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전 연방기관에 대해 인공지능(AI) 기업 앤스로픽(Anthropic)의 기술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미 국방부와 해당 기업 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앤스로픽이 자사 AI 모델 ‘클로드(Claude)’의 군사적 활용과 관련해 안전장치(가드레일) 도입을 요구해온 가운데, 국방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퇴출을 명령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 정부의 모든 연방기관은 앤스로픽의 기술 사용을 즉시 중단하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그 기술이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며 “앞으로 이 회사와 어떤 사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다만 국방부 등 일부 기관에는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해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하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전환 기간 동안 협조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 민·형사상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는 앤스로픽을 “현실을 모르는 급진 좌파 AI 기업”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발맞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앤스로픽을 국가안보 ‘공급망 위험(Supply-Chain Risk)’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군과 거래하는 모든 계약업체·공급업체·파트너는 앤스로픽과 상업적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원활한 전환을 위해 6개월간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그는 “미국의 전투원들이 빅테크의 이념적 변덕에 인질로 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번 결정이 최종적이라고 강조했다.
앤스로픽은 즉각 반발했다. 회사 측은 “국방부나 백악관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공급망 위험 지정은 전례 없는 조치로, 역사적으로는 미국의 적대국에 적용돼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정부와 협상하는 어떤 미국 기업에도 위험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갈등의 핵심은 군의 AI 활용 범위와 통제 문제다. 앤스로픽은 국방부가 클로드를 활용할 경우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감시 금지 △인간 개입 없는 완전 자율무기 최종 타격 결정에 사용하지 않을 것 등 두 가지 안전장치를 계약에 명시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회사 측은 클로드가 ‘환각(hallucination)’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인간 판단 없이 치명적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될 경우 오판과 확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AI 모델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을 요구해왔다. 국방부는 합법적 목적 내에서 AI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마감시한을 이날 오후 5시 1분으로 설정하고, 가드레일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필요할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해 기업의 기준을 강제로 수정하도록 할 수 있다는 입장도 시사했다.
국방부 최고기술책임자(CTO) 에밀 마이클은 CBS 인터뷰에서 “군을 신뢰해야 한다”며, 연방법에 따른 국내 감시 제한과 자율무기 관련 기존 정책을 문서에 명시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앤스로픽은 “제시된 타협안은 사실상 보호장치를 무력화할 수 있는 법률 문구와 함께 제시됐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와중에 오픈AI는 국방부와 별도의 합의에 도달했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알트먼은 “국방부의 기밀 네트워크에 자사 모델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사의 핵심 안전 원칙으로 △국내 대규모 감시 금지 △자율무기 사용 시 인간 책임 원칙을 제시하며, 국방부가 이를 법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같은 조건을 모든 AI 기업에 동일하게 제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앤스로픽은 지난해 7월 국방부로부터 2억 달러 규모 계약을 수주해 국가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AI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재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와의 협력을 통해 펜타곤의 기밀 네트워크에 모델을 배치한 유일한 기업이다. 그러나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일론 머스크의 xAI가 개발한 ‘그록(Grok)’ 모델 역시 기밀 환경에서 활용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번 사태는 워싱턴 정가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인 민주당의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 장관이 “안전장치 없는 AI 무기 배치를 강요하기 위해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적 고려가 국가안보 판단을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이는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AI의 군사적 활용을 둘러싼 기술적 효율성과 윤리적 통제 사이의 긴장은 이번 사안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정부가 AI 주도 군사 혁신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안전장치를 둘러싼 민관 간 충돌은 향후 AI 산업 전반의 규범과 국가안보 정책에 중대한 선례를 남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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