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명인 도성청자도요 김영수 대표
온 힘을 기울일 기력이 있을 때 인생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국화, 무궁화 등의 무늬를 넣은 투각기법으로 30년 넘게 빚어온 도자기
2014년 경기도 도자기명장에 선정된 이천 도성청자도요의 김영수 도예가는 전통 가마에 불 때는 일부터 시작한, 전형적인 도제 생활을 통해 몸에 도자기 빚는 법을 각인한 사람이다. 78년에 도예에 입문했으니 36년을 도자기와 얼굴을 마주대해 왔다. 그가 장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공예적 재능은 투각기법이다. 김영수 도자전에 출품된 그의 무궁화 도자기들은 청자색과 무궁화의 붉은 꽃술이 어우러져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다. 투각으로 파여진 꽃들 사이의 틈으로 미풍이 불어오는 듯도 했다.
흙 고르기, 불 때기부터 시작한 도제 생활
김영수 명인은 도예가로서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바탕을 전통 가마에 불 때는 과정을 익힌 것에서 찾는다. 그만큼 탄탄한 기본을 체득하면서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는 자부심이다.
“흙 고르는 법부터 전통 가마 불 때는 과정을 다 아는 것이 저의 힘입니다. 입문하자마자. 영광으로 산청으로 좋은 점토를 찾으러 수도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바위가 부서지고 썩어서 모래가 된 모래가 최고로 좋은데, 점토에다가 이 사토와 카오링을 넣고 반죽하면 비로소 도자기를 빚을 흙이 만들어 집니다. 한번 가마에 불을 때면 이틀 동안 꼬박 매달리는데 끝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서 한꺼번에 체중이 5~10kg씩 빠지곤 했어요.”
김영수 명인이 처음 도자기에 입문했던 ‘세창도요연구소’는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 1호인 김세룡 명장이 운영하는 도요로 바로 김 명인의 형님이다. 김명인은 그래서 더 엄격하고 고된 도제 생활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은 것을 변화시켜 놓듯 도자기 굽는 방식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80년 때 초 일본에서 바이어가 왔어요. 카탈로그로 보여 주는데 당시로서는 아주 새로운 가스로 굽는 도요였습니다. 가격이 비싸서 우선 작은 것을 들여왔지요. 그 뒤론 가마 때는 일을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전통 가마 불 때는 과정을 다 안다는 것은 저에겐 큰 자산이지요. 요즘 학교에서 도예를 배우는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는 비법이지요.”
물론 가스 가마도 처음에는 다루는 방식이나 도자기에 적합한 불의 세기나 양 조절이 쉽지 않아 몇 번 실패를 거듭했다. 그런 연후에야 제대로 가스 가마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전통 가마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불을 넣는데, 한 도요에서 나오는 도자기만으로는 공간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도요와 함께 공동으로 불을 땐다고 한다. 이제는 흙을 반죽한 후 남은 흙물을 짜는 필터프레스 라는 기계도 발명돼 있어 도자기 탄생을 위한 육체적인 노동은 좀 덜한 편이다.
기물을 두 번 만들어야 하는
투각 기법
'청자이중투각국화문매병', '청자이중투각국화문 주병', '청자이중투각국화문 편호'. 모두 김영수 명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김영수 명인은 형님 밑에서 물레성형과 이중투각기법을 익혔다. ‘이중투각’기법은 말 그대로 빚어진 도자기 표면을 뚫어 파서 모양을 내는 방법이다. 고도의 기술과 시간과 집중력과 노동을 훨씬 많이 요구한다.
“손이 무척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기물 하나를 만들고 또 속 기물을 만들어야 해요. 따로 만들어 서로의 간격을 2센티 정도 띄워 붙입니다. 손질이 잘 안되면 유약이 잘 안 붙어 실패 확률도 높지요. 그래서 다른 소품들은 제자들에게 일부 권한을 주지만 투각기법으로 빚은 도자기는 제가 직접 모든 과정을 일괄합니다. 작업시간도 1년이 넘게 걸려요. 큰 작품의 경우에는 건조시키는 데만 6개월씩 걸립니다.”
이천 등지에 있는 도요에서 투각기법을 하는 곳은 예전에 두 세군데 있었지만 이제는 김영수 명인이 운영하는 도성청자도요가 가장 많은 투각을 내놓고 있다. 도자기 재료인 흙이나 유약도 직접 배합한다. 일단 도자기를 빚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투각은 가마 안에 넣고서 가스압이나 불 조절, 공기 조절 등 더 신경 써야 할 게 많기 때문에 큰 작품의 경우 가마에 넣은 도자기 중 20%정도 만족한 것을 얻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투각기법은 외국인에게도 큰 매력을 준다. 김영수 명인의 투각기법 작품들은 문광부에서 운영하는 매장인 인사동의 한국관광명품관에 전시돼 있다. 작년에 독일 영사관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이 김 명인의 만든 무궁화투각이 새겨진 매주병 세트를 너무 맘에 들어 해서 고가이고 진열품이라 주문해야 한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와서 진열품을 구매해 갔다고 한다.
23년 도제 생활 후 시작한 단독도요
김영수 명인은 김세룡 명장 밑에서 23 년간 도제 생활을 했다. 2000년에야 비로소 독립해서 자신만의 단독도요를 차렸다. 오랜 단련기간을 거쳤음에도 처음에는 많은 시련을 가졌다.
“형님의 도요에서 나와 홀로 시작하면서 3년 정도는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만들어서 구으면 망가져 버리기 일쑤여서 실패를 거듭했지요. 그동안의 저축도 다 쏟아 부어 가산이 기울 정도였지요. 1년 정도는 포기하고 방황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다른 방법으로 재기를 하려고 시도했는데 다른 일들은 모두 낯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다시 가마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가장 잘하고 쉬운 일도 도자기고 가장 어려운 일도 도자기라는 걸 깨달았지요.”
워낙 도자기 굽는 일이 수십 년 동안 체화되어 있어 2,3년을 쉬었어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김영수 명인은 항상 감사하면서 도자기를 만든다. 공모전이나 전시회를 통해 인정도 받았다. 대회에 나가 많은 상들을 받아도 항상 담담했지만, 2008년 한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경기도 대상을 받았을 때는 색다른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평소 상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도 수상 소감을 전해 듣는 순간 처음으로 가슴이 설레었는데, 그 순간에 느낀 것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후배
전통 도제 생활을 경험한 김명수 명인에게는 요즘도자기를 굽는 후배들에게 아쉬운 점이 많다.
“지금 학교에서 도자기를 배운 친구들은 참 작업하기가 쉽지요. 흙도 사다가하고 가마를 때는 것도 아니니까요.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학교에서 몇 년 내에 이론과 실기를 겸해 집중적으로 배워서, 물레는 차지만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통은 뒷전인 채 트렌드만 쫒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애착심도 옅은 것 같아요. 전통을 배우고 소중히 하면서 새로운 감각을 연마해야 하는데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김영수 명인의 주변에는 40대 후배들 이후에는 젊은 세대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역시 제일 무서운 것 또한 후배라고 한다. 김 명장의 아들과 며느리도 도예를 전공했다.
“선배들도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후배들은 좋은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어요. 전통기반은 없지만 현대적인 감각들이 있지요.”
명인 칭호를 받았지만 김영수 명인은 새로운 야망이 있다. 이제까지 안 해본 것, 새로운 기법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줘도 손색없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의 작품을 만들어 놓고 싶은 바람이다. 머리속에서는 이미 디자인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잠자는 대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고 한다.
“나이가 더 들어 체력이 소모되기 전에 남기고 싶다는 은근한 바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제 도자기 인생의 정점을 모두 합일해 놓은 것 같은 작품이길 바라지요.”
그는 도제생활을 끝내고 독립해 처음 빚은 매주병에 가장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도자기 인생을 완성시키는 작품은 감상자 모두의 마음에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전혀 새로운 기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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