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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2:3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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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만평 논농사 짓는 파주 大農 농업인 이윤기씨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2리431-4 이윤기씨(58)는 5만평규모논농사를 짓는 마을 이장님이다. 논농사 5만평을 짓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소유지는 2만5천평 정도이고 나머지는 타인 농지이다. 이 이장 할아버지께서는 4남매(3남1녀)를 두셨고 그 중 둘째인 이 이장의 부친은 16세때 이웃의 17세 처녀인 모친과 혼인했다. 부모님은 땅 한 평도 못 받고방앗간 및 소장사로 자수성가해 농토 5천평을 마련했다. (대지 및 밭 포함하여 7천 5백평)이 이장은 8남매(아들 5명, 딸 3명)중 다섯 번째로 아들로는 세 번째이다. 부친은 농사에 뜻을 가진 이 이장과 함께 살기를 원했기에 1996년 사망하면서 절반인 논 2천2백평을 물려주셨다. 이 이장은 집안농지 5천평을 혼자 부지런히 농사 지으며 논 2만평을 늘렸다. 부친 이 남긴 뜻에 부응하기 위해 부친이 남긴 땅을 2배로 늘리겠다는 각오로 농사를 지었다. 농토를 늘리려 했으나 파주지역은 토지가격이 비싸고 농토가 줄어드는 추세라 철원지역으로 눈을

5만평 논농사 짓는 파주 大農 농업인 이윤기씨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2리431-4 이윤기씨(58)는 5만평규모논농사를 짓는 마을 이장님이다. 논농사 5만평을 짓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소유지는 2만5천평 정도이고 나머지는 타인 농지이다. 이 이장 할아버지께서는 4남매(3남1녀)를 두셨고 그 중 둘째인 이 이장의 부친은 16세때 이웃의 17세 처녀인 모친과 혼인했다. 부모님은 땅 한 평도 못 받고방앗간 및 소장사로 자수성가해 농토 5천평을 마련했다.

(대지 및 밭 포함하여 7천 5백평)이 이장은 8남매(아들 5명, 딸 3명)중 다섯 번째로 아들로는 세 번째이다. 부친은 농사에 뜻을 가진 이 이장과 함께 살기를 원했기에 1996년 사망하면서 절반인 논 2천2백평을 물려주셨다.

이 이장은 집안농지 5천평을 혼자 부지런히 농사 지으며 논 2만평을 늘렸다. 부친

이 남긴 뜻에 부응하기 위해 부친이 남긴 땅을 2배로 늘리겠다는 각오로 농사를 지었다. 농토를 늘리려 했으나 파주지역은 토지가격이 비싸고 농토가 줄어드는 추세라 철원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이 이장은 철원지역 논 1만9천평을 사면서 농촌공사에서 농민들에게 평당 3만원씩 연리 3%로 융자해주는 농지 구입자금을 이용했다. 대출금은 15년 동안(5년거치 10년 상환) 연차적으로 갚는 것이었는데 8년분은 이미 갚았고 7년분만 남은 상태이다.

 

철원지역은 농지를 처분하고 타지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고 더 좋은 땅을 사려고 처분하려는 사람도 있어 소유권 이동이 잦은 곳이었다. 이 이장은 농기계는 물론 모판도 철원으로 운반해야 하기에 농사철에는 그야말로 대이동을 한다. 그 바람에 트럭 5톤차 외 1톤차를 구입했다. 농사를 지으면 2백평(1마지기)당 보통벼가 5.5~6가마 생산되지만 풍작이면 7가마까지 나온다. 그리고 농민들은 지주에게 토지임대료로 2백평당 쌀 1가마를 준다.

이 이장이 한해 농사를 결산해보니 5만평(2백50마지기)에서 벼1천5백  가마가 생산되는데 이를 도정하면 쌀이 7백50가마가 나오고, 쌀 한가마 당 지난해 농협매입가격이 18만원 했으니 외형적 생산액은1억3천5백만원에 달했다. 여기서 인건비 1천5백만원, 농자재(농약, 비료)비용 1천만원, 유류값 5백만원, 토지사용료 1천8백만원(1백가마)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이 8천5백만원 이었다.

파주쌀은 그래도 지난해 가격을 좋게 받아 가마당 18만원 했지만 전전년도 만해도 15∼16만원 정도였다. 이 이장은 지난 12년 동안 인건비, 농자재 값은 상승했는데 쌀값은 그대로라고 불만을 말한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가마당 30만원은 받아야 하며 비료값은 1백50%나 올랐다고 한다. 반면 농촌에서는 우수품종 보급, 농사기법향상에 따라 지금은 1마지기당 벼 7가마를 생산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쌀 소비가 주는 추세여서 국민1인당 년 1백46kg 소비하던 것이 지금은 69kg로 줄었다고 한다.

쌀값은 제자리걸음이고 정부지원은 줄고, 생산량은 넘치는데 소비가 안 되니 농민들은 안 팔리는 쌀을 떠안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국가에서 쌀 농민에게 3천평당 76만원 지원해주는 직불제도개선할 점이 많다. 지주들은 나중에 농토 팔 때 비용처리 안 해주면 자신이 세금폭탄 맞는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쌀을 생산하는 사람은 농민들이다. 2005년도 직불금제도가 생기자 돈을 서로 가지려고 지주와 임대 농민들간에 충돌이 잦았다. 이에 대해 이 이장은 현금으로 주면 문제되니까 농사에 필요한 농자재로 대체해주면 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농자재는 지주에게 필요 없고 비용처리와도 무관할 뿐 아니라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 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지주-농민들간에 불협화음이 생기다가 나중에는 농민들간에 싸움이 확대됐다. 지주가 직불금을 자신에게 안주면 자기요구를 들어주는 다른 농민에게 임대를 줘버리니까 자연히 이전에 농사 짓던 이웃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진정됐지만 직불제 실시 초기에는 농촌에서 말썽이 많았다. 또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계 구입 시 자부담은 20%로 하고, 자금 80%는 연리 3%로 3년 거치 8년 상환식으로 융자해주는데 과거에 주던 보조금 2백만원이 없어졌으며 융자제도도 변경이 되었다.

이 이장은 농민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값비싼 기계를 내 돈 별로 안 들어 간 것처럼 느껴져 비 혹은 눈 맞히며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농민들도 생각이 많이 달라져 농기계관리를 아주 잘한다고 한다.

농민들이 봄에 농협대출 받아 비료(농자재)등을 외상으로 구입해서 가을추수 후 갚는데 농협 빚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농민들에게 매년 이같은 현상이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1970∼1980년에는 복합영농이 살길이라고 권고했으나 1990년 중반 들어서는 복합영농을 하지 말고 한가지 품목을 전문화시켜 품질향상 해이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복합영농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 이장은 말한다.

소, 돼지사육 등 축산은 이미 공급 포화상태이니 안되지만 하우스재배는 얼마든지 개척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잡곡류 생산과 특수작물 토마토, 파프리카 재배 등 소비량이 늘어 시설하우스 재배로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국가에서 농자재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출 등 지원이 있으면 젊은이들이 의욕을 갖고 농촌에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장은 봉서2리에서 태어나고 자라 1975년 2월 파주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했고 재학 시에는 브랜스 밴드로 음악활동을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46세에 농협대학 수도작교육(1년과정)을 마쳐 2002년에 수료했고, 마을이장으로 무엇인가 마을이 변화를 갖기 위해 농협대 농촌관광과(1년과정)를 2010년에 수료했다. 봉서2리 이장직은 이미 33살 때인 1989년부터 4년간 맡았었다. 그때 이장단 총무로 활동했는데 13년만인 2007년부터 다시 이장을 맡게 됐다고 말한다. 마을이장을 다시 맡게 된 동기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무엇인가 마을을 위해 큰 사업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이장은 마을 안길, 농로포장은 물론이고 3년마다 음력 3월3일(제비가 돌아온다는 3월3진날)에 성금을 거둬 마을과 주민의 무사 안일을 비는 대동굿을 했다. 2011년 101세로 돌아가신 최돈제 할아버지께서 희사하신 터가 도당터로 불리며 옛 부터 마을성지로 여겨졌는데 읍과 시의 지원으로 운동기구와 파라고를 세우고 돌담으로 터를 아담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통일로에 도시가스가 지나가는 것을 마을로 끌어온 것이다. 세대수가 적다는 이유로 서울도시가스사가 반대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이장이 앞장서 해결했다.

세 번째는 2012년 9월 5일 준공한 마을회관이다. 읍과 시에 호소해 접경지 사업으로 멋진 2층 건물을 신축했다. 실내는 LED 조명과 노래방 기기 등 주민 편의시설과 특히 청년과 중장년층, 부녀회의 정보공유와 담소의 장소로 주민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이 이장은 어릴 때부터 짓궂어 닉네임이‘놀부’이지만 알고 보면 남에게 퍼주기 좋아하는 성품이라며 웃는다.

1996년 파주중앙 로타리클럽에 입회해 회장을 2번이나 지냈고 2008∼2009년에는 국제 로타리 3690지구 파주 총재지역대표를 맡기도 했다. 로타리회장 재직 시에는 뭉치지 않고서는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다고 보고 먼저 회원단합에 역점을 두고 이끌어 갔다. 매주 화요일 주회를, 승마주회·목욕주회·극장주회로 변화를 주었고 소주 번개팅도 시도했다.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치니까 회원들이 단합되고 봉사활동도 능률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이장은 올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임기 2년의 파주읍 체육회장을 맡게 됐다. 이왕 맡은 것이라 로타리회장 경험을 살려 회원 1백10명을 1백50명으로 확충하고 싶은 포부를 갖고 있다.

사실 체육회장직을 고사했던 이유는 농사일도 일이지만 일주일에 사흘간 서울 종로3가에서 2년째 소리를 배우러 다니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이은주 명창 밑에서 문하생으로 소리를 배우고 있는데, 부친의 풍류기질을 물려받았는지 고교시절에는 밴드부 활동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는 소리를 배우는 것 같다고 한다. 부친은 장구를 아주 잘 쳤고 상여 나갈때 선소리도 잘 했다. 이 이장은 자신이 8남매 중 부친을 가장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소리를 배우는 이유는 경기민요소리가 좋고 소리를 노후 취미생활로 삼아 여가선용과 노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부인은 57세로 슬하에 3남매를 두어 큰딸과 장남은 직장인이고 작은아들은 군 복무중이다. 이 이장은 농토를 늘리겠다는 부친과의 약속도 지켰기에 이제는 사회봉사를 형식적으로 하기보다 이익의 몇 %라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베풀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재산도 자식에게 모두 물려주기보다 일부는 사회에 맞추어 하겠다는 생각이고 남자라면 자신이 뱉은 말은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하며 우정과 의리를 중요한 가치로 믿고 산다.

이 이장은 가끔 논에서 일하다가 아름다운자연풍경과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손·발톱이 썩어 가도록 일하시던 부친이 생각나고 또 자신을 이렇게 키워주신 부친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럴 때마다 다시 부친을 우러르게 되며사무칠 정도로 부친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한다. 이 이장의 올해 94세인 모친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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