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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5:5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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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김정곤 대표 - (주)금강유리

경험에서 나온 경륜은 최고의 명문대학 수업료 보다 비싼 자산

김정곤 대표 - (주)금강유리

(주)금강유리 김정곤 대표

(사)중소기업융합전북 회장

수많은 부침 겪으며 생긴 경영 내공으로 다져진 유리업계 강소기업

경험에서 나온 경륜은 최고의 명문대학 수업료 보다 비싼 자산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써온 관행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여전히 언제든 위기를 감수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세상의 교훈 중에는, 혼자 일을 도모해서 힘들기 보다는 서로 보족할 수 있는 개체들이 군집을 이루면 훨씬 성과가 좋다는 많은 예시를 보여준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보다는 업종 간 통로를 만들어 개별적으로 습득하기에는 비용지불이 많은 정보나 방법들을 교환하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종 간’에 있어왔고, 최근 화두인 ‘융합’이란 이름으로 대체하면서 새로운 의지를 다지고 있다. 20여 년의 세월을 꾸려온 (주)중소기업융합전북회는 신임 회장을 맞았다. (주)금강유리의 CEO인 김정곤 회장은 26년 동안 중소기업을 경영해왔다.

302개 업체 전북 소재 중소기업들의 융합 지향

중소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가진 강소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은 이제 암묵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자금과 인력의 한계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콜라보’니 ‘하이브리드’니 하는 개념이 사회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 개척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최근의 경향에서‘융합’이라는 또 하나의 개념이 창의의 상위개념으로 이미 대두됐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법률·회계·세무 등 훌륭한 지원세력이 가세한 (사)중소기업융합전북연합회 역시‘융합으로 강소기업, 융합으로 전북발전’을 모토화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11대 회장으로 취임한 (주)금강유리 대표인 김정곤 회장 역시‘(사)중소기업융합전북연합회가 활발한 교류를 바탕으로 융합플랫폼을 구성했다’고 취임사에서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2년 임기동안 실현할 목표 세 가지 중 회원사 간의‘기술융합 실현’을 처음으로 꼽았다.

(주)금강유리의 경영자로서 26년을 달려온 김정곤 회장은 누구보다 중소기업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중소기업 간의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소통과 신뢰가 얼마나 많은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기꺼이 그의 취임에 기대감을 갖는다.

전국 규모 진출, 메이저급 회사에 KCC유리 공급

(주)금강유리의 본사 소재지는 전주다. 하지만 서울에 교두보를 두고 전국 단의로 KCC유리를 공급한다. 삼성, 대우, 현대 등의 대기업 건설업체에도 납품한다. 전북 도내에서는 단연 선두를 지키고 있고 수도권 영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튼실한 회사다.

“일을 오래 하다보면 숙련이 된 기술자가 되듯이 경영도 노하우가 쌓이면서 생산성이나 품질이 좋아지면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을 가지는 거지요. 저희는 메이저 건설사의 협력업체로 안정적인 공급처를 가지고 있으니 판매대금 회수율이 높고 리스크는 적은 편입니다. 마진율은 적지만 회사를 안전하게 유지해 나가는 장점이 있지요.”

(주)금강유리는 가공에서 유통, 납품까지 세 종류의 영업 루트를 가지고 있다. 먼저 국내 유리 원자재로 가공생산을 한다. 열효율을 높이고 방음 효과가 있는 복층유리나 강화 유리 등의 일반 유리에 비해 많은 기능성을 가진 유리들을 생산한다. 이 유리들은 전국의 건설현장을 통해 일반가정에도 보급된다. 앞에서 전술했듯이 국내 대형건설사에 납품되는 것이다.

(주)금강유리는 원자재를 국내 유리원자재 공급업체 두 곳 중 한 곳인 KCC로부터 공급받는다. 우리나라에 유리가공 공장은 다수가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에 진입해 메이저 회사를 상대로 공급하는 KCC 유리업체로는 국내 2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정곤 회장이 경제규모가 전국의 3% 정도 밖에 안 되는 전주지역에서 현재의 탄탄한 기반을 가진 금강유리로 키워낸 세월에는 역시 여러 번의 힘든 고비를 넘겨야 했다.

“대기업이 성과잔치 할 때 중소기업은 뒤에서 눈물바람 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있잖아요.

대기업 중심의 정부정책에서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경쟁할 수가 없어요. 저희 같은 유리가공 분야는 건설현장마다 사이즈가 달라서 소규모로 개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대량생산 위주의 대기업에서는 관심을 안두니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도 대기업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납품업체들끼리 경쟁을 시켜서 거래처를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권력이 있으니 26년 동안 회사를 운영했어도 직원들 월급주고 밥 먹고 살 정도의 형편 밖에 안 됩니다.”

열정과 성실로 버텨온 경영

(주)금강유리의 김정곤 회장은 1984년에 유리 소매업을 하며 처음 업계에 진출했다. 5년 뒤에는 대리점으로 확장했고,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진 김정곤 회장은 2004년 당시 큰 자금이었던 50억 원을 들여 사옥을 새로 짓고 공장도 확장했다. 유리가공과 가공된 유리로 건설현장에서 시공을 맡았다.

2,500여 평에 이르는 대단위 부지에 세워진 1,300여 평 규모에 세워진 생산라인에서 기능성 유리인 복층유리, 애칭유리, 곡유리 등을 생산해냈다. 전국의 소규모 건물부터 대형 아파트, 관공서, 학교 등 대형공사까지 금강유리는 서서히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자동복층유리 생산라인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어주었기 때문에 (주)금강유리에 한층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당시 매년 10%의 성장을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설이 된 IMF는 역시 김정곤 회장에게도 고난의 시절이었다. 부도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동안 쌓아올린 작은 성취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매일 뉴스에서 도산하는 회사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온 촉수가 일어서는 것 같은 애타는 마음으로 매일 부도를 막으려 뛰어 다녔다.

그런데 다행히 은행권에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넸다. 그동안 무리한 투자나 지나친 규모 확장없이 성실하게 자본을 축적해 온 결과로 당시 위험했던 다른 기업들에 비해 부채비율이 적어 재기의 믿음을 준 것이다. 그렇다고 위기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그후에도 그는 몇 번의 부도 위기에 직면하는 긴장된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김 회장에게는 성실한 가치관이 있었다.

“부도를 맞으면 엄청나게 힘은 들지만 좋은 경험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부도가 날 때마다 중요한 것 하나씩을 배웁니다. 대신 경험에서 나오는 수업료는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 수업료 보다 훨씬 비싸지요. 몇 십억에 이르니까요. 그리고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강의에서 얻은 지식은 잊어버릴 수 있지만 부도에서 얻은 경험은 잊어버려 지지가 않아요. 기업을 경영하는 동안 큰 자산으로 작용하지요.”

부도 자체가 주는 역설적인 이득이 있지만, 위기를 헤쳐 나오는 데는 무엇보다 김정곤 회장 자신의 건전한 사유 정신이 있었다. 그는‘그때마다 손실을 가슴아파하면 화병이 생길 뿐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은 빨리 포기해야 한다. 지나간 것을 안타까워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오히려 내일을 위한 걱정을 해야지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서 담담해 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진출, 수도권

김정곤 회장이 인생을 살아내면서 세운 가치관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현재를 충만하게 채웠을 때만이 다음 단계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논리다. 그것은 비단 사업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계획이든, 직장인이든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2004년 공장 규모를 넓힌 다음에 그에게 주어진 일은 다시 일보 전진이었다. 김정곤 회장은 2006년 서울에 (주)금강유리의 지사사무소를 열었다.

“공장을 확장하고 나니 기존에 하던 도내 공급만으로는 가동률이 떨어졌어요. 그럼 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게 돼요. 가동률이 떨어진다고 직원들 월급을 적게 줄 수는 없잖습니까. 방법은 공급 시장을 넓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서울에의 진출을 결단했습니다. 처음에 영업을 하기 위해 엄청나게 서울을 다녔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거래선이 확보되고 안정화 되어서 직원들에게 일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금강유리는 전주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납품은 서울에서 전국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강릉, 충주, 대구, 구미, 경산, 광주, 제주 등 거의 모든 도시에서 금강유리 제품과 만날 수 있다.

중소기업이 26년을 이어온 역사에는 수많은 부침이 있을 것이다. 부침을 이겨낸 김정곤 회장의 힘은 익히 건전한 성실성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금강유리를 유지해 올 수 있던 힘은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도 구성원의 결합과 호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식 터득보다는 경륜이 중요하다

(주)금강유리의 신용은 오랜 시간에 걸친 경륜이라고 김정곤 회장은 자신있게 말한다. 그만큼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사람이나 회사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고비가 오면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도 때론 회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수도 없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유지해 줬습니다. 힘든 상황에 처해도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하면서 믿어주고 일도 더 주고 하는 거지요. 보통은 회사가 어려우면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서 거래를 안 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평소에 신뢰를 쌓으면 다소 어렵더라도 기다리고 믿어 줍니다.”

김정곤 회장은 어떤 집단의 구성원이 되든, 뭘 하든 모범적으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희망도 버리지 않는 낙천성을 가지려고 한다.

(사)중소기업융합전북협회 회장으로서, (주)금강유리의 CEO로서 김정곤 회장은 어느때 보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지식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경륜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로터리클럽, 카네기리더십, 라이온스 클럽 등을 통해 봉사활동을 해온 김정곤 회장은 융합을 통한 전북지역 중소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외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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