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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4:3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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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13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대통령상 리드 디자인 이창수 대표

디자이너는 자신의 영혼에 이력이 되는 작품 만들어야

2013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대통령상 리드 디자인 이창수 대표

우리의 일상 환경 중 의식주 어느 곳에건 디자인이 간섭하지 않는 곳은 없다. 상품 시장에서 단순한 선호를 넘어 소비자의 대다수가 열광하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확인하는 생산자의 충만감은 환희에 가깝지 않을까.

리드디자인의 이창수 대표는 휴대폰이 우리의 일상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세월 동안 S 대기업에서 출시하는 수많은 휴대폰 시리즈를 디자인했다.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에서 최초로 천만대가 팔려나간 제품도 그가 디자인 한 것이다.

우리 중 대부분이 그가 디자인한 휴대폰을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며 연락하고 문자를 남기고 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창의가 다수에게 미치는 영향력, 이른바 디자인의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건희폰’ 사용자가 제품 디자이너를 만나다

기자는 한때 ‘이건희 폰’으로 불리던 휴대폰 애니콜 T100을 오랫동안 사용했다. 물론 휴대폰의 기능을 죄다 꾀고 활용하는 세대는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선택의 기준은 디자인이었다. 잘못 놓치거나 화가 나서 손에 있는 것을 무의식중에 던져도 잘 망가지지 않을 것처럼, 조약돌 같은 단단함에 손 안에 잘 잡혀 안심이 되는 곡선형을 채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매우 만족했다는 이야기다. 이 모델은 당시 국내외 제품 경쟁이 치열했던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에서 천만대 판매라는 최초의 신화를 쓴 제품이다.

작고 얇은 휴대전화가 선도했던 시장에서 실용과 곡선으로 출시 18개월 만에 매출액 3조 원, 이익 1조 원을 달성했던 제품이다. 2013대한민국디자인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리드디자인’의 이창수 대표는 바로 그 휴대폰을 디자인했던 사람이다.“당시에는 휴대폰 모델이 굉장히 많아 1년에 200가지 이상을 런닝했습니다. 팀원들을 이끌며 핸들링하는 역할을 했죠. 지금은 천만대 하면 별로지만 2000년대 초반 당시 한 모델로는 사상초유의 기록이었습니다. 물론 기능도 튼튼했지만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가치를 더해주는 것이 디자인 요소라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창수 대표는 오랫동안 S전자의 그룹장으로서 디자인팀을 이끌었다. ‘이효리폰’이란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휴대폰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S전자의 독보적인 휴대폰 시리즈들인 SCH-A100, SCH-X430, SCH-V840 등은 모두 그의 디자인 두뇌를 거쳤다. 당시 휴대폰 시장의 1, 2위를 지켰던 모토로라코리아의 슬림폰 ‘레이저’를 따돌린 ‘V740`을 디자인도 역시 이창수 대표의 작품이다.

S전자가 노키아와 모토롤라에 이어 휴대폰 시장에서 3위에 머물러 있던 시기였는데, 디자인이 휴대폰 시장을 주도하면서 삼성의 브랜드가 도약의 기회를 가졌고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 1위의 휴대폰 생산업체가 되었다.“8 년간 휴대폰 디자인 그룹장으로 열성을 다했어요. 기술도 중요했지만 디자인 경쟁이 치열했고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던 시기에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으니 저로선 무척 큰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업디자인 1세대의 재능

이창수 리드디자인 대표는 우리나라에 아직 산업제품에 대한 디자인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80년대 초반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당시의 ‘문교부’에는 대학학과가 한문으로 등록될 수 있는 단어야 해서, 이전까지는 커리큘럼은 가지고 있을망정 ‘디자인’이란 단어를 학과 명칭에 사용하지 않던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1983년도에 국민대학교에 ‘공업디자인’학과가 생겼다. 뒤이어 대학들에 산업디자인, 공예 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의 정식학과들이 등록됐다고 한다.

이창수는 대표는 본래 순수회화를 지망했는데 그 길이 너무 멀어 보였다고 한다. 그는자신의 재능도 살리고 실질도 얻는 선택을 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라디오 등을 뜯고 재조립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 재주가 오늘의 그를 견인하는 최초의 힘이었던가 보다.“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어요. 손으로 어떤 장치를 뜯어내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그 물건의 ‘구조’라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공업디자인은 구조와 뗄 수 없는 관계죠. 디자인은 아무리 좋아도 기능적으로 담아낼 수가 없으면 허사인 것이고, 기술이 뛰어나도 그것을 담는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으면 진가를 발휘할 없습니다."이창수 대표의 말에 따르면, 산업 제품의 디자인은 '양산‘해야 한다는 제한을 항상 받고 있어 순수한 디자인 세계만을 강조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항상 ’기계적인 구조, 제조, 기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해야하는 것이다.

“공업 디자인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품 디자인은 특히 오랜 경험에서 오는 감각이 제일이죠. 비주얼을 중시하는 디자인과는 좀 거리가 있어요. 디자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엔지니어링 구조가 뒷받침 돼주지 않으면 사장돼는 겁니다. 휴대폰은 금형소재, 조립기능 등도 염두에 두어야 해요. 그러니 공업디자인은 감각만으로는 안 됩니다. 천부적인 재능도 중요하지만, 생활 경험이 훨씬 보탬이 될 때가 많죠. 결국 이 분야의 재능은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보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그는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취향과 선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체구조나 오랜 관습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급적 보편타당한 방법을 찾아서 51%의 소비자가 만족하는 디자인을 찾으면 그것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창수’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서 나온 독립

그는 국내 굴지의 S전자에서 제품디자이너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다 누린 듯싶다. 보상도 받았다. 수차례에 걸친 대한민국 Good design 상(SCH-S310 외)을 비롯해 정보통신부 장관이 수상하는 수차례의 모바일 기술대상(SCH-B540 등), 대한민국 산업디자인 대상(아르마니폰(SGH-P520)까지, 게다가 독일 심사위에서 결정하는 IFAwar(아르마니폰 SGH-P520)까지 획득했다. 이력을 보니 거의 매년 그에게는 상이라는 보상이 주어진 셈이다.

“개발할 땐 고생해도 세계 어워드에서 상 탔대, 라는 말을 들으면 대단한 성취감을 느낍니다.”그런데 왜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를 열고 나온 것일까. S전자에서 20년을 근무하고 그는 자신의 개인 업체를 꾸려 독립했다. 자신의 휴대폰 디자인 경력에 정점을 찍은 2008년의 일이었다.“20년 직장생활 뒤돌아보니 정말 열심히 산 시간이더군요. 그런데 열심히 일하고 보람 있었지만 결국 나의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결과물들은 회사의 것이었죠. 상을 받은 것도 결국 내가 속한 회사의 것이지 이창수, 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가진 개인의 성과물은 아니라는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그래서 이창수 대표는 ‘내 것’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모든 직장인이 겪는 통과의례적인 불안감도 작용을 했다. 워낙 큰 기업이다 보니 임원이 되지 않으면 이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배들에게서 보아온 결론이었다.“디자이너 입장에서 잔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죠. 마지막엔 돌아보고 살자, 내 개인 시간을 내자, 라는 생각을 했고 퇴직을 했습니다.”

그래서 리드디자인이 설립됐고 그는 2008년부터 6 년간 자신의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의 사무실 식구들은 모두 여섯 명이다. 창업 당시 한 선배로부터 디자인 사업은 10명을 넘으면 안 된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10명의 인원이 넘어가면 그 순간부터 저는 더 이상 디자이너가 아닌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먹여 살릴 회사 식구들이 많아졌으니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로소의 소신이나 가치관을 저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거죠.”]

그는 직원들에게 즐겁게 일하라는 말을 자주한다. 여느 직장인과 같은 출퇴근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출근 시간도 10시에 맞췄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에 열정이 있는 직원들은 더 일찍 출근하고 주문하지 않아도 저녁 늦게까지 스스로 작업을 즐긴다고 한다."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작품이 자기 영혼의 이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기만족이 함께 가야하는 일이죠.“

디테일까지 신경 써 제품 전체를 통일하는 디자인

이창수 대표에게 앞으로 공업디자인에서 어떤 족적을 남기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소비자가 일반적으로 쓰는 제품들의 무신경한 디자인을 개선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전자제품의 디자인은 훌륭한데 거기에 수반되는 콘센트의 디자인은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제품의 디자인은 깔끔한 흰색인데, 곧바로 연결되는 콘센트는 흔히 쓰는 검정색이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콘센트들은 주렁주렁 서로 엉켜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죠. 어디 올려놓을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처치곤란입니다. 디자이너들이 부가적 옵션물에 대해서는 무심합니다.”

그는 애플의 충성도가 높은 이유가 이런 사소한 것들에도 디자인 감각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가 근무했던 S전자의 회장은 15년 전부터 텔레비전의 리모콘에 대한 디자인 주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리모콘은 그저 끼워 파는 제품으로 밖에는 취급받지 못하는 상태고 지금도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창수 대표는 천만 원짜리 텔레비전을 만들었으면 리모콘도 거기에 걸 맞는 고급 디자인의 제품으로 가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엠오(확인 요) 라는 회사는 리모콘을 따로 팝니다. 그만큼 작은 것 하나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생산과 디자인을 한다는 얘기죠. 제품 전체가 디자인상으로 통일이 돼야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공업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제품 시장의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평가할까.“대체로 열악하다고 보아야죠.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 위주로 편성돼 있는 편입니다. 실질적으로 전체 산업디자인이 발전하려면 중소기업의 디자인이 성장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요원합니다.”

종소기업에서도 디자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우선은 단가가 뒷받침 해주질 않는다고 한다. 디자인을 의뢰하고 나서도 디자인을 무조건 ‘싼’것으로만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시장에서는 단가 때문에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디자인 의뢰가 들어와도 클라이언트(의뢰인) 자금 사정에 맞추어 줘야하니 디자인이 축소되는 상황도 많이 발생합니다. 좋은 소재를 쓰고 싶어도 단가가 맞지 않으면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풍족한 지원을 받던 디자이너로서의 명성 뒤에 독립 경영자로서의 애환들도 차차 생기고 있는 모양이다. 순수디자이너로서의 미적 욕구와 실용성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야하는 것은 앞으로 그가 산업디자인계에서 헤쳐 나가야 할 화두일지도 모른다.“공업디자인이라 해서 단기적으로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포라이터 같이 쓸수록 가치를 발하는 제품, 애장품이 될 수 있는 정교한 디자인 제품을 우리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이제 다가올 미래는 정보나 기술이 아닌 디자인이 세상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공언한다. 생활 형편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같은 도구에서 기왕이면 ‘미감’을 찾는다. 집-건축, 인테리어, 옷 -말할 것도 없다, 주-푸드스타일리스트는 뜨는 직업이다. 비유의 무례를 용서한다면 ‘기왕이면 다홍치마’인 것이다. 다홍치마는 속담으로 표현된 ‘문화’로 알레고리가 아닐까. 문화의 첨병으로서 디자인 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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