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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하이닉스 12조 EUV 베팅, 국내 반도체 중소·중견기업에도 기회가 열릴까?

약 69억 유로 EUV 도입 결정…장비·소재·레이저·패키징까지, 전후방 공급망 수혜 기업 집중 분석

K하이닉스 12조 EUV 베팅, 국내 반도체 중소·중견기업에도 기회가 열릴까?
SK하이닉스가 네덜란드 ASML로부터 약 69억 유로(11조9,497억 원) 규모의 EUV 장비 도입을 결정하면서, 국내 반도체 장비·소재 생태계 전반에 대형 투자 훈풍이 불고 있다. 단순한 '빅딜' 그 이상으로,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국내 중소·중견기업에까지 실질적인 기회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다.

12조의 의미…자산총액의 10%를 EUV에 걸다

2025년 연결 매출 97조1,468억 원으로 전년(66조1,930억 원) 대비 46.9% 성장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대표 곽노정)가, 24일 이사회를 열고 ASML Netherlands B.V.로부터 약 69.13억 유로(11조9,497억 원, 환율 1,728.48원/EUR 기준) 규모의 극자외선(EUV) 스캐너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자산총액(119조8,552억 원, K-IFRS 2024.12.31 기준) 대비 9.97%에 달하는 초대형 투자다. 금액에는 EUV Scanner 본체와 부대 장비 설치·운송 비용이 포함되며, 약 2년에 걸쳐 2027년 말까지 순차 인도될 예정이다. 환율 변동에 따라 최종 취득가격은 변경될 수 있다.

이번 투자의 핵심은 '6세대(1c) D램 공정 전환'이다. SK하이닉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메모리 시장은 AI 기술이 산업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유례없는 성장을 기록"했으며, DRAM은 추론 기능 중심 AI 서비스 고도화로 HBM 수요뿐 아니라 일반 DRAM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1c 공정을 통해 HBM4E, HBM5 등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군을 양산하고, 소캠2(SOCAMM2)와 GDDR7 등 AI 메모리 라인업도 확대한다. 매출이 2년 만에 3배(2023년 32.8조 → 2025년 97.1조)로 급성장한 만큼, 12조 규모의 선제 투자는 이 성장 궤도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이 투자의 배경에는 엔비디아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6일(현지 기준)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26 키노트에 직접 참석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AI 기술 무대에 최 회장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최 회장은 2월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CEO와 치맥 회동을 가진 데 이어, 한 달여 만에 GTC 현장에서 재회하며 AI 반도체 협력 관계를 확인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GTC 전시 부스에서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Vera Rubin)'에 탑재될 HBM4와 저전력 서버용 D램 모듈 SOCAMM2를 선보였고, 젠슨 황 CEO가 베라 루빈 전시 제품에 직접 "JENSEN ♡ SK HYNIX"라는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SK하이닉스의 12조 EUV 투자는 이 파트너십의 연장선, 즉 '베라 루빈 시대'에 필요한 차세대 메모리를 양산하기 위한 선제 포석인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는 AI 수요 기반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2028년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장비 업계, "팹 수주 대비 R&D 투자 사상 최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는 곧바로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수주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이미 선제적 행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6월 용인시 기흥구 기존 R&D센터 옆 부지에 1,048억 원을 투입해 제2연구소 신설을 공시했다(자기자본 대비 18.5%). 지하 3층·지상 4층, 연면적 약 2만㎡ 규모로 2028년 6월 완공 예정이며, 3-5족·3-6족 화합물 반도체와 고유전체, Noble Metal 등 차세대 공정 소재 기술 연구에 집중한다. 황철주 대표는 "AI 산업과 반도체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투자"라고 밝힌 바 있다.

원익IPS(대표 안태혁)는 2025년 연결 매출 9,098억 원으로 전년 대비 21.6% 성장하며 반도체 장비 호황을 입증했다. 주력 제품인 PECVD·ALD·Diffusion Thermal System 등 박막 증착 장비의 생산능력을 전년 948대에서 1,188대로 25% 확대했으며, 평택 P4와 청주 M15X 팹 수주를 대비한 차세대 장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화성 R&D센터를 통해 EUV 후속 공정에 필수적인 증착·식각 장비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24일 증시에서도 이 같은 기대가 반영됐다. 외국인은 원익IPS에 520억 원, 에코프로비엠에 340억 원을 순매수하며 반도체 장비와 소재 대표 종목에 대한 신뢰를 보여줬다.

수혜 예상 기업 비교

수혜 예상 기업 비교, SK하이닉스 12조 EUV 투자 결정일 기준 (제작: 데일리뉴스)
수혜 예상 기업 비교, SK하이닉스 12조 EUV 투자 결정일 기준 (제작: 데일리뉴스)
3월 24일 수혜 기업 주가 변동률, SK하이닉스 12조 EUV 투자 결정일 종가 기준 (제작:데일리뉴스)
3월 24일 수혜 기업 주가 변동률, SK하이닉스 12조 EUV 투자 결정일 종가 기준 (제작:데일리뉴스)

장비뿐 아니라 소재·부품 분야의 수혜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후성(대표 김용민)은 40여 년간 축적한 불소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에칭용 특수가스 C4F6와 증착용 WF6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매출 4,716억 원(전년비 +7.7%)을 기록했으며, 울산 공장에서 C4F6 180MT/yr, WF6 400MT/yr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고객사이며, EUV 이후 미세 공정에서 에칭·증착 소재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직접적 수혜가 예상된다. 수도권 연구소 설립도 추진 중이다.

코오롱(대표 안병덕)은 2025년 연결 영업이익 605억 원으로 전년(-920억 원)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산업자재군(47.2%)과 화학소재군(25.7%)이 주력인 자회사 코오롱인더스트리(매출 4조8,734억 원)를 통해 AI 반도체 소재를 앞세운 고부가 제품 확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사 삼성전자도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장 전영현 대표는 3월 18일 평택 팹에서 리사 수(Lisa Su) AMD CEO와 차세대 AI 메모리 솔루션 협력 확대 MOU를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 'Instinct MI455X' GPU에 HBM4를 공급하는 우선 공급업체로 지정됐으며, 업계 최초 1c D램·4nm 베이스다이 기반 HBM4를 2월부터 양산 출하 중이다(데이터 처리속도 최대 13Gbps, 대역폭 3.3TB/s). 전영현 대표는 "HBM4, 차세대 메모리 아키텍처, 최첨단 파운드리·패키징까지 턴키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엔비디아, 삼성전자-AMD로 양분되는 AI 메모리 공급망 구도 속에서, 국내 장비·소재 기업은 양쪽 모두의 EUV·선단 공정 투자 수혜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슈퍼사이클인가, 과잉 낙관인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4일 발표한 '2026년 2/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EBSI)'에 따르면, 반도체 품목 EBSI는 191.4로 15개 주요 수출 품목 중 유일하게 '매우호조'(150 이상)를 기록했다. 반도체 EBSI는 2025년 2분기 112.7에서 4분기 연속 상승해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보고서는 "2분기 스마트폰 탑티어 업체들의 공격적 출하 계획에 따른 D램 단가 강세 지속, 피지컬 및 에이전틱 AI 확산으로 인한 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로 공급자 우위의 시장 구도가 유지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D램 평균가격(1Gb 기준)도 2025년 3분기 $3.46에서 2026년 2분기 $5.06으로 46% 상승이 전망된다(Gartner 기준).

반면 15개 품목 중 수출 여건 개선이 전망되는 품목은 반도체·무선통신기기·석유제품 3개뿐이며, 가전(51.3)·철강(53.4)·플라스틱(58.4) 등 12개 품목은 둔화가 예상된다. 전체 EBSI도 106.6으로 전분기(115.8) 대비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차질이 주요 원인이며, 수출기업의 최대 애로요인은 원재료 가격 상승(21.8%)과 물류비용 상승(20.1%)이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가 2주 만에 1,333에서 1,710으로 28% 급등했다.

이런 환경에서 반도체가 사실상 한국 수출을 '홀로 견인'하는 구도이며, SK하이닉스의 12조 투자는 이 견인차 역할을 유지하기 위한 선제 포석으로 읽힌다.

다만 전문가들은 낙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경고한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경비즈니스 기고에서 "지난 15년간 ICT·반도체 수출 호황은 뚜렷한 패턴을 보여왔다"며, 2026년 1~2월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100%를 돌파한 현재의 흐름이 과거와 달리 'M자형' 이례적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슈퍼사이클의 진짜 시험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꺾인 뒤 얼마나 덜 흔들리느냐에 있다"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무역법 122조에 따른 10% 관세 부과(2/24~)와 301조 조사 개시(3/11~),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 논쟁(찬성 여론 53.5%)도 변수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도 업계 리스크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조합원 약 2만 명)은 3월 23일 이재용 회장 자택 앞 기자회견을 예고하며 4.23 집회와 5.21 결의대회를 선포했다. 같은 날 사측은 이례적으로 전영현 대표이사와 공동투쟁본부 간 미팅을 제안해 약 1시간 30분간 면담이 이루어졌다. 노조 공지에 따르면 전 대표는 "교섭을 재개하여 논의하면 좋겠다"는 의향을 전달했으나, 노측은 OPI 상한 폐지와 성과급 투명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교섭 재개 여부는 아직 미정이다.

2026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제작:데일리뉴스)
2026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제작:데일리뉴스)

"12조는 시작일 뿐"…생태계 전체가 움직인다

업계는 SK하이닉스의 12조 투자를 단독 이벤트가 아닌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레벨업 신호'로 읽고 있다. EUV 도입은 장비·소재·가스·패키징 등 전후방 공급망 전체에 투자를 촉발하고, 그 수혜는 대기업에서 중소·중견기업, 나아가 스타트업까지 확산된다.

화학경제연구원(CMRI)이 오는 4월 24일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고기능성 반도체 소재 기술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의 반영이다. AI 반도체, Physical AI, GaN 에피웨이퍼, 초고순도 특수가스, 패키징 방열 소재 등이 주요 의제다. 딜로이트(Deloitte Insights, 2026.02)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2026년 약 9,750억 달러(US$975B)에 달할 전망이며, 이 중 AI칩이 매출의 약 절반을 차지하지만 물량 기준으로는 0.2%에 불과한 '고마진·저물량' 구조다. 메모리 부문만 약 2,000억 달러(전체의 25%)로, HBM3·HBM4·DDR7 등의 가격이 2025년 하반기 대비 4배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소재 기술 경쟁력이 곧 기업 생존의 관건이 되고 있다.

12조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번질지,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다음 장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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