보면 그룹의 핵심인 완성차 분야가 전체의 67%인 16조3천억원을 차지한다. 여기엔 차세대 연료전지, 수소 버스·트럭 개발, 수소충전소 구축 등 HTWO 그리드 솔루션 구축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8조원은 부품, 철강, 건설, 금융, 물류, 방산 등에 쓰인다. 부품 분야는 전동화 부품 기술 개발, 생산라인 증설, 저탄소 및 자원순환형 친환경 부품 개발, 전기차 모듈 신공장 구축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레거시업종인 철강 및 건설분야도 미래형 위주로 투자를 강활한다. 우선 철강은 액화천연가스(LNG) 자가 발전소 건설, 친환경 소화설비 신설 등을 진행하고, 건설 분야는 수전해 수소 생산 실증사업, 소형모듈원전(SMR), 신재생 에너지 등 신사업 발굴을 추진한다. 이 밖에 금융 부문은 IT시스템 및 인프라 개선을, 물류 부문은 친환경 자동차 용선 확대 등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은 정의선 회장 특유의 과감한 승부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 정 회장은 '퍼펙트 스톰'을 대하는 그룹의 올해 경영전략을 '지키기' 보다는 '정면승부'로 잡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6일 고양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현재의 위기를 기본기로 돌파하자"며 기술 기업의 가장 핵심인 R&D에 힘을 싣는 승부수를 띄웠다. 단순히 위기요인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왜 이런 위기가 발생했는 지 그 배경과 콘텍스트, 역사적 흐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기 극복을 넘어 미래 기회의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우리는 항상 위기를 겪어왔고, 훌륭하게 그 위기들을 극복해 왔으며, 위기 이후 더 강해졌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그룹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고비때마다 소극적 대처보다는 공격적 배팅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해온 정 회장의 이번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나타날 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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