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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4:5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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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동아정밀공업(주) 김홍렬 대표이사

몸으로 기술 익힌 세대의 자기 헌사(獻辭), “진정한 노후대책은 돈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연마하는 것”

동아정밀공업(주) 김홍렬 대표이사

식당에 가면 으레 먼저 하는 일이 물병에서 컵에 물을 따라 놓는 것이다. 식당에서 혹은 술자리에서 커다란 페트병에서 물을 따랐다면, 당신은 오늘 동아정밀(주)의 김홍렬 대표이사가 만든 제품을 만져 본 것이다.

그가 식당용 페트 물병 모양을 만들어 내기까지 아무도 그런 PET 용기에 물 담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홍렬 대표는 대한민국이 보편적으로 가난했던 시절, 생계를 위해 그저 열심히 일했던 세대다. 하지만 그는 성실한 근로자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지속적인 창의와 자기연마로 우리나라 금형 분야에 적지 않은 기술적 성과를 보탰다. 그가 자신의 인생 전반에 자긍심을 가지는 이유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17회 금형의 날‘에 ’올해의 금형인 ‘상을 수상했다.

의식주 모든 것에 금형 패키지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품들에는 네모건 세모건 혹은 어떤 형태성을 지니건 간에 모두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 물건들이 생산되는 첫 공정은 기능에 따른 모양을 정하고 틀거지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금형이 개입한다. “우리의 의식주 모든 것에 금형 패키지가 있습니다. 심지어 주택조차도 금형 제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소용가치가 높은 분야죠. 우리나라 금형기술은 원자재 외에 전부 우리 기술로 특허를 낸 것들입니다. 독자적인 뿌리 산업입니다.”

동아정밀공업(주) 김홍렬 대표이사는 금형산업 40여 년을 지켜온 장인답게 담담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포르투갈에서는 금형 기술 하나로 군 단위 마을 전체가 생활을 유지하는 곳이 있습니다. 대대로 금형을 가업으로 이어받고 있어요. 그런 대우를 받는 산업이 됐으면 합니다. 김홍렬 대표가 1982년 설립한 동아정밀공업(주)은 지난 31 년간 블로우 PET 금형 국산화와 신기술개발 등으로 국내 PET 몰드 분야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그가 대단한 것은 단지 훌륭한 금형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금형이 기초가 된 물건을 생산해내는 전용기계까지 개발하는 단계로 전진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심도있게 생각하고 연구하면 가야할 길이 보입니다” 동아정밀공업(주) 대표이사 사무실 칠판에 적혀있는 금언 “창의가 시장을 창조한다”처럼 김홍렬 대표의 40여 년이 넘는 전문성의 비결은 명쾌해 보였다.

일본 기계 가져다가 분해하며 공부했던 시절

김홍렬 대표는 60년대 중반 부산에 있는 ‘내셔널 플라스틱’이라는 곳에서 처음 금형을 접했다. 일본 ‘내셔널 플라스틱’사에서 기계를 수입해 플라스틱 제품을 제조해 내는 곳이었다. “일본 기계를 가져다가 모두 분해해서 쭉 늘어놓고 번호를 매긴 후 모양 스케치를 했어요. 그 기계를 이용해 더 기능이 좋은 큰 기계를 고안해 만들었지요. 그렇게 해서 10억 20억 들여야 사는 기계를 6억쯤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상사들에게 쪼이고 핀잔을 듣기 마련이어서 그는 언어도 잘 모르는 일본 금형 잡지를 사서 그림을 열심히 보고 연구했다. 김 대표가 성실성 외에 금형에 몰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또 하나 있었다. 그는 본래 손재주가 특출난 사람이었다. 오래전 텐트나 배낭 만드는 사업에 특허를 냈다가 쌀 열가마니 받고 팔았던 적도 있다. 스스로 돈 모으는 재주는 없어도 기계나 물건을 다루는 손재주는 남달랐다고 말한다.

타고난 재주에 열정이 더해져서 그의 기술적 시너지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계 회사에 스카웃이 됐는데 선진기술을 접하기는 했지만 설계대로만 찍어내는 것이라 창의성은 없었어요. 그래서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존 장비를 놓고 더 많은 생산품이 나올 수 있도록 기계를 레벨업 시키는 연구도 했죠. 그것이 성공하면 기계에 제 이름의 이니셜을 붙여줬습니다. 그야말로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전시대만 해도 일본 금형 산업은 세계에서 손꼽혔다고 한다.

새로운 금형과 기계가 나오면 궁금증을 못 이겨 당시 일본회사 업무협약을 맺은 국내 회사의 작업복을 입고가 보여 달라고 하는 방법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보여주기 싫지만 관계회사라서 그러질 못하니까 일단 보여줘요. 그런데 기계 밑 부분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볼펜을 은근슬쩍 던지고 그것을 집는 척하면서 기계 아래 부분을 순식간에 훑는 겁니다.

이미 사전에 열심히 연구해 본 탓에 쳐다만 보아도 원리를 금방 알아낼 수 있었어요. 나뿐만 아니라 6,70이 된 세대는 전부 그렇게 선진 기술을 익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처리 기술의 온도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고온의 액체에 손가락을 넣은 사람도 있었데요.” 그들이 온 몸을 던져 기초기술을 닦아 준 덕분에 대한민국의 각 분야의 산업이 오늘날처럼 성장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에피소드여서 감탄과 함께 숙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창의가 시장을 창조한다

그의 회사가 처음으로 생산해 낸 금형은 아기 수유 젖병 이었다. 유아 브랜드 중에 토종기업인 ‘아가방’이 있다. 이 회사의 아기 젖병 금형을 김홍렬 대표가 처음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가방의 경영자가 기계를 보여 줄테니 젖병 금형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기계를 사오려고 했지만,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기계 값 덕분에 금형뿐만 아니라 아예 기계까지 만드는 자체적 기술을 개발해 보자는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국산 1호였다. 30여 년이 넘은 시절 이야기다.

동아정밀공업(주)은 PET병 몰드 분야에서 국내 최고다. 페트 금형은 회전을 시켜야 하는데 일본이 그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만 하는 줄 알았는데 김홍렬 대표는 이를 국산화시켰다. 하겠다는 정신이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지금은 창조가 아니면 안 됩니다. 보통 이 분야는 설계된 금형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데 저는 그것을 넘어 스스로 개발하는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은 물론 국산화에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금형 기술에는 성공했지만 중소기업의 자금한계 때문에 높은 시장성을 포기한 적도 있다. 마트에 나오는 젓갈이나 장 종류의 플라스틱 용기에 장치된 손잡이는 김홍렬 대표가 고안해 낸 제품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장에서 이의 편리함을 몰라봤다. 한참이 지난 후에 손잡이 통은 800억 원의 시장성을 가진 제품이 되었다. 국내 S 대기업과는 LED LAMP 금형 제조를 논의하며 10억에 달하는 기술비용을 투입했는데, 나중에 중국으로 가벼렸다. 고스란히 그의 손해로 남았다.

“대기업과 리뷰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개발해 놓은 기술을 가져갑니다. 중소기업의 힘없는 비애죠. 전 국민이 비슷하게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살아야 합니다. 대만이나 독일이 국제 경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정밀공업(주)은 사장 아카데미

놀랄만한 사실은 동아정밀공업(주)에서 금형 분야에 종사하다 독립해서 자기 회사를 차린 사람이 그동안 3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만큼 김홍렬 대표의 기술기능이 탁월하다는 방증이다. “금형은 매우 정확해야하는 기술입니다. 1mm의 1/1000까지 맞추어야 하는 작업이죠. 손에 한번 잡았다 놓으면 손안 온도 때문에 13/1000mm 정도가 틀려집니다. 그만큼 가공 정도가 어렵다는 것이죠”

그가 금형에서 이루고 싶어하는 최종목표는 PET재질의 투명보온병을 개발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깨는 일이라고 한다. 100불짜리로 고급화한 페트병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장담한다. 자연의 원리를 타파하는 이런 기술이 가능할까. 그에게는 복안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금형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을 갔는데, 그곳에서는 겨우 신기술이라고 내놓은 것이 우리보다 한수 아래 제품인 deep pinch 그립 병 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개발된 제품이다. 벨기에와 프랑스에서는 직접 동아정밀공업(주)의 생산라인을 보려고 방문했다. “이번에 개발된 손잡이를 일체형으로 만든 PET용기의 기계와 금형에 대해서 유럽과 미국측에서는 많은 관심을 갖고 찾아오고 있는데, 오히려 국내는 잘 안 움직이는 것이 이상 합니다. 한국시장이 너무 보수적인 건지? 신제품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한국에 안주하지 말고 월드마켓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장 수요는 무척 많아요. 금형이 없으면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기존 것을 답습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는 환경 분야에 필요한 환경 기술을 위해 지난 2005년에는 60세가 다 된 나이에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한 열정적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개발해 놓은 환경기술은 대기업으로 넘겼다고 한다.

“사업은 기술만 으로는 안 됩니다. 기획과 전략이 필요하며, 제품을 소비자 입장에서 분석하는 분석력, 기술을 제품화 하는 자금력, 그 뒤에 기술인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때문에 회사건물을 옮겨야 했지만 그의 새로운 도전은 기가 꺾이지 않았다.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적용시키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정부 자금 지원도 얻을 생각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연마하는 것이 최고로 잘 나이 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년 정신은 오늘도 새로운 창조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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