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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학도병 정신’과 홍의장군 곽재우

▲ 홍의장군 곽재우 이미지(출처= 네이버 검색) 강군을 이끌어갈 육해공군 사관생도는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이 바탕 되어야 한다. 지난 3월 2일 임관한 육사 79기 중 ‘6·25 전쟁사’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생도들(280여 명 가운데 75%인 210여 명)이 작년 가을부터 보충수업으로 이수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적이다.육사는 지난 2월 13일 “2024년 교육과정에서 ‘6·25 전쟁사, 전쟁과 전략, 북한학’ 등 안보관·역사관·대적관 관련 3개 과목을 ‘공통 필수’ 과정으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좌파 정부에서 2019년 선택과목이 된 이들 3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복원하겠다는 것이다.6·25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수많은 학도병이 자원입대해서 조국을 지켰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요충지인 포항·안강·장사·영천 전투 등에 참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산화한 학도병들의 애국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연전에 타계하신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 홍의장군 곽재우 이미지(출처= 네이버 검색)
▲ 홍의장군 곽재우 이미지(출처= 네이버 검색)

강군을 이끌어갈 육해공군 사관생도는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이 바탕 되어야 한다. 지난 3월 2일 임관한 육사 79기 중 ‘6·25 전쟁사’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생도들(280여 명 가운데 75%인 210여 명)이 작년 가을부터 보충수업으로 이수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적이다.

육사는 지난 2월 13일 “2024년 교육과정에서 ‘6·25 전쟁사, 전쟁과 전략, 북한학’ 등 안보관·역사관·대적관 관련 3개 과목을 ‘공통 필수’ 과정으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좌파 정부에서 2019년 선택과목이 된 이들 3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6·25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수많은 학도병이 자원입대해서 조국을 지켰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요충지인 포항·안강·장사·영천 전투 등에 참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산화한 학도병들의 애국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전에 타계하신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필자에게 “대구·경북에서 대통령이 다섯 분 나온 것은 학도병들의 피값이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새롭다. 필자는 ‘학도병정신’의 근원은 삼한일통의 바탕이 된 신라의 ‘화랑정신’과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의 ‘충군애민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구한말 역사학자 박은식은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라고 했다.

곽재우(郭再祐, 1552~1617)는 1552년(명종 7) 곽월과 진주강씨 사이에서 경남 의령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조식의 외손서이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들고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녀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불렸다.

곽재우는 33세 때 과거에 2등으로 합격했지만, 지은 글이 왕(선조)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무효가 되자 평생 은거할 결심을 했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자 40세의 곽재우는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기치로 의령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노비 10여 명에 불과했는데, 그 수가 2,0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곽재우는 단기(單騎)로 적진에 돌진하거나 위장·매복 전술 등의 신출귀몰한 병법으로 적을 교란하고 무찌르는 유격전을 구사했으며, 심리전·기만전술까지 능했다. 1592년 5월 하순경. 곽재우는 정암진(鼎巖津)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둠으로써(‘정암진전투’), 경상우도를 보존해 왜군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그해 10월. 김시민의 ‘1차 진주성 전투’에 휘하의 의병을 보내서 승리에 조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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