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광 유치원 이영환(72) 이사장은 누구보다 사회 활동을 줄기차게 해 온 인물이다. 초등학교 교사에서 출발해 유치원 경영, 구․시의원, 광역의회의장, 새마을 금고 이사 등의 직함이 그녀를 대변하는 사회적 프로필이다. 반면, 이 이사장은 전 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전통적 미덕을 발전적으로 잘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생활을 헤쳐 나가는 강인함과 유연한 여성성이 이영환 이사장을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가로 유지시키고 있는 듯했다.
인성과 효를 중시하는 교육 방침
이영환 이사장은 상대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 낭랑하고 맑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과 오랜 시간 지낸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부광 유치원은 35년을 이어 온 인천의 명문이다. 35년 전 두 학급으로 시작해 현재는 10학급에 실내 수영장, 생태공원 등을 갖추기까지 1만 2000여 명의 졸업생을 키워냈다. 유치원부터 글로벌 인재를 외쳐대며 아이들을 온갖 새로운 학습법의 피 실험자로 만들어 버리는 요즘의 풍토에서, 부광 유치원은 참으로 고전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
“효, 인성, 나라 사랑. 이런 것들을 자연스런 유치원 생활을 통해 교육합니다. 유치원은 폭넓은 인성 함양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부광유치원의 한글 교육법은 독특하다. 절약과 검소가 몸에 밴 이 이사장이 이면지를 모아 4등분한 쪽지에 아침마다 등원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열 번씩 쓰게 한다. 그것이 끝나면 친한 친구의 이름, 다음에 부모의 이름 쓰기, 그 다음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 물어 쓰기 등이다. 그러면 자신이 이름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애정을 가질 수 있다. 또 한 가지 감탄할 만한 아날로그 학습법이 있다. 유아 때부터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조사학습’을 시키는 것이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은 사전이 하나씩 다 있어요. 그날 배울 주제가 ‘사과’라면 우선 사전에서 사과를 찾아 쓰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느끼는 사과의 맛, 색깔, 느낌을 적게 해요. 그리고 사과가 한 알인데 먹을 사람은 동생과 둘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합니다. 아이들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지만 결국 반으로 나눠 먹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자연스레 나눔에 대한 이해와 함께 ‘1/2’이라는 산수 공부가 되는 거죠.”
학년이 올라가면 수준을 올려 교과서, 참고서, 백과사전이나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된다. 이 이사장은 이 조사학습법으로 세 자녀를 과외 한번 안 시키고 모두 소위 일류대에 보냈다. 심지어 손자마저도 조사학습으로 유학생활을 잘 견디고 있다고 한다.
당면한 상황들보다 나아지려는 행동이 발전 가져와
이렇듯 지금은 아이들 교육에 반듯한 교육자이지만, 정작 그녀의 어린 시절은 가난의 징표로 시작했다. 어머니가 바지락 장사를 해서 겨우 생활을 꾸려가던 시절이었다. ‘꿀꿀이 죽’도 먹었다. 학교 갈 돈이 없어 야학을 다녔다. 낮에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엄마한테 졸라서 공립학교를 갔는데 너무 나이가 많아 받아주질 않았다. 결국 근처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엘 갔다. 9살이었다. “하고 싶던 공부를 드디어 하게 되니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무조건 열심히 했죠. 집에서 하던 버릇대로 학교 청소며 궂은 일, 힘든 일도 도맡아 했어요.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돌렸는데 그래도 학사금을 못내 시험을 못 치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난신고 끝에 학교의 병설중학교에 진학해서 결국 20대 1을 뚫고 사범학교를 가게 됐다. 이영환 이사장에게선 우리네 어머니들 속에 공통으로 내재해 있던, 조용히 역경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외유내강의 힘이 있는 듯했다. “꿀꿀이 죽’이란 걸 먹던 시절이었는데, 고생하면서도 속상한 마음이 안 들었어요.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보다, 받아들이고 즐겁게 헤쳐 나갈 계획을 세우고, 그러다 보니 생활이 차차 나아졌던 거죠.”결혼했을 무렵에도 형편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었는데, 당시만 해도 월급이 생계비에 모자라던 때였어요. 생활비를 보충하려고 미용기술도 배우고, 택시업도 하고 국수집도 병행했어요.”
그러다가 교사가 부수입을 챙긴다고 오해를 산적도 있고 기자들에게 타겟이 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는 교사 생활 10년이 넘으면 관외 지역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러면 가족들과 떨어져야 했다. 직업을 바꿔서라도 가족을 한 장소에 모여 있게 하고 싶었던 그녀는 사표를 내고 당시 인천교대에서 분리되던 유치원을 인수해 전념하기로 했다. “당시 집 한 채가 900만원 이었는데, 유치원 건물을 2500만원 이었어요. 퇴직금으로 인수 빚 일부를 갚고 유치원 옆에 소위 ‘하꼬방’ 두 개를 들여 살았어요. 당시 학교 동료들이 교사직업 그만두고 유치원한다고 한심하게 봤죠.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부러워해요. 정년이 없잖아요. 지금껏 일하고 있으니.”현재 이영환 이사장은 방송통신대학의 유아교육학과를 거쳐 인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광역시의회 최초의 여성의장
차츰 지역에서 호평을 얻게 되니 명망이 생겼다. 91년도 통․반장들이 구의원 나가서 동네 살림 좀 하라고 떼밀었다. 집안 살림 하듯이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가족도 ‘뭘 시켜도 잘할 사람’이라는 믿음을 줬다. 구의원으로 있을 때 에피소드 하나. 의원들이 일본에 견학을 갔는데, 깨끗한 길에서 남자 의원들이 무심코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그녀는 휴지를 말아 그 밑에 갔다 댔다. 혹자는 본능적으로 여성의 뿌리 깊은 복종의식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영환 이사장은 다른 연유를 댔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어느날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있지도 않으셨는데 재떨이를 가지고 오라 하셔요. 어리둥절해 갔다 드렸더니, ‘시아버지가 담배를 꺼내면 미리 이렇게 재떨이를 대 드려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당시는 그냥 뚱했는데, 살다보니 깨우쳐졌어요. 할 수 있는 한 먼저 호의적인 행동을 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살아가기도 훨씬 수월하다는 교훈이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가르쳐 준 세상살이 지혜가 살아오면서 굴곡이 있을 때마다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결국, 알뜰하다는 이유로 결국 구의회에서 총무위원장을 맡게 됐다.
다음엔 시의원이 됐다. 오랜 교사생활 덕인지 투표수 29표 중 23표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문서위원장이 되었고, 2002년에는 전국 광역시의회 최초로 의회여성의장이 됐다. 하지만 일사천리의 연속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의회의장이 되어 첫 회의를 주재하는데 의원 정족수가 채워지지를 않아 개회조차 하지 못했다. 남성 의원들 사이에 여성 의장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연 년 전쯤의 인식이었다. “구의원 시절에도 어떤 사안을 가져가도 여성 의원이라서 공무원들이 소홀히 대한다는 인상을 받고 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의원들을 한사람한사람 만나서 설득했지요.”
시의장을 하는 동안 이 이사장은 청백리 호평을 받았다. 의원이 되기 전에는 치마를 자주 입는 편이었는데 의원 신분이 되자 항상 바지만 입게 되더라고 했다. 검소한 옷차림의 상징처럼 항상 어두운 색의 비슷한 디자인만 입고 다녔다. 이 이사장 자신은 아마도 오랜 교육자 생활로 무의식중에 드러난 검소해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어느날 제 딴에는 멋을 부린다고 셔츠 칼라를 목에 올리고 의회에 나갔더니, 아침에 바빴냐는 질문이 되돌아오더라고요.”
유치원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해야
분원까지 거느린 유치원이지만 이영환 이사장은 몸소 다 점검을 한다. 풍족함이 당연한 듯 알고 태어난 요즘 아이들에게서 가난했던 지난날로 인해 몸에 배인 절약정신도 가르친다. “젊은 사람들이 물건을 스스럼없이 버리는 것 보면 참 아까워요. 아이들도 밥을 남기기 일쑤죠. 물을 말아서 먹더라도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게 타이릅니다. 일주일만 가르치면 아이들은 금방 따라와요. ”아이들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방에서도 허투루 음식을 버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준다고 한다. 이제는 안하지만 전에는 음식점에서 갈비나 생선을 싸달라고 해서 가져온 적도 많다고 한다. 슬리퍼도 헤지면 꿰매서 신는다.
전 시대의 검약정신이 몸에 밴 이사장과 한참 젊은 교사들 간에 세대 차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이사장은 솔직하게 요즘 젊은 교사들의 짧고 파인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교사의 신분을 고려해 보다 단정한 복장을 원하지만 막을 길은 없다고 희미한 한숨을 지었다. “갈등이 생겼을 경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의 돌봄이 온전했는지를 먼저 성찰해 보지 않고 아이의 미숙함을 먼저 탓하는 교사들이 종종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 유치원에서 자주 일어나는 교사들의 원생 폭행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 지적인 교육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원 교육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맘이 없으면 선생 하지 말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죠.”
졸업식 때 다 헤진 사전 깨끗이 붙여 졸업선물로 주는 유치원
부광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애국가를 4절까지 배우고, 졸업식 때 부르기도 한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니 웃는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가서 애국가를 모두 부를 수 있는 학생이 자신의 아이가 유일했다면 고마워했다고 전했다. 이영환 이사장식 교육의 또 한 부분이다.
졸업식 때 이채로운 일이 또 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수없이 사용해 손때가 묻은 사전을 테이프로 잘 붙이고 깨끗이 해서 졸업선물로 건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인성 교육이 먼저입니다. 유치원은 그 바탕을 단단히 해주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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