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업황은 안갯속이다. 지난 몇년간 큰 폭의 성장세를 계속해온 전기차가 '캐즘'(일시적수요정체)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줄줄히 투자를 축소하거나 아예 잠정 중단하는 등 속도조절에 나선 까닭이다.
현대차가 승부수를 던졌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 시장 침체의 변곡점에서 통큰투자 계획을 꺼내들었다.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무려 12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연평균 12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현재의 불투명한 시장상황에 게의치않고 현대차만의 '마이 웨이'를 선언한 셈이다. 불황 때 과감하게 투자하는 정의선 회장 특유의 승부수를 다시한번 띄운 모양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 속도조절 속 과감한 승부수
현대차가 28일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하며 향후 10년간 120조원이 넘는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중장기 목표도 분명히했다. 불투명한 경기상황과 중국의 급성장 속에서 2030년 글로벌 판매목표를 555만대라 잡았다. 이 중 전기차는 약 40%에 달하는 200만대다.
현대차는 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투자자, 애널리스트, 신용평가사 등 전문가그룹을 대상으로 '2024 CEO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중장기 전략 '현대 웨이'(Hyundai Way)'를 발표했다. 한 치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제정세와 불안한 시장상황 속에서 뚝심있게 현대차만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대웨이 전략의 골자는 ▲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현대 다이내믹 캐파빌리티'(Hyundai Dynamic Capabilities) ▲다양한 모빌리티 사업 확장을 위한 '모빌리티 게임체인저'(Mobility Game Changer) ▲수소 사회 전환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 모빌라이저'(Energy Mobilizer) 등이다.
현대차는 이러한 전략에 따라 올해부터 2033년까지 향후 10년간 무려 120조5천억원을 투자한다. 지난해 CEO인베스터데이에서 발표한 10년간(2023∼2032년) 투자액 109조4천억원에서 10.1% 늘린 금액이다. 지난 1년사이에 업황이 나빠졌지만, 오히려 투자를 더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포함해 2030년 연간 글로벌 판매량 555만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글로벌 사업장에 추가로 100만대 생산능력을 구축할 예정이다.
전기차 비중도 높인다. 2030년 전기차 200만대를 판매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6%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핵심 시장인 북미(69만대), 유럽(46만7천대)에 묙표의 절반이상을 커버할 방침이다.
선도적 기술개발에도 나선다. 현대차는 전동화 속도 둔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완전 충전시 900㎞ 이상 주행이 가능한 'EREV'(Extended Range Electrified Vehicle)를 2027년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EREV는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장점을 결합한 차량으로 전기차와 같이 전력으로 구동하지만 엔진이 전기를 생산해 배터리 충전을 지원하는 차세대 전기차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현대 웨이는 현대차만의 유연한 대응 체계로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모빌리티와 에너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포스트 캐즘' 겨냥한 드라이브...하이브리드차도 동시 육성
현대차가 이처럼 과감한 배팅을 통해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여러각도에서 해석 가능하다. 우선 전기차 시장에서 최대시장인 북미에서 테슬에 이어 메이저업체로 자리매김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시장 공략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읽힌다.
현대차는 전기차가 당분간 캐즘으로 인해 성장통을 겪겠으나, 결국 자동차시장의 대세로 다시 부각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포스트 캐즘'을 겨냥한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전략이다. 순수 전기차(EV) 모델을 지속적으로 늘려 2030년 총 21개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는 특히 하이브리드차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 캐즘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으며, 현대차는 도요타와 함께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경쟁력을 고르게 갖춘 거의 세계 유일한 완성차업체다. 전기차 최강 테슬라는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떨어지고, 내연기관차 1위 일본 도요타는 전기차 라인업이 취약하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자체 개발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기술을 더욱 높여 늘어나는 수요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준중형과 중형 중심으로 적용됐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소형, 대형, 럭셔리 차급으로 확대한다. 기존 7개 차종에서 14개 차종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다. 제네시스의 경우 전기차 전용 모델을 제외한 모든 차종에 하이브리드 옵션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기존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TMED' 대비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된 TMED-Ⅱ를 내년 1월부터 양산 차량에 적용한다. 이같은 하이브리드 경쟁력 강화로 2028년에는 지난해 대비 40% 증가한 133만대의 하이브리드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 4분기 가동을 앞둔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당초 아이오닉5, 아이오닉9과 같은 전기차를 주력 생산한다는 방침을 바꿔 하이브리드차를 동시에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예상과 달리 공세로 전환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위기에 과감히 투자하는 정의선 회장 특유의 뚝심과 승부사 기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그간 중요한 순간마다 과감한 투자 결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다.
전기차 캐즘에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로 경쟁사들의 투자가 위축된 시점에 과감한 투자로 선제적 대응에 나서 본격적인 수요 회복기에 수혜를 본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가 과연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예상밖의 공격적인 투자로 다시한번 레벨업에 성공할 수 있을 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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