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권수립일(9·9절) 70주년 열병식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나타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심지어 연설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ICBM급 무기와 연설을 제외한 것은 국제 사회에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알리기 위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9‧9절 열병식이 오전 10시 경부터 약 1시간 반 동안 열렸다. 김 위원장과 당‧정‧군 고위 인사, 해외 사절, 외신 기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병력 1만 20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열병식이 진행됐다. 이날 열병식에는 ICBM과 스커드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탄도미사일 전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ICBM 대신 열병식에 동원된 것은 300mm 신형 방사포와 152mm 신형 자주포 등 재래식 무기들이었다. 앞서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설 70주년 열병식에서 ICBM 화성-14형, 화성-15형과 준ICBM 화성-12형을 공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하지 않고 참관만 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8일,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단 70주년,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는 직접 연설을 했다. 김 위원장 대신 연설을 맡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경제를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그는 “당이 제시한 새로운 전략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혁명적인 총공세, 경제건설 대진군을 다그쳐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력갱생의 혁명 정신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목표 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을 힘 있게 벌여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며 과학기술강국, 인재강국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라고도 말했다.
ICBM 제외, 참모의 연설과 경제 강조 등 이번 열병식 행사는 미국을 의식해 극도로 절제한 듯한 인상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을 감안해 행사를 축소해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북미 비핵화 협상은 또 한 번 반전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북한의 이번 행사는 풍계리 실험장 폭파, 미군유해 송환 등을 잇는 선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협상 재개를 위해 적극적 제스쳐를 취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취소로 인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양국은 서로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상황이 바뀐 것은 지난 5일 남측의 대북특사단이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난 후부터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유화적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특사단이 다녀간 다음날인 6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긍정적 메시지가 담긴 친서를 전달한 사실도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ICBM 없는 열병식에 응답하며 곧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재개도 점쳐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북한 열병식이 끝난 후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열병식에는 언제나 나왔던 핵미사일은 없다”고 말하며 “북한의 크고 매우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김정은 위원장 고맙다”고 말하고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며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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