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열전-김동욱 가톨릭의과대학교 교수
혈액내과 학과장 (서울성모병원 연구부장)
‘생명’에 대한 외경…필생의 인술로 백혈병에 맞서
만성백혈병의 권위자, “발병 원인 유전자 규명에 혼신의 노력”
최초로 비혈연 간 골수이식 성공, “1·2 세대 표적항암제 병합투약 허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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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교수는 천생 의사다. 만성백혈병의 국내 1인자라고 해서가 아니다. 그는 의사로서 도덕률을 자연인으로서의 윤리와 분리하지 않는다. “골수 기증과 같은, 의료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적 노력”을 사회 일반에게 당부하고, 의료공동체로서 ‘나눔’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건 자신의 첨단 의술보다 더욱 특효가 있다고 믿는다. 때론 부당한 의료생태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절박한 환자의 동앗줄 같은 1·2 세대 표적항암제 병합투약, 그것마저 금하는 건강보험의 몰지각을 지탄하고, 값비싼 치료약의 모순도 지적하곤 했다. 연초에는 ‘가톨릭의대인상’도 받았다. 이는 그냥 ‘상’(賞)이 아니다. 지난 30여 년 ‘인술’에 대한 갈채이며, 자신이 구한 숱한 생명들이 보내는 헹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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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오랜 세월, 백혈병을 둘러싼 각종 첨단 의술, 의과학의 장본인이다. ‘가톨릭의대인상’ 이전에도 이미 그간의 성취와 노력마다 여러 상을 받곤 했다.
서울성모병원은 백혈병 분야에선,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뒤지지 않는 규모와 의술, 의료진, 시스템을 자랑한다. 국내외의 절박한 백혈병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이곳 서울성모병원에 걸고 모여든다. 지금에 이르러 특히 만성백혈병에 있어선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에도 아랍에미레이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해외 환자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김 교수는 인턴 시절부터 그런 의료 환경을 체득하며 경륜을 쌓아왔다.
“어릴 때(인턴시절)부터 환자들을 통해 오로지 백혈병에 몰입했어요. 이 분야는 레지던트 시절 한 번 몸담으면 그저 이것만 전공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전공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죠.”
그러나 김 교수는 “전혀 아쉬울 것 없었고, 오히려 값진 의료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2년차 내과전공의 시절 평생의 스승을 만난다. 1983년 국내 최초로 골수 이식에 성공한 김춘추 교수다. 당시 김춘추 교수는 “이제 (내가) 막 부교수로 대학원 학생을 뽑을 수 있는 자격이 생겼는데, 자네를 첫 제자로 뽑아주겠다”며 그를 택했다. 그 후 김 교수가 백혈병 연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고, 평생의 사제관계로 이어져왔다.
“30여 년 간 오로지 백혈병 치료, 원인 규명 몰입”
“백혈병은 모든 연령에 생기는 질병이죠. 쉽게 말해 혈액 속에 생기는 암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소아암 중에선 가장 많은 암이기도 하고요. 이건 유전병도 아니고, 발병 원인도 아직 밝혀진게 없습니다.” 다만 방사능이나 인체 독성을 띤 유기용제 정도가 그 원인 중 하나로 짐작될 뿐이다. 원인을 뚜렷이 알지 못하니, 예방도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특히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대가다. 그는 “암세포로 변하면서 한 두 달 이내 증상이 금방 나타나는 급성과는 달리, 만성은 오래도록 증상이 없어 언제 발병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서서히 체중이 감소하고 피로감이 심해져서, 배에서 덩어리가 만져져서, 그리고 어린이들이 코피가 멎지 않거나, 여성들 생리가 멎지 않아 응급실로 달려와선 비로소 밝혀지곤 한다.
날로 치료법도 진화, 발달해왔다. 요즘은 골수이식, 제대혈이식, 글리벡과 같은 약물 치료 등 여러 방법들이 동원된다. 완치율도 높아졌다.
형제 간 이식이 좋긴 하나, 유전자가 맞는 가족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혈액 세포로 비혈연 간 이식을 시도한다. 유전자 특성과 치료 효과 등에서 형제 이식에 미치진 못하지만, 의학이 발달하면서 많이 쓰인다. 김 교수는 비혈연 간 이식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의사다.
“1995년도였죠. 스승이신 김춘추 교수 이후 12년 만에 다시 비혈연 간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의학계의 빅 이슈였죠. 저녁 9시 뉴스 톱으로 예고까지 되었어요. 하필 그날 터진 ‘삼풍백화점 사건’ 때문에 묻혀버렸지만…”
그 전까진 국내 의료계에선 형제이식 밖에 못했다. 그러나 당시 전임강사 2년차였던 김 교수가 비혈연 간 이식에 성공함으로써 백혈병 치료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제친 것이다. 실력있고 전도유망했던 그 시절. 백혈병 전문가로서 그의 존재감은 만만찮았다. 비록 1년 간이었지만, 한때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앉기도 했다. 가톨릭의대인으로 잔뼈를 키워온 그로선 ‘외도’라 할 만했다. 결국 모교로 다시 롤백하긴 했으나, 조건을 걸었다.
“평생 만성골수백혈병 하나만 몰두했으면 좋겠다. 그것만 연구하고 진료하도록 해달라”
대체로 성인들에게 많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환자가 아주 적은 편이다. 성인 백혈병 중에서도 전체의 15% 정도 밖에 안 된다. 흔히 환자가 많은 과목을 선호하는게 의료계의 풍토다. 그런 만큼 김 교수의 선택에 주위에선 다들 의아해했다.
“저는 레지던트 시절부터 실험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유전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낮엔 환자, 밤엔 실험에 몰두했습니다. 기초 생명과학 워크숍에도 적극 참가하며, 특히 백혈병 유전자를 새로 찾아내기로 마음을 먹었죠.”
“골수기증 활발해져야…백혈병 퇴치엔 사회적 노력 필요”
백혈병 치료는 골수 기증에 대한 인간적, 문화적 태도 역시 관건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백혈병의 병리적 현상 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함수에 눈을 돌렸다.
“이식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건, 의료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골수 기증을 활성화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의술에 앞서 사회적 노력과 동기 부여가 관건입니다.” 최근엔 우리나라도 골수 기증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선진국 수준엔 못미친다는 의견이다.
그는 한때 미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아예 그곳에 눌러앉으려 생각도 했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김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모교에 복귀하는 대신,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당시 선진국에 막 보급되기 시작한 암유전자 진단 기기다. 이는 암세포의 유전자를 정량적으로 검사함으로써 암세포의 개수나 상태를 정확하게 측정해낸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우리의 실험 연구실도 그때 생겼죠. 그 후 ‘실시간 정량적 중합효소연쇄반응 검사’ 등 초정밀의 최첨단 분석이 가능하게 됐어요. 임상연구를 위해 국내는 물론, 적어도 아시아권의 ‘피’는 이곳 임상실험실로 몰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대 혈액내과 학과장으로서 그는 솔선수범하며, 조직의 실험·연구 풍토를 늘 장려한다. 질병 유전자의 행태는 그 본질에 있어 동시대적 삶의 행태에서 연역된게 아닐까? 그런 합리적 의문도 품고 연구에 몰두한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인류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도 도입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만 2년 동안 약 300명의 국내 환자에게 무상으로 투약하며 효과를 보기도 했다. 약효가 좋아서 환자 가운데는 외래·통원치료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 병원만 해도 최근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가 무려 1,500명에 달한다. 질병이 확산되었다기보단, 생존율이 높아지니 환자수도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의료진 간에 오해와 갈등도 있었어요. ‘김동욱이가 이젠 약으로만 백혈병을 치료하려 한다’, ‘힘든 골수이식수술을 외면하고 편한 길로 가려 한다’. 뭐 그런 얘기죠. 특히 스승님의 시각이 그랬어요. 다 학문적으로 큰 변화가 새롭게 태동할 때 생기는 신.구 개념의 충돌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미 첨단 치료약은 시위를 떠난 화살같았다. 고도의 표적 항암제들이 등장했고, 2003년부터는 국산약 개발을 위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김 교수는 “무려 12년이나 공들여 개발한 약이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5~6월경엔 1차 치료제로 승인받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했다.
저렴한 약값 실현에도 한 몫, “제3세계에도 보급 필요”
측은지심이랄까. 김 교수는 비싼 약값과, 이로 인한 환자들의 고통에도 주목했다. 그리곤 약값 책정 과정에서 제약사를 설득해 값을 내리게 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글리벡을 포함한 2세대 표적항암제 한달치가 500만~1천만원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자부담율 5%를 적용, 한 달에 10만원 이내가 되어야 한다”는 김 교수의 고언이 받아들여져, 동일한 약이 국내에선 8~10만원에 보급된다. 5월경 국산 2세대 표적항암제가 개발되어 1차 치료제로 승인이 나면 값은 더 떨어질 추세다. 즉, 신약의 국산화를 통해 더 값싸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우리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선진의술과 의약을 다른 나라와 나누는 일에도 앞장 서고 있다. 지난 5년간 아시아권의 의료인들을 60명 가량 초청, 1~4주 코스의 백혈병에 관한 유전자 실험법 교육도 하고 있다. 아직 골수이식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에 국산약을 실비로 보급할 것도 주장한다.
김 교수는 또 “제약회사들도 박리다매로 아시아권의 인구 많은 국가에 대량 판매하면 좋지 않겠나”고 기대했다.
“약값이 싸게 되면 환자를 보고 연구하는 의사들한테도 유리해요. 한 가지 약만 쓰다가, 다른 약도 병합 투약함으로써 더 좋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다만 건강보험에선 이를 문제삼아 진료비를 환수하기도 합니다. 문제죠.” “왜냐하면 병합요법으로 초기에 강력하게 치료한 환자들은 암세포가 충분히 줄어서 평생을 써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표적항암제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재정을 절감할 수 있죠”
더 효과가 있어 보이는 약들을 섞어서 그 결과를 분석하고 싶고 논문도 쓰고 싶다. 병합효과에 대한 독보적 연구 결과도 축적하고 싶다. 하지만 의학자로서 그렇지 못한 현실이 그는 안타깝기만 하다.
김 교수의 이런 남다른 분별엔 표정없는 의술을 뛰어넘는, 사람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깃들어있다. 그래설까. 얼핏 인문과 사유의 분위기가 그에게선 풍긴다.
그의 대학 입학 시절 전자공학과가 최고의 인기였다. 그러나 ‘인술’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에 몸바쳐야겠다는 소박한 신념을 잊지 않았다. 의대에 진학, 의사가 되었고 단말마의 고통에 찌든 백혈병 환자들을 숱하게 살려내었다.
“환자는 가족…” 산악회, 퀴즈대회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
그는 두 말할 것 없는 ‘명의’이지만, 그보단 사람 살리는 ‘명인’이 되는 걸 더 좋아한다. 음울하게 ‘인간’을 위협하는 숙적 백혈병, 그 정체를 밝혀내는 일에 그는 평생을 바치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그 병인(病因)인 유전자를 찾는 일에 몰두, 그 정체를 알아내 무장 해제를 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다행히 “곧 그 결과가 밝혀져 공개될 때가 멀지 않았다”고 귀띔한다.
비록 질병으로 인한 인연이지만, 김 교수에게 환자는 또 다른 가족이다. 그래서 걱정도 많다. 비혈연 간 골수이식에만 의존하던 시절과는 달리 약물 치료가 보편화된 요즘의 임상 풍속도가 문제라면 문제다.
“의사가 당부를 해도 집에 가선 약을 제대로 안 먹는 경우가 있어요. 항암제의 특성상 때론 얼굴이 붓거나, 창백해지는 등 부작용도 있기 마련인데, 그걸 꺼리는 거죠. 그래서 약 먹는걸 건너뛰고….” 그러다 상태가 나빠져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교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약은 처방대로 꼭 챙겨먹어야 한다”며 “의사가 일일이 챙기고 감독하던 때와 달라진 ‘부작용’”이라고 경계했다.
가족이나 걱정할 법한, 생활 태도에 대한 이런저런 훈수도 많이 한다. 아예 밀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0년 전엔 의사와 환자들이 함께 하는 산악회도 만들어졌다. 지역별로 7개 지부를 두고, 매월 한 차례씩 가족동반 산행이 이어진다. 전국 단위의 산악회 행사도 매년 5월에 1박 2일 캠프로 열리고, 매년 9월 22일에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날' 행사를 진행한다. 이때 백혈병을 소재로 한 퀴즈대회도 곁들인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참여하는 ‘1대 100 퀴즈대회’는 그 전문지식의 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웃음과 재미를 곁들인 학술대회라고 해야 옳다. 또 90분짜리 교육용 다큐나 연구자료 등 다양한 시청각 재료도 마련했다.
“그럴 때면 가운을 벗은 ‘가족’이죠. 편하게 둘러앉아 상담하고 조언합니다. 그런 자리가 외려 환자들에겐 더욱 큰 치유력을 발휘하고, 완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죠.”
김 교수는 “백혈병은 완치가 가능하니까 결코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한다.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환자 개인의 노력입니다. 제때 정량의 약을 챙겨먹고, 평소 생활태도와 건강관리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내를 갖고 의사와 병원과 함께 손을 맞잡고 싸우면 백혈병은 꼭 물리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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