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것도 서러운데 ‘매’가 웬말?”
우리 사회의 ‘노인학대 잔혹사’
장수시대, 노인들이 위태롭다
노인을 공경하는 풍습은 우리의 고유한 ‘미풍양속’이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고령화에 얽힌 다양한 부작용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노인들에 대한 인식은 시나브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구조화 되는 과정에서 빚어질 사회적 현상과 이로 인한 위기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등장한, 노인과 관련한 또 하나의 심각한 사회문제는 바로 ‘노인학대’ 문제. 우리나라 노인 8명 중 한 명꼴로 상습적인 ‘학대’를 당하는 우리 현실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노인들은 슬프고 고달프기만 하다.
이미 땅에 떨어진 ‘효행의 나라’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나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 한 대목이다. 무거운 짐을 진 노인에 대한 애달픈 감정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시가다. 그러나 2013년 이 시조가 부르짖었던 경로사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는 어려운 게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현상으로 노동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이어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고령화 시대의 터널에 진입했지만 노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간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사는 손정수 씨(가명, 70세)는 10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장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인 장남 손인철 씨(가명, 43세)는 평소 말수가 적고 온순하다가도 술만 먹으면 난폭해져 손정수 씨가 보는 앞에서 며느리를 구타하고 집안 살림을 부수는 등 주취 폭력을 일삼고 있다.
가끔씩 아버지에게까지 심한 욕설을 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가한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술에 잔뜩 취해 손찌검까지 하기도 했다. 점점 난폭해지는 아들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려는 생각까지 했지만 포기했다. 부끄러운 집안일을 남에게 드러낸다는 것이 수치스러울 뿐 아니라 그나마 아들과의 관계가 아주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손 씨는 현재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시설 쪽을 가족들 모르게 알아보고 있다.
경기도 포천에서 며느리와 함께 사는 임안권 씨(가명, 68세)는 두 달 전 며느리 이 모 씨의 구타와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가출했다. 아들은 5년 전 실직 후 집을 나가 며느리와 손자 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식당일로 가계를 이어 오던 며느리는 어느 순간부터 시아버지인 임 씨에게 폭력을 일삼기 시작했다. 달리 갈 곳이 없어 포천버스정류장 앞에서 노숙을 하다 시설 관계자에게 발견돼 시설에 입소 예정인 임 씨는 서울과 안양에 동생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도 형편이 좋지 않고 무엇보다 부끄러움 때문에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며 쓸쓸히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학대’는 매년 20%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서울지역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060건으로 이 수치는 2009년 669건, 2010년 863건 등에 비교해 매년 26%가량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신고 되지 않은 노인학대 건수가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전국 만 65세 이상 노인 1만 1,5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1년 노인실태조사’에서 ‘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2.7%였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우리나라 노인 8명 가운데 최소한 1명 이상이 일상적인 노인학대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치명적인 ‘가족’에 의한 학대
노인학대는 크게 ‘신체적, 물리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 등 두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신체적 학대는 말 그대로 신체에 위력을 가하는 행위로 폭행, 가혹행위 등 육체적 손상과 고통, 장애를 유발하게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학대의 유형이다. 신체적 학대는 때리는 행위 이외에도 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지하실이나 골방에 가두는 행위나 의자, 침대 등에 묶어두는 행위,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주지 않거나, 처방받지 않은 약을 강제로 먹이는 행위들도 포함된다.
정서적 학대는 비난이나 모욕, 위협 등의 언어적, 비언어적 학대를 통칭하며 노인들에게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주는 행위를 이른다. 노인들의 사회활동이나 종교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집안의 의사결정과정에서 고의로 소외시키는 경우도 정서적 학대에 포함된다. 여기에 소수를 차지하는 성적학대와 금품을 착취하는 재정적 학대, 방임 등도 노인학대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노인학대’의 대부분이 자녀들을 비롯한 가족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자녀들의 학대에 대해 가해자는 물론 피해노인 대부분이 ‘학대’를 ‘가족문제’로 인식해 관계기관이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히 신고율이 크게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최근까지 우리 사회가 노인학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던 현실의 본질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위의 손정수 씨처럼 자녀들을 포함, 가족에 의한 폭력과 학대에 대해 대응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는 ‘노인학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가족에 의한 학대가 아니라 해도 대체적으로 학대를 경험한 노인들의 대부분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서 인용한 보건복지부의 ‘2011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학대를 경험할 때 전체 노인들의 65.7%가 학대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보이거나 도움을 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또 피하거나 미시적인 저항을 하는 ‘소극적 대응’도 27.6%에 달해 90% 이상이 학대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 이웃에 도움을 요청(4.0%)하거나 전문기관 혹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2.5%)한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노인들이 학대에 대해 ‘무대응’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로 ‘개인적인 일일뿐’이라는 생각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도움을 요청해도 학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와 ‘학대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그 뒤를 잇는다. 가해자는 물론 피해노인 역시 ‘폭력범죄’의 일종인 ‘노인학대’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현실을 오롯이 보여주는 예이다.
노인 보호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
노인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본질적 원인은 바로 고령화 사회에서 날로 커지는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든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들의 경제력 약화와 건강악화로 인한 고비용 지출의 문제, 현대사회의 여러 지식기술을 보유하지 못해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의 문제 등에 부딪치며 자녀들과 불화를 겪고 급기야 노인학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이와 같은 상황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얼마 전 한 방송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2045년이 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연령이 50세로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라고 조사됐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노인학대’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과 더불어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노인학대’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좀먹는, 작지 않은 ‘폐해’가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현행 ‘노인복지법’은 노인학대가 발생할 경우 긴급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긴급전화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 정부는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지역 간 연계체계 구축과 중앙노인전문기관을 설치, 운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학대가 발생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가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노인학대 지킴단’을 운영하며 학대받는 노인들의 가정을 방문하거나 노인학대 신고 및 상담센터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인학대를 줄이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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