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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25 05: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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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두루디앤디 김두천 대표

전통 빗은 여인들의 장신구이자 여러 가지 상징성 지닌 소중한 물건“외국인들이 먼저 인식하는 작품성, 공예도 ‘한류문화’ 일으킬 수 있습니다.”

두루디앤디 김두천 대표

조선 시대 정갈한 사대부 여인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극 장면이 있다. 사각 경대 앞에 앉아 가지런히 머리를 정돈하는 것이다. 그때 사용되는 것이 바로 ‘빗’이다. 얼레빗, 참빗, 면빗, 음양소, 상투빗. 용도에 따라 종류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현재는 어느 한 가지 여성들의 일상에서 밀접하게 사용되는 빗은 없다. 어머니 세대만 해도 이런 빗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합성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빗에 밀린 것이다.

그런데 ‘빗’의 전통적 가치와 장신구로서의 고급기능을 알아채고 작품성과 상품성을 통합해 낸 이가 있다. 명인들의 기예를 콜라보레이션해서 최고급 수공 빗인 ‘명인 얼’ 시리즈를 생산하는 ‘두루디앤디’ 김두천 대표다.

전국 방방곡곡 돌며 빗 명인 찾아다녀
다소 방정맞은 서두일 수 있지만, 독자의 이해를 위해 무릅쓴다면, 한동안 유행했던 드라마에 ‘한땀 한땀 장인의 손길을 거쳤다’는 대사를 염두에 두어보자. 두루디앤디의 ‘명인 얼’ 시리즈빗들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금속, 목공예 장인들이 최소한 열흘 이상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작품’들이다. 재료는 대추나무와 은을 사용한다.


“일반 대추나무가 아니라 쪄서 말리는 과정을 통과한 것이라 재질이 단단합니다. 은은 타출이나 상감 등 조금기법을 이용해 다듬어진 것입니다. 금속명인 선우 박해도 선생님과 목공 명인인 일정 오해균, 대산 이택서 선생님들께서 서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합작, 협력)한, 그냥 빗이라고 칭하기보다는 작품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제품들입니다.”


김두천 대표는 선배가 경영하던 ‘미소’라는 빗 생산업체에서 기획 일을 하면서 전통 빗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50년 된 손때 묻어 반들반들해진 얼레빗을 가지고 계셨는데도 평소에는 무심하다가 빗에 관심을 가지니 비로소 보이더라고 했다.“당시 제품을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빗인데 우리나라에 더 좋은 손재주를 가진 빗 기예가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빗을 제작할 수 있는 명인을 찾아 전국을 다녔어요.”


10년 동안 시장조사를 한 후, 한국에서 직접 빗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박해도 선생을 만났고, 나무 빗에 은세공을 접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년 4월에 정식으로 창업을 했다. 사무실도 강남에서 현재의 동대문으로 옮겼다. 박해도 명인의 작업실에서 가깝기 때문이다.아직 창업 초기라서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는 않지만, ‘명인 얼’ 시리즈가 지닌 품격적 가치 때문에 성과도 있었다. 대중매체에서 가끔 소개가 되기도 해서 인지도를 넓혔다. 정부조달 문화상품으로 등록돼 국가행상에 선물용으로 쓰이며 국내외에 널리 알릴 기회도 생겼다. 서울플라자호텔 기프트샵에 입점도 했다.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빗은 조상의 뛰어난 세공기술 보여줘
두루디앤디 김두천 대표는 빗을 단순 생산품이라기보다 문화유산을 대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유물로 출토된 빗들이 꽤 있습니다. 낙랑시대 고분에서 목재 빗이 발견됐고,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목재와 대모(바다거북 등 껍질)빗이 나왔어요. 특히 통일신라 때의 ‘세금착감화문즐’이란 빗은 조상들의 탁월한 세공기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대모에 금세공으로 윤곽을 내어 청옥을 입힌 것인데 그 화려함과 섬세함은 비견할 바가 없습니다. 단순 빗 용도뿐만 아니라 장식용구로도 사용했던 것입니다. 고려 시대까지도 빗은 머리 장신구 역할을 했어요. 여성들의 권위와 부의 상징이기도 했지요. 조선 시대에는 장신구 역할은 사라졌지만, 여인들의 귀중한 애장품이었지요. 혼수품에서 빗은 청혼과 허혼의 대리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딸이 시집갈 때 어머니가 선물이기도 하고요.”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전통 빗의 형태가 사라지고 현대로 들어서면서 대량생산 체제의 합성수지 빗에 밀려 그 존재가 희미해졌다고 한다.

김두천 대표는 단지 빗의 전통 보존만이 아니라 더 큰 범주의 우리 전통문화가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절멸 위기에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힘든 생활을 하시는 명인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된다 해서 사람들이 몰렸다가 그것이 안 되니까 맥이 끊어진 상황들이 많아요. 또 사람들이 정보를 몰라서 등한시하는 경우도 있어요. 관심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전통을 고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현실적 감각을 부여해 새로운 분야로 창출해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전통이니까 반드시 한지를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현대적인 재료들을 도입하는 것도 창작이라고 생각해요.”명인들의 작품은 공력과 재질의 고급함 때문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어 판로를 쉽게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김두천 대표는 빗을 필두로 인지도를 넓히면서 작업에 참여하는 명인들의 다른 작품들도 일반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먼저 알아보고 감탄하는 명인의 세공기술
김두천 대표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마침 박해도 명인과 작품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박해도 명인은 매체에도 자주 관심을 갖는 명인이다. 그가 걸어온 외곬 길처럼 마르고 꼿꼿한 모습에 타협 없는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박해도 명인이 빗에 새겨 넣은 문양들은 십장생, 꾀꼬리, 매화, 용, 당초무늬 등 다양하다. 대추나무 빗에 상감기법을 사용해 은세공을 박아 넣는다. 그래서 빗의 가격들은 꽤 고가다.


대추나무로만 깎은 것은 10만 원 가까운 가격이고 은세공을 넣으면 최고 가격이 80만 원 가까이 달하는 것도 있다. 빗을 보관하는 케이스도 이태리에서 최고급 가죽으로 등록된 뷰테르 가죽을 사용한다. 그래서 고객층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든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플라자호텔 기프트샵에 들르는 외국인들은 박해도 명인의 은 세공술에 기꺼이 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박해도 명인은 우리나라에서 금 거북선과 용을 가장 잘 만든다. 그가 만든 거북선이 무려 1만 척 가까이 된다고 한다. 롯데호텔에 소장돼 있는 금 거북선은 87년도에 88올림픽 때 방문하는 외국인들에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금 38kg이 소용됐다. 은 독수리도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타출기법과 세선기법이 사용된다. 세선기법은 머리카락보다 얇은 은실을 두 개로 꼬아 만들고 다시 그것들을 합해서 꼬는 정교한 과정을 반복한다. 신라시대 왕관이나 장신구에 사용된 기법들이다.


박해도 명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세공기술은 외면한 채 외국제품인 ‘티파니’제 등을 숭상하는 풍토에 도전을 한 적이 있었다.“예전에 서울시에 제안을 했었어요. 사람들이 티파니의 보석 세공기술을 최고로 치는 것 같은데 과연 소비자가 어는 것을 택하는지 승부를 내보자 생각했지요. 그래서 티파니와 제가 만든 세공제품들을 한 곳에 모아 전시를 해보자 제안했어요. 티파니 70%를 전시하고 나는 30% 정도만 내놓겠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박해도 명인은 작품의 깊이는 세월의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같이 완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배워야 올바른 명인의 길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 대표를 만나기까지는 거의 사회활동을 안 하고 제 공방에서 작품제작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작품에만 묻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으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고 우리의 전통문화도 잊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김 대표에게도 세공기술 빨리 배우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

널리 알리는데 개인의 한계 느껴, 사회적 인사들이 관심 가져줬으면
흔히 명인들의 공예제품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있다. 하지만 김두천 대표는 이런 볼멘소리를 일축할 만한 일화를 들려줬다. 일전에 국제명인협회에서 주최해 각 나라의 명인들이 모여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모두 각자의 나라에서 집안 대대로 세공기술을 전수받거나 수십 년씩 세공에 인생을 바쳐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거물들이 우리나라 세공품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의 세공기술이 최고다, 어떻게 이런 것을 손으로 만들 수가 있느냐, 하면서 칭찬을 그칠 줄 몰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래 붙여진 가격표를 보더니 왜 이런 가격을 받느냐, 이런 제품이라면 훨씬 더 비싸게 받아야 한다”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해외에서 참석했던 명인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그만큼 대우를 받고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격의 가치를 더 높여도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던 것이었다. 그만큼 국가적으로 마케팅 지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좋은 옛것, 우리 것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도 저 개인적인 한계를 느낍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분들이 관심이나 참여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김 대표는 여기에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박해도 명인은 같은 동대문구 주민인 이상화선수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좋은 빗으로 잘 빗고 얼음 위에서 잘 빗어 달리라는 뜻으로 빗 하나를 보내주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가 선물에 대해 고맙고 잘 쓰고 있다며 빗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더군요. 작은 일이었지만 선생님께서 많이 기뻐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박해도 명인이 한마디 거들었다.“여성 대통령이 외국 순방할 때 보면 한복을 곱게 입고 나가십디다. 그럴 때 우리 전통 빗을 머리에 곱게 장식하고 나가면 얼마나 보기가 좋겠소.”김두천 대표는 인사동으로 대표되는 장소에서 값싸고 조악한 물건들이 한국 전통문화로 오인 받는 것에도 경계를 표시했다.“정부에서 문화유산을 이어받자고 말하는데, 우선 생활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 많아요. 이들 잊힌 명인들을 찾고 발굴해 진정한 문화유산 남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명인 얼’빗 시리즈가 어머니의 정성스런 손때가 묻은 채로 딸에게 전해지며 소장품 가치를 가진 문화 명품이 되리란 확신은 굳이 안 밝혀도 될 것이다. 김두천 대표는 자신이 세공 기술를 배워 제대로 만든 첫 번째 빗을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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