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번 돈으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5%로 내린 데다 정부가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 정책을 펴면서 좀비기업의 시장 퇴출이 더뎌진 결과다. 한은과 경제학계는 올 하반기에는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정책을 추진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계 이어 기업까지 빚더미, 민간부채 비상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대비 민간부문 부채 비율이 주요 20개국(G20) 중 상위권에 진입한 데다 앞으로 민간부채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19 여파로 마련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의 과정에서도 저리대출 등 민간대출을 유도하는 정책들이 여럿 반영돼 민간부채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당장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대비 민간부문의 부채 규모는 이미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검토보고'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부채 대비 민간부문 부채 규모는 2019년 기준, 3.51배로 나타났다. 민간부채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합산액을 의미한다. 미국(1.38배), 독일(1.92배), 프랑스(2.19배), 일본(0.69배) 등 주요 선진국을 이미 큰 폭으로 넘어섰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수준은 56.17%로 G20 평균인 76.6%보다 낮은 데 비해 민간부채 중 가계 부채의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3·4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1.1%로 G20 국가 평균(66.6%)보다 높다. 주요국인 미국(78%), 영국(88.9%), 중국(61.1%), 일본(64.3%) 등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다.
민간부채의 다른 축인 기업부채도 심각한 수준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좀비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기업은 2019년 3475개(전체 기업 대비 14.8%)로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한은은 지난해에는 한계 기업이 5,033개(21.4%)로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생산성 둔화를 개선하기 위한 좀비기업 퇴출
좀비 기업이 빠르게 늘어나며 부채위기 경고음을 내고 있다. 이를 퇴출되지 못하면서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성장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좀비기업에 대출이나 정부 지원, 인력이 몰리면서 그만큼 신산업으로 가야 하는 자원·자금 배분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좀비기업은 전체 제조업의 경쟁력·노동생산성을 훼손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좀비기업 노동생산성이 일반기업의 평균 48%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비기업 비중이 2010~2018년에 늘어나지 않았다면 일반기업의 노동생산성은 평균 1.01%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기업의 유형자산 증가율과 고용증가율도 각각 0.5%포인트, 0.42%포인트 높아졌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생산성 둔화요인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는 "투명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조속히 퇴출해야 한다"며 "재무상황, 보유기술의 차별성을 비롯한 기업 특성을 반영한 구조조정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도 올해 하반기에 부실기업 퇴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가을에는 경기가 개선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가려진 좀비기업의 윤곽이 뚜렷해질 것"이라며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가 계속 이어질 수 없는 만큼 옥석 가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평가했다.
기업-가계-정부 빚 ‘GDP 2.5배’에 쌓이는 부담
지난 3월 2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부채는 49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가계부채가 1726조원, 국가채무가 847조원, 기업부채(대출·채권·정부융자 합산)가 2112조원에 달하고, 여기에 공공기관 부채 및 잠재부채인 연금충당부채를 합하면 500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 총액(1924조4529억원)의 2.56배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전문가들은 3대 경제주체의 부채관리에 실패하면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재정 및 기업·가계의 위기 등 총제적 파산 가능성이 있다며 부채 증가를 억제할 실질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요불급한 요소를 과감히 삭감하고 증세 등 근본적 재정확충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기업과 가계의 부채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부채 증가속도이다. 국가부채의 경우 2018년에만 해도 680조원에 머물렀지만 이후 매년 100조원 이상씩 급증하면서 올해 1000조원 돌파 가능성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2015년 40.78%에서 2025년엔 64.96%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총체적 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위기는 시간문제다. 전문가들은 실효적인 재정준칙을 만들어 즉시 적용하고, 정치권도 정부지출 억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계와 기업도 선제적인 부채 관리와 구조조정을 통해 금리인상 등 통화긴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AMRO "韓 '좀비기업'으로 인한 자산 건전성 악화 우려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해 “급격한 금리 상승 또는 자산 가격 조정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주택담보대출자와 주식 투자자의 재무 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AMRO는 아세안 10개 국과 한국·중국·일본 등 13개 회원국들의 경제 동향을 점검하고 지역금융안전망(CMIM) 운용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싱가포르에 설립된 국제기구다.
AMRO는 “글로벌 백신 프로그램의 지연 가능성, 미중 무역 갈등이 한국의 수출 회복을 지연시키고 높은 가계 부채가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팬데믹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장기적으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AMRO는 “저금리 환경에서 금융 불균형은 가계 부채 누적과 주택 가격 및 주가 급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면서 “풍부한 완충망에도 불구하고 부채 급증 및 기업 부문, 특히 좀비 기업의 재무 상태 약화를 고려하면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AMRO는 “정책 당국이 금융 안정을 위해 금융기관 여신 건전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저금리 환경으로 위험 추구 현상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 불균형 축적을 완화하기 위해 현행 거시 건전성 조치들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외 부문에서는 “비은행 금융기관, 특히 증권사의 외화 유동성 관리 강화를 위한 당국의 최근 조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AMRO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경제 회복을 지속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이 유지돼야 한다면서도 “좀 더 견고하고 포용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재정 조치는 피해 계층을 지원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확대되는 재정 적자 및 빠르게 증가하는 정부 부채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강한 의지(commitment)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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