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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6: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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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남선염업(주) - 신종만 대표

남선염업(주) 신종만 대표 간수 없앤 단맛 나는 곰소소금, 소금 맛의 비결 40년 유지 1년 100만 명 찾는 곰소염전, 일본과 미국인이 찾는 곰소소금 흔하고 보잘 것 없어서 평소에는 무심하지만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소금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소금에 대한 예찬은 동서고금 많은 격언과 경구를 통해 전해진다. 그런데 그런 절대적 필요성을 가진 소금에도 등급과 차이가 있다. 소금에도 거두는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나 물품들은 최상의 상태로 이용될 수 있도록 언제나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왔다. 곰소염전의 소금들은 아마도 소금에서의 최상급이 아닐까 한다. 봄과 때를 같이 해 피어나는 소금꽃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겨울바다를 이야기한다. 바람 차고 스산한 바다에서 치고 올라오는 파도의 음향에 매료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겨울의 냉혹함에 움츠렸던 만물이 조금씩 생명을 소생시키며 세상의 온 대기에 약동을 불러오는 봄

남선염업(주) - 신종만 대표

남선염업(주) 신종만 대표

간수 없앤 단맛 나는 곰소소금, 소금 맛의 비결 40년 유지

1년 100만 명 찾는 곰소염전, 일본과 미국인이 찾는 곰소소금

흔하고 보잘 것 없어서 평소에는 무심하지만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소금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소금에 대한 예찬은 동서고금 많은 격언과 경구를 통해 전해진다. 그런데 그런 절대적 필요성을 가진 소금에도 등급과 차이가 있다. 소금에도 거두는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나 물품들은 최상의 상태로 이용될 수 있도록 언제나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왔다. 곰소염전의 소금들은 아마도 소금에서의 최상급이 아닐까 한다.

봄과 때를 같이 해 피어나는 소금꽃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겨울바다를 이야기한다. 바람 차고 스산한 바다에서 치고 올라오는 파도의 음향에 매료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겨울의 냉혹함에 움츠렸던 만물이 조금씩 생명을 소생시키며 세상의 온 대기에 약동을 불러오는 봄 바다도 그에 못지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처럼 곰소의 소금도 비로소 봄에 출현을 알린다.

“3, 4월에서 10월 사이가 소금을 거두는 가장 적기입니다. 햇빛이 적당한 기온을 만들어 줘서 바닷물이 증발해야 소금들이 비로소 짠 맛을 냅니다. 5,6월이 가장 좋지요.”

남선염업(주) 신중만 대표는 곰소에서 염전을 운영한다. 그는 아직 싸늘한 겨울 바다에서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오를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과 소금은 같이 온다. 그리고 봄에는 아침 해가 올라오기 전에 소금을 일찍 걷어 놓아야 중천에 오른 햇빛이 또 다른 소금을 염전바닥에 보내준다.

그렇다고 해서 겨울의 소금이 불모인 것은 아니다. 곰소소금은 염전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곰소소금은 짜지 않고 맛이 달아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2배나 3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소금의 명품입니다. 가장 맛있는 염도는 25~29%의 염도를 가진 소금인데 그래서 저희들은 항상 비중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염도를 체크합니다.”

바닷물이 염전에 들어와 흰 소금꽃인 천일염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약 20일 정도가 걸린다. 바닷물이 몇 단계의 증발지를 거쳐 소금이 결정 작용을 하는 결정지까지가 15일 정도, 그리고 결정지에서 3~5일을 지나면 흰꽃 같은 소금 결정이 생긴다.

특히 5월 중순 열흘간을 이용해 반짝 생산되는 송홧가루 소금은 곰소소금 꽃 중의 꽃이다. 변산에서 곰소 쪽으로 날라 오는 송홧가루가 소금에 내려앉아 누런빛을 띠게 된다. 송홧가루소금은 동의보감에서 그 효능이 소개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수랏상에 올리던 귀중한 재료였다.

간수를 뺀 소금 맛의 비결 40년 가까이 유지해 와

곰소소금이 짜기만 한 맛이 아닌 은근한 단맛을 내는 비결은 ‘간수를 제거’하는 데 있다. 간수는 습기가 찬 소금에서 저절로 녹아 흐르는 물이다. 그리고 소금에는 어느 정도의 불소, 비소, 마그네슘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 곰소소금 생산지에서는 한 달에 네 번 정도 이런 성분들을 없애기 위해 간수를 뽑아서 바다에 버린다. 이것이 곰소소금 단맛의 단순한 비기(秘機)이다.

“저희 남선염업은 이 간수빼기 작업을 40년 넘게 지켜 왔습니다. 간수 제거 초창기에는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200L짜리 6~7천 개의 간수통을 실어 인천제철에 보냈어요. 간수를 가열하면 염화칼슘이나 마그네슘 등의 고체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용광로에 쓰이는 내와벽돌을 만드는데 요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이것을 옮기는 물류비가 더 비싸고 순도가 떨어지기도 해서 우리는 바다로 그냥 다시 버리고 제철소에서는 직접 더 저렴한 고체형태의 외국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선염업의 간수빼기 작업은 염전 설립자이기도 한 신종만 대표의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오고 있다. 간수를 빼는 곳은 곰소염전 밖에는 없다. 다른 염전에서는 간수를 바닷물과 섞어 계속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드는 과정이 달라 설령 다른 곳에서 곰소염전의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50%정도의 수확량 밖에는 생산하지 못한다.

일본과 미국에서 발견하는 곰소소금

곰소염전은 마트에는 출시하지 않고 직거래 방식으로 유통된다. 청담동에 본사를 둔 한식집 ‘처가방’은 곰소 염전의 소금만 가져다 쓴다. 일본에는 'SAIKABO'란 이름으로 동경에만 21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식당이다. 이 처가방에서는 10년째 곰소소금만 사용하고 있다. 곰소에서 1년에 200kg짜리 1,000 포대를 가져다 음식뿐만 아니라 300g과 500g 소포장으로 나누어 판매도 한다. 이 식당의 경영자는 자신의 식품업 성공이 곰소소금 덕분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자랑한다.

“제가 아는 지인이 미국 시카고엘 가서 모 한식당엘 들렸는데 식탁 위에 ‘자기들은 대한민국의 곰소염전에서 나오는 소금만 사용한다’고 써붙였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이어를 통해 저희 곰소소금이 거기까지 가 있는 거지요. 여기 곰소에는 100여개의 상점이 운집해 있는 젓갈 전이 있는데 그 곳에 저희 소금을 대량 제공하고 있습니다.”

곰소염전은 염부 한사람 씩 모두가 기업가이기도 하다. 천일염을 수확해서 나온 이익을 염전에서 직접 일하는 염부들과 회사가 수익을 반반으로 나눈다. 그래서 염전 소유주는 도시나 먼 거리에 있고 염부들이 염전을 관리하는 다른 염전방식 보다 훨씬 소금의 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소금의 질이 수익을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가업으로 이어지는 곰소염전

남선염업(주)는 신종만 대표의 할아버지(故 신원섭)가 설립한 염전이다. 그는 설립 초창기 염전학을 전공한 사람을 회사에 픽업해 소금맛의 비결을 창조해 낸 사람이다.

신 대표의 할아버지는 또 염전 운영과 함께 현재의 부안여중·여고를 세운 설립자이기도 하다. 염전과 학원은 할아버지 대부터, 아버지(故 신동근), 신종만 대표를 거쳐 아들인 신정우 씨에게까지 4대째 가업으로 내려오고 있다. 신종만 대표는 건국대학교 축산과를 다니며 아버지를 도와 염전 경영을 시작했다. 염전이 한창 바쁠 때는 시험을 볼 수가 없어 따로 교수 연구실에 가서 시험을 치기도 했다.

신종만 대표는 작년 4월 납세의 날에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견실하게 납세를 했다는 것은 남선염업이 그만큼 튼튼한 구조를 가진 염전이란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신종만 대표에게도 시대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경영 고민이 생겼다.

“요즘 염전을 경영하면서 느낀 것은, 염전에서 일을 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라는 겁니다. 염전도 생산품인 만큼 유통이나 판매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시장에 알려지고 경쟁력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물품을 생산해도 들어간 수고만큼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현재 남선염업은 신종만 대표의 아들인 신정우 씨에 의해‘곰소천일염식품’이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 신정우 씨는 CE에서 유통과 경영컨설팅 분야를 다루었던 경험이 풍부한 재원이라고 신종만 대표의 자랑이 대단하다.

신종만 대표는 직접 헬리곱터를 타고 고공에서 곰소염전을 촬영한 적이 있다. 전체 30만 평의 곰소염전은 하늘에서 보면 광활한 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현재 가동면적은 15만 평이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독려해도 1년에 20kg 짜리 10만 개 생산이 고작입니다. 이전에는 20만 개 정도를 생산했었으니까요. 더구나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부터 부쩍 염전이 어렵습니다. 인건비를 맞추기도 힘들어집니다.”

곰소염전은 1년에 견학생과 관광객을 포함해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다. 근처에 변산반도국립공원이 있어 시너지 효과도 있다. 그런데도 경영의 어려움이 생긴다.

남선염업의 일하는 직원도 55명에서 30명으로 줄었다. 더 이전에는 100명이 넘는 종사자들이 있던 염전이었다.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더 큰 규모의 염전이었다. 규모가 줄어든 데에는 인건비 대비 출고비를 올려야 하는 형편에도 있다. 최소한의 이익을 내려면 출고 가격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곰소염전의 어려움은 우리나라 전체 염전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중국산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 개선해야

어느 산업 분야나 이제는 중국산 물량공세나 저가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소금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

"요즘은 중국산도 품질이 좋아져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소금은 가능성이 없어집니다. 영농조합 총회에 나가면 제가 누누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소금으로 알려진 신안천일염 마크를 붙여서 시장에 나가면 소비자들은 한두 번은 사먹겠지만 중국소금과 다를 게 없으면 나중에는 굳이 사먹지 않을 겁니다. 혹은 중국소금 가져다가 국산으로 팔아먹는다고 욕할 수도 있고요.“

신종만 대표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많은 염전들이 하나의 공동브랜드로 소금을 출시하고 있다. 가령 신안염전에는 882개의 개별 염전이 있는데 이를 신안 천일염이라는 상표로 공동브랜드화 한 것이다. 신종만 대표에 따르면 이렇게 되면 개별 염부나 염전 주인들은 굳이 힘들여 좋은 품질의 소금을 생산할 노력을 가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모두 같은 상표로 출시되어 구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전체 소금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종만 대표의 우려다.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마크를 붙여 자신이 생산한 소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대안이다.

신종만 대표는 곰소염전에 촬영해 대한민국 기업사진 콘테스트에 출품하기도 하고 염전 사진을 전시도 했었다. 그때 그가 찍었던 넓고 광대한 염전이 다시 돌아와 예전의 기세를 회복할 수 있도록 염전업계 전체에 새로운 고민이 필요할 때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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