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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1: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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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년간 장애인 위해 헌신, 대린원 김원제 원장

‘빛’을 잃은 그들에게 따뜻한 햇살 비추다

43년간 장애인 위해 헌신, 대린원 김원제 원장

43년간 장애인 위해 헌신, 대린원 김원제 원장
제13회 사회복지의 날에‘국민훈장 동백장’ 서훈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7일 ‘제13회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복지한국을 향한 위대한 여정’이라는 기념행사를 열고, 사회복지 분야 유공자 126명에 대해 포상을 했다.
이 날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서훈한 김원제 홍파복지원 원장은 그동안 시각장애인과 중증장애인, 불우노인의 재활치료 등 보호에 평생을 헌신해 왔다. 거의 평생을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내보내는 김원제 원장을 찾아가 보았다.
김원제 원장은 1969년 어머니인 고(故) 홍영기 여사와 함께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을 운영해 현재까지 40년 넘게 시각장애인, 중증장애인, 불우노인의 복지를 위해 힘써왔다.
아들이던 그는 모친과 어릴 때부터 인생행로의 동반자가 되어 왔다고 한다. 모친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있으면서 시각장애인들과 친분이 두터워 그들에게 재산관계 등 사적인 문제를 도맡아 처리해 주곤 했다.
그러던 중 홍영기 여사는 1969년 미인가 시각장애인 교육시설인 서울맹인대린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시각장애인 30여명을 위해 사재를 털어 인수하면서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시작한 복지사업의 길
김원제 원장은 1971년부터 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와 침술, 컴퓨터 교육 등을 했다. 어머니의 이 같은 봉사 사업은 사명감이 아닌 모친과 시각장애인들과의 진실한 우정에서 출발했으며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그의 보호 아래 지금까지 해마다 12~13명씩, 총 650여명의 시각장애인이 사회에 배출되었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김 원장은 “이들 시각장애인 중에는 사회에 나가 큰 재산가가 되기도 했다”면서 “바로 그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역할이나 성공을 했다면 이 점에서 홍파복지원의 성과와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 비로소 나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양로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80년 ‘홍파양로원’을, 1990년 중증장애인을 위한 ‘쉼터요양원’을, 2005년에는 노인들을 위한 ‘영기노인전문요양원’을 잇따라 개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김 원장이 지금까지 복지시설에 출연한 재산이 31억3000만원에 이른다.

양로원·중증요양원·노인요양원 등 31억원 출연
김 원장의 복지사업이 순항한 것만은 아니었다.
김원제 원장은“복지라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의식주나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을 어떻게 돌보며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그들이 과연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이에 따라 복지원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복지관처럼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잠자는 것도 케어가 필요하다”면서 “사업적인 수단으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직 사명감과 헌신만이 이런 복지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이러한 수용시설의 역할은 장애인들을 사회에 내보내고 그들이 다시 들어오지 않고 사회에 적응하고 생계를 유지하면 그 역할이 끝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이 내세우는 진정한 복지란 자립을 할 수 있는 기반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복지관이다.
복지사업 관련자들은 현재 장애인들을 탈(脫)시설 하여 자립시키자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바로 김원제 원장이 43년 전부터 이러한 방안을 실현해 오고 있는 방식을 이제 논의하고 있는 단계인 것이다.
김원제 원장은 현재 시대정신으로 손꼽고 있는 ‘복지’에 대해서도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인식을 강조했다. 복지활성화를 위한 여러 다양한 정책들이 수립, 집행되고 있지만, 실제 당사자인 복지대상자가 얼마나 만족도를 가졌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이 보기에는 장애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사회정착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막상 사회가 마음을 열고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게 장애인을 받아들이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었으면…”
김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장애인 시설이 아파트나 동네에 들어선다면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한다는 것. 장애인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자신들의 재산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아 입주하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가야 한다”하면서 “만약에 지금까지 흑백영화를 보고 있다면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사랑으로 감싸고 본다면 현재의 총천연색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제 원장은 이같이 진정한 장애인 복지나 케어는 외형이나 물질적 팽창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을 수용하며 함께 생존하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후회 없이 평화스럽게 살다가 평화스럽게 가라. 지나온 길 무엇이든 후회하지 마라.”
이헐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원제 원장은 “덤으로 주어진 나의 남은 인생에 사람들이 고마운 이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봉사, 참된 복지인은 바로 김원제 원장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김 원장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는 장애인들이 사회의 편견을 딛고 스스로 일어서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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