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대 정훈 교수’의 인생역전 1막 2장
한국 유도계의 대부 용인대 정훈 교수는 탁월한 리더십과 유도기술로 후진을 양성하는데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과거 거듭된 국제대회 출전과 메달을 획득한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되살려 후진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국제적 감각을 살려주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올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일깨워 김재범과 송대남 선수가 금메달을, 조준호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힘을 보탠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로 인해 지난 10월 15일 정훈 교수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0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상’을 수상했다.
이미 90년대를 평정한 그는 한국 유도계 간판급 선수로 활략하며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71kg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1991년에는 오사카 아시아유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그리고 같은 해 제17회 바르셀로나 세계유도선수권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각각 획득했다.
또한 1992년 제25회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1993년 제18회 캐나다 헤밀톤 세계유도선수권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여 한국인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대통령표창과 체육훈장백마장 등을 수상했으며 올해 ‘대한민국체육상 지도상’을 수상함으로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용인대에 부임해 교수로 활약한 데 영광과 보람을 더하고 있다.
정훈 감독과 송대남 코치, 남 다른 인연으로 유도 우승!
용인대 정훈 교수를 거론하면 자연스레 따라 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송대남 코치의 스승이자 동서라는 것. 지난 2009년 11월, 정훈 교수의 막내처제인 김정은(29) 씨와 결혼한 송대남 코치는 현재 국가대표팀 수장을 맡고 있다.
“당시 대남이가 선수로 들어와 훈련하는 모습이 남 다르게 여겨졌다. 인간적으로 좋아보였는데 뭐랄까, 센스 있고 성실한 게 운동선수 냄새도 덜 나는 편이었다.” 이후 3녀 2남 중 장녀인 아내 김지은(42) 씨와 상의 끝에 송대남을 집으로 초대해 자연스런 만남을 유도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현재 슬하에 6개월 된 아들 송재하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결혼 후 유도 분야에서 송대남의 電光石火(전광석화) 같은 업어치기 작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번 8월 2일 송대남 선수와 쿠바의 아슬레이 곤잘레스가 결승에서 붙은 경기를 통해 실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다만 불행히도 경기 시작 전에 지도 1개씩 주고받아 5분의 정규시간 경기를 하던 중 종료 1분5초를 남기고 정훈 감독이 소란스럽게 작전 지시를 했다는 이유로 퇴장 당했다.
선수에게 감독이 부재중이라는 것은 큰 악재가 아닐 수 없었지만, 송대남 선수는 골든타임제로 진행된 연장이 시작되자 30~40초 동안 재빨리 호흡을 가다듬고 이어 허리띠를 다시 풀었다가 감으며 방전된 체력을 보강했다. 그리고 특유의 ‘안뒤축감아치기 절반승’으로 경기를 깔끔하게 끝을 냈다.
“정 감독님을 퇴장 처리를 한 그 심판이 아주 고마웠다. 잠깐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약이 되었다. 포인트나 지도 하나 빼앗기면 바로 지는 상황이었는데 쿠바 선수가 그것을 얻으려고 계속 공격하던 중이었다.”
정훈 감독이 장내를 시끄럽게 하여 쫓겨나는 상황에서 송대남 선수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승리의 기회를 포착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퇴장 때문에 지고 있던 흐름이 다시 바뀌어 승리의 면류관을 안겨준 것이다. 이에 송대남 선수도 “처음에는 날개 하나 떨어진 기분이었지만, 띠를 풀면서 하나씩 다시 생각했다.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술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업어치기로 예선전에서 승승장구 했지만 체력이 떨어진 결승전에서는 발 기술로 승부를 냈는데 그것이 정훈 감독의 작전대로였다.
제자이자 동서인 송대남 훈련하는 정훈 감독의 비법
유도계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 매우 엄격하다. 때문에 동료선수들은 매트에서 엄하고 무섭다고 소문난 정훈 교수에 대해 묻곤 한다. “감독 중에서 카리스마가 강한 편인데 선수들이 굉장히 어려워한다. 그래서 동료들은 ‘원래 집에서도 저렇게 무서운가’ 묻는다. 하지만 사실 집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매우 자상하고 가정적이다.”
그런 정훈 감독은 송대남 선수에게 90㎏급 선수로 전환해 올림픽에 나설 것을 권유했다. 당시 81㎏급에는 베이징 은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가 있었기에 올림픽 출전이 목표였던 송대남 선수는 체급을 올렸다. 그러나 10㎏ 가까이 체중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1년이란 시간을 통해 체중 조절에 돌입해 하루 2만㎉ 넘게 섭취했다. 성인 남성 권장량 10배에 달하는 식사량이다.
송대남 선수는 눈앞에 먹는 것을 보면 닥치는 대로 모두 먹어치웠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87㎏쯤 되니 더 이상 체중이 불질 않았다. 정훈 감독은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강압적으로 식사하는데 참여했다. 보통 체중을 줄이는 선수 식단을 감시하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역할이지만 이번에 정훈 감독은 그가 무엇을 먹을 때마다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곁을 지켰다.
그렇게 해서 2012년 런던올림픽 유도대회에서 87kg급에 출전한 송대남 선수는 완전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현재는 84㎏으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자연 다이어트로 체중이 쭉쭉 빠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8월2일 결승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느닷없는 ‘맞절 세리머니’로 동서지간임을 알리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그들에게 국민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훈 감독의 ‘1막 2장_한국 유도계 지도자의 꿈’
정훈 감독은 1968년 4월 29일 전라남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4년 3월 광주 체육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도에 대한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후 체육 특기자로 1987년 3월 용인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91년 오사카 아시아유도선수권 금메달, 제17회 바르셀로나 세계유도선수권 동메달을 획득한다.
1991년 2월 용인대를 졸업하고 유도학과 조교로 재직하다가 다시 건국대 체육 교육학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프랑스 오픈 금메달, 같은 해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동메달, 93년 제18회 캐나다 헤밀톤 세계유도선수권 금메달,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르기까지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1993년 8월 건국대학교 체육 교육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95년 명지대학교 체육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그리고 1996년 3월 용인대학교 교수로 발령 받는다. 그러나 이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1998년 명지대학교 체육학과 이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어 그는 유도계에 있어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2002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유도 국가대표팀 코치, 2005년 3월~2008년 2월 용인대 유도학과 과장으로 승진 한 후 2005년 3월~2008년 9월 대한유도회 심판간사, 2006년 12월 세계대학유도대회 남자유도 감독, 2008년 9월 남자유도 국가대표팀 감독, 2009년 네델란드세계선수권대회 남자유도 감독, 2010년 도쿄세계선수권대회 남자유도감독, 2010년 8월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유도 감독, 2011년 프랑스세계선수권대회 남자유도 감독, 2012년 7월 런던올림픽 남자유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다.
2012년 현재는 용인대학교 유도경기지도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수상 경력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1990년 12월 백마장, 1991년 11월 대통령 표창, 1992년 8월 거상장, 2008년 2월 대한체육회 표창장(지도 부분 장려상), 2012년 제17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 지도자상, 그리고 2012년 제50회 대한민국체육상 지도상을 수상했다.
그는 과거 한국 유도계의 한 획을 긋는 간판급 유도선수에서 진일보해 현재는 한국 최고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향후 한국 유도의 발전을 위해 남은 인생 마지막 열정까지 모두 쏟아 붙겠다고 다짐하는 그는 이제 교수로서, 감독으로서 1막 2장의 인생 드라마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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