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날’인 4월 21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과학기술처를 설립한 날이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말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한국과학원(KAIST)을 설치하여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을 진흥했고, 정부 부처로 과학기술처를 설립하여 국가 과학기술 진흥사업을 총괄하게 하였다.
선진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 두뇌들을 모셔와 키스트를 만들고 카이스트, 기술학교를 세우는 등 과학기술 인력을 키운 업적은 박정희의 미래지향적 통찰력과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또한 과학기술자를 우대하고 ‘과학입국·기술입국’의 초석을 다진 통치철학은 박정희에게는 거의 신앙이었다.
박정희는 KIST를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집현전’으로 여겼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에 몰두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집현전에 자주 들른 것처럼, 박정희도 수시로 KIST를 방문해서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의지는 ‘박정희 시대’에 비해 오히려 빛이 바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최무선은 1325년(충숙왕 12)에 경북 영천에서 광흥창사(廣興倉使, 정5품)를 지낸 최동순(崔東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화약 무기의 자체 개발에 성공한 위대한 장군이자 혁신적 발명가이다.
최무선은 <화포법>과 <화약수련법>을 써서 아들 최해산(崔海山)에게 물려주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로켓 추진식 화살 병기 ‘신기전(神機箭)’은 최무선-아들 최해산-손자 최공손(崔功孫)으로 이어진 화약 기술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권율이 행주대첩에서 승리한 비결도 신기전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때 육지에서는 조총을 앞세운 왜군이 조선군을 유린했지만, 해전에서는 조선이 일본 수군의 화포를 압도했던 이유는 최무선의 화약 제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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