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과의 군사 충돌 속에서 전쟁의 ‘출구 전략’을 둘러싼 논쟁에 직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은 향후 전쟁에서 빠져나올 시점을 대비해 이미 ‘승리 서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백악관이 이란이 실제로 항복하지 않더라도 “무조건적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선언한 것처럼 해석하는 정치적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전쟁의 종료를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적 서사라는 평가다.
특히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전쟁이 시작 단계인지, 중간 단계인지, 혹은 끝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통령뿐”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낳았다. 그의 발언은 전쟁의 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실상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이러한 미국의 정치적 시나리오에 협조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란 혁명 체제의 핵심 전략은 미국의 군사력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미국 사회의 전쟁 피로도를 견디며 버티는 데 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역사 역시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새로운 충돌은 종종 과거 갈등의 기억을 되살려 다음 분쟁의 씨앗이 되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 등 지역 국가들은 미국 정부가 제시하는 낙관적인 전쟁 전망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전쟁의 ‘엔드게임’ 찾기
현재 미국 정부는 군사 작전을 중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을 찾는 데 점점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상승이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번 이란 충돌은 그 약속을 사실상 뒤집는 결과가 됐다.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경험한 군인과 참전용사들 사이에서 또 다른 해외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도 여전히 강하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과거 부시나 오바마 시절의 끝없는 국가 건설(nation-building) 전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공중 공격과 특수작전을 통해 신속한 승리를 달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략이 실제로 효과를 거둘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지적한다.
‘승리’의 정의를 둘러싼 갈등
트럼프 행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중동을 파괴할 위협을 하고 있으며 핵 프로그램을 재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동시에 이란 정권 교체를 언급하기도 하고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백악관 대변인 Karoline Leavitt 역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무조건적 항복은 이란 정권이 공식적으로 항복 선언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이란이 더 이상 미국과 동맹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때 대통령이 그것을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발언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완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의 군사력과 핵 시설이 큰 타격을 입더라도, 이란 체제가 생존하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란 지도부는 승리로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 전문 매체 암와즈(Amwaj.media)의 편집장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는 CNN 인터뷰에서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의 전면 군사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에게 승리는 체제가 살아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전쟁의 딜레마
미국의 최근 전쟁사는 이러한 상황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베트남전에서는 북베트남과 베트콩 게릴라가 정글 지형을 활용해 미군을 소모전으로 끌어들였고, 이라크에서는 국가 붕괴 이후 반군과 종파 민병대가 등장해 장기적 혼란을 초래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탈레반은 거의 20년에 걸쳐 버티며 결국 미군 철수를 이끌어냈다.
이란 역시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참고해 비대칭 전쟁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테러 공격, 미사일 공격, 대리 세력(헤즈볼라·하마스 등)의 활용,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해상 위협 등이 거론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 미국 대통령들이 반복적으로 직면했던 딜레마에 다가가고 있다.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부분적 승리’를 선언하고 철수할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이 개입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중동이라는 복잡한 지역에서 전쟁을 끝내는 일은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역사가 이미 여러 차례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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